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봉과 우리집 뒤주

2014.11.04 09:21:00

대봉을 사왔다. 농협 마트 가격을 보니 2.5kg 소포장 박스보다 15kg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 다만 이 대봉은 그대로 먹을 수 없다. 단단한 것이 부드럽게 될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요즘 같이 스피드시대에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이번 겨울에는 간식으로 연시를 즐길 수 있겠다.

대봉을 보니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오른다. 자식들 한겨울 간식으로 대봉을 준비해 주셨다. 당시 하루 세 끼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는데 자식 사랑의 마음으로 간식을 주셨던 것이다. 한 겨울 어머니가 말랑말랑하게 된 것을 골라 주시면 자식들이 쪼개어 나누어 먹으며 정을 키웠다.

지금은 70이 넘은 우리 작은 형 회고다. 중학생 시절, 배는 고프고 먹을 것은 없고. 어머니가 사온 대봉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것을 어디에다 두었는지 모른다. 집안 구석을 샅샅이 다 뒤졌으나 나오지 않는다. 어디에서 찾았을까?

맨 마지막 살펴보지 못한 곳은 뒤주다. 그러나 뒤주는 잠금장치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다. 그 열쇠는 어머니가 갖고 있다. 배는 고프고 감은 숨겨져 있고. 작은 형, 열쇠도 없이 그 감을 어떻게 꺼냈을까? 궁즉통(窮卽通)이다. 궁하면 통하게 되어있다.


뒤주 밑으로 누워 들어가 판대기를 들어올려 감을 꺼내고 원래 상태로 돌려놓은 것이다. 물건을 보관하는 뒤주, 위에서 내리누르는 무게를 견디게 설계했지 밑에서 들어 올리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이것을 알았다면 뒤주에서 살아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뒤주. 지금 우리 아파트에 있다. 막내 아들인 필자가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다. 역사를 따져보니 우리집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이다. 만들어진 지 70년이 넘는다. 당시 목수였던 아버지가 직접 만든 것이다. 일종의 가보가 된 것인데 이 뒤주를 보고 탐내는 사람도 많다.

아파트와 뒤주.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그런대로 잘 어울린다. 현대와 고대가 공존하는 것이다. 옛 가구의 고풍스러운 맛은 뒤주 하나면 족하다. 그 위에는 사진첩을 놓아두니 하나의 장식장이 된다. 이제는 눈에 익어 자연스럽게 보인다.

대봉을 채반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서서히 익을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 채반도 어머니 유산이다. 김장할 때 유용하게 쓰이고 호박을 썰어 말릴 때도 사용하였다. 이번엔 이 채반에 대봉을 앉혀 연시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집 아들과 딸.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져 한 겨울에 먹는 연시의 맛을 모를 것이다. 자식들은 햄버거, 샌드위치, 과자나 빵 등이 익숙하다. 가게에 가면 곧바로 사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음식 중에는 몇 날 몇 일을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대봉을 보며 50년 전 추억을 떠올려 보았다.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내에게 대봉 추억을 물으니 기억나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한다. “어렸을 적 대봉 추억을 가진 당신은 행복한 거야!” 오늘 사온 대봉으로 우리집 자식들도 추억을 만들 수 있을까?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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