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는 '영혼의 자식'

2015.11.20 14:54:00

어린아이의 존재는 이 땅 위에서 가장 빛나는 혜택이다. 죄악에 물들지 않은 어린아이의 생명체는 한없이 고귀한 것이다. 어린아이를 통해서만 우리는 이 지상에서 천국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아미엘

오늘 통합 교과를 공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1학기에 이미 무궁화 그리기 공부를 했지만 복습 삼아 다시 했습니다. 주제는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이 된 이유' 였습니다. 다양한 무궁화를 보여주고 그리기를 하였습니다. 아이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무궁화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무궁무궁 무궁화 무궁화는 우리 꽃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네~~" 내 노래를 듣던 우리 반 기탄이가 눈빛을 반짝이며 나를 칭찬했습니다. 그것도 앙코르를 외치며! 닭살이 돋지만 그대로 옮겨봅니다.

"선생님, 어떻게 그렇게 목소리가 예뻐요?"
"진짜? 그렇게 생각해요?"
"네, 진짜로 아름다워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고운 소리를 낼 수 있나요?"

"목을 아껴야 해요. 아무 때나 큰 소리로 말하는 버릇을 조심하면 돼요. 기탄이처럼 늘 큰 소리로 말하면 목이 힘들어 하고 잘못하면 소리가 나는 곳에 무리가 가서 노래를 못하게 되거나 병을 얻기도 해요. 선생님이 늘 목소리 낮추라고 말하는 이유가 그거랍니다. 소중한 목을 보호하여 좋은 소리를 갖게 하려고요."

"아! 알겠어요. 지금부터 목소리를 적당히 내는 버릇을 길러야겠어요. 그래서 저도 선생님처럼 고운 소리로 노래하고 싶어요. 노래 부르는 것을 참 좋아하거든요."
"좋은 생각이에요. 선생님은 성악가가 꿈이었는데 이루지 못했어요. 그래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방송도 많이 본답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잘 부를 때 참 행복하거든요. 기탄이도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르던데 선생님과 공통점이 있네요?"

무궁화 덕분에 아이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어린 왕자들한테 뜻하지 않은 칭찬(?)을 듣고 한참 동안 웃었습니다. 그리고 행복했습니다. 어른인 나도 이렇게 칭찬에 으쓱해지는데 아이들은 더 좋아하겠지요? 귤 한 개만 나눠주어도 "우리 선생님은 천사!" 라는 둥, 조그만 선물 하나만 받아도 "우리 선생님은 착하고 예뻐요!"를 남발하는 요 녀석들 덕분에 나는 철없는 50대가 되곤 합니다.

겨울방학이 다가올 때쯤이면 한참 예쁜 짓을 해대는 통에 힘들었던 1학기의 산고를 다 잊어버립니다. 그리고는 다시 1학년을 자원하게 됩니다. 글눈을 떠가며 보여주는 아기자기한 몸짓들, 외계 언어에 가까운 표현으로 깜짝 놀라게 하는 상상력의 귀재들이 1학년 아이들입니다.

나라 안팎으로 아프고 힘든 소식들이 넘쳐나서 슬픔을 가누기 힘든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 곳곳에서, 온 세상 곳곳에서 아이들은 새싹처럼 자라나고 커 가며 이 세상에 희망이 있음을 몸으로 보여줍니다. 이제 한 해를 마감하는 날이 가까워집니다. 아이들의 칭찬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오글거리는 이 글을 쓰면서도 지금 행복합니다. 행복은 늘 느끼는 순간에 잠시 보이는 신기루 같은 것임을 알기에 이 순간의 행복을 기록해 두려 합니다.

인디언 상형 문자에 따르면 어린이 마음은 세모꼴, 어른의 마음은 동그라미라고 합니다, 어린이가 죄를 짓고 마음이 아픈 이유는 죄를 짓는 만큼 세모꼴이 회전하면서 뾰족한 모서리로 마음을 긁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모서리가 점점 닳아 둥그렇게 변하고, 잘못해도 아픔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맞는 표현입니다. 1학년 아이들은 아주 작은 잘못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반성하지요. 어른인 내가 부끄러울 만큼.우리 어른들이 1학년 아이들만큼 규칙을 잘 지키고 약속을 소중히 하면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요? 양치질을 하다가 3분을 못 채웠다며 다시 양치질을 시작하는 스스로에게 정직한 모습을 보며 감동하곤 합니다. 스스로에게 정직한 모습 그대로 깊이 뿌리를 내리고 큰 나무로 자라기를!  방과 후 수업에 들어간 아이들의 빈자리를 청소하며 나직이 속삭여 봅니다. 이 아이들을 '영혼의 자식'이 될 수 있도록 더 많이 사랑하고 진심을 다해 가르치자고 다짐해 봅니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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