내 수업의 브랜드 '소나기' 수업

2014.09.04 14:45:00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갑자기 채널이 바뀐다. 옆에 있던 아내가 리모컨으로 다른 방송을 택한 것이다. 이러 저리 돌리다가 재미가 없으면 결국은 내게 리모컨을 주고 간다. 그렇지만 나도 막상 특별한 방송이 없으면 같은 행동을 한다. 그러다가 다른 소일거리를 찾는다.

평면 비교하기 어렵겠지만 교실 상황을 상상해 봤다. 나는 열심히 수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저마다 리모컨을 들고 있다. 내 수업을 시청하는 아이들은 몇 이나 될까. 끔찍한 상상이다.

이런 생각 끝에 내 수업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 수업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을까. 재미가 있을까. 생활에 도움이 될까. 앞으로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텔레비전을 즐겨보지 않지만, 몇 개 프로그램은 챙겨본다. 내 수업도 그런 것이 될 수 있을까.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을 때, 재미있는 드라마가 있을 때 서둘러 퇴근하고 텔레비전 앞에 앉는데, 내 수업은 그럴게 할 수 없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하면서 내 교직 생활을 성찰해 본다. 25년이 넘게 교실에서 가르쳤는데 그것이 무엇일까. 교과서 하나 달랑 들고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나. 아이들에게 무슨 감동을 주었을까. 절망적인 면이 많다.

방송 프로그램은 우선 제목부터 시청자를 사로잡아야 한다. 제목은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그것이 주제가 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수업도 제목이 있으면 어떨까. 제목이라고 할 수도 있고 이름 짓기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나온 것이 ‘소나기 수업’이다. 소통과 나눔 그리고 기쁨이 있는 수업이다.

소통, 나눔, 기쁨은 국어수업의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바와 내용적 측면이 함께 고려된 이름이다. 좋은 인간관계 형성은 교육의 출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통은 교사의 역할에서 새롭게 강조해야 할 덕목이다. 소통이라고 해서 무조건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소통은 힘없고 약한 쪽에 있는 아이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학생 한 명 한 명은 개성과 특성, 그리고 능력이 다르다. 편견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으로 만나는 것은 곤란하다. 그들의 역사와 미래를 수용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용과 존중은 공감이 중요하다. 힘이나 권유보다는 공감으로 만져줄 때 마음이 움직인다.

그리고 소통은 기다림이다. 아이들은 성장이 더디다. 선생님의 시각으로 보면 당연히 늦다. 그들이 천천히 성장하도록 기다려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급하게 채근한다고 정상에 가는 것은 아니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고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의 방식대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도록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눔은 여러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우선 학습 내용을 가르치고 배우는 의미로 접근할 수 있다. 과거 학습 형태는 일방적으로 치우친 면이 많다. 그렇게 되면 교사는 지시적이고, 학생은 의존적이다. 이런 학습의 형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교육은 완성된 것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 가도록 돕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에는 수평적 교수 형태를 취할 때 학습 효과가 크다. 박제된 지식보다는 교과서를 벗어나 선생님의 뜨거운 경험을 나누어야 감동이 있다. 그리고 나눔은 학생과 학생끼리 협력적 관계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기존 경쟁 관계에서 학생들은 순위에 몰입한다. 21세기 가치관은 경쟁보다는 협력하고 함께 발전해야 한다. 최근에 사회에서 학교의 역할 중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인성교육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눔은 교육과정의 핵심 영역이고, 인성 교육의 방편이 된다.

기쁨은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교육의 목적이다. 소통과 나눔으로 하는 교육의 결과가 기쁨으로 표현된다. 꿈과 끼를 키워주는 행복한 교육이 최근 교육의 목표이자 추구하는 내용이 되고 있다. 기쁨은 행복의 동의어다.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기쁨을 누리고, 교사도 기쁨을 누려야 한다. 소통과 나눔이 교육의 수단이라면 기쁨은 교육의 목적이 된다.

교사와 학생 간의 소통이 원활하고 조화롭게 이루어진다면, 지식이 서로의 마음으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그 물줄기는 지식만이 아니라 신뢰와 감동, 공감이 흘러 다닌다. 그 물의 흐름으로 교사는 교사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만족감을 느끼는 기쁨이 있다. 이 과정에서 목표라는 것을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저절로 목표가 달성된다. 즉 학생들이 느끼는 기쁨은 학습 내용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학습 목표를 달성해 가고 성장한다는 즐거움이다.

수업에 이름을 붙이고, 제조업에서 쓰는 브랜드를 붙이는 것이 부질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좋은 수업에 대한 열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교육을 통해 그들의 호기심을 키워주고 모험심을 키워주고 싶다. 미래 희망을 키우는 경험을 갖게 하고 싶다. 이름을 불러주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게 하고, 명품이 되게 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 열정이 아이들의 감성으로 깊게 파고들어 희망과 꿈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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