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로 살기를 거부한다

2015.12.23 16:19:00

며칠 전 동료 선생님들과 식사를 했다. 학교도 뭐가 그리 바쁜지 오래 전부터 하자던 모임을 어렵게 했다. 내친 김에 카페에서 커피를 앞에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란 위인은 워낙 말이 없는 탓도 있지만, 나이 먹고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한다. 이날도 나는 주로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들이 집안 이야기를 하면, 크게 공감하고 짧게 말하는 것이 전부였다.

젊은 여선생님이 블로그 이야기를 할 때도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맞장구를 치고, 웃는 것으로 내 역할을 다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여선생님이 “수석선생님도 블로그에 글을 남기고 그러시나요?”라고 묻는다. 여 선생님의 질문은 답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말없이 앉아 있는 나에게 그냥 인사치레로 물었다는 느낌도 있었다. 순간 짧게 답하는 것보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차원에서 말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그래서 가끔 좋은 글은 꼼꼼히 읽고, 피드백을 한다는 답을 했다. 교육 관련 콘텐츠가 풍부한 블로그도 소개했다. 그랬더니 놀라는 표정으로 “신세대시네요!”라고 규정한다. 순간 오기가 나서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고, 페이스북과 연동되어 있어 방문객이 많다는 자랑을 했더니 못 믿을 상황이라도 벌어진 듯, 좌중에 큰 소리로 떠든다. 모두 의외의 상황을 만났다는 듯 눈빛이 모아졌다.

이런 상황을 두고 뭐라고 해야 하나. 이것은 편견이다. 흔히 사람이 사람을 상대할 때는 그 상대방을 집단이 지닌 속성으로 범주화하게 된다. 그들은 내 겉모습을 보고 컴퓨터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선입견의 그물을 씌었다. 머리가 반백이니 나도 컴맹일 것이 분명하다고 규정하고 자기들만의 그물에 가둬놓고 있었다.

이는 나란 위인에 대한 검증 없이 던진 말이다.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고정관념을 표출한 것이다.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의한 언행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튀어나온다. 이는 심리적 과정이지만, 말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은근한 형태의 차별을 드러낸다. 심리에는 개인이나 집단들에 대한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도 깔려 있다. ‘외모가 부각되지 않으면 실력이 모자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주머니는 운전이 서툴다. 동남아 사람들을 보면 가난할 것 같다. 특정 지역 출신들은 다 그렇다.’ 등의 사고방식이 같은 유형이다. 따라서 이런 생각을 입 밖에 드러내는 것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말하는 사람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노골적인 차별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내 나이 또래를 젊은 사람들이 꼰대로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꼰대는 젊은 사람들에게 사사건건 이래라 저래라 지시한다. 내 생각을 젊은 사람들에게 강요한다. 내 생각과 다를 때 ‘요즘 젊은 사람은 하면서~’ 탓한다. 자신의 생각을 잘잘못을 따질 생각이 없고 세대 차이로 규정한다. 업무 처리 등의 능력보다는 태도, 복장 등 외적인 것으로 평가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은 젊었을 때 목숨 받쳐 일했는데, 요즘은 그런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는 나이·성·직업·수입 등에 따라 양상이 달라진다. 특히 현대인은 직업을 갖고, 그 조직에서 지위나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러다보면 필연적으로 상하 관계 등의 구분이 생긴다. 여기서 꼰대 문화가 나올 확률이 높다. 대개 꼰대라고 지칭하는 것에는 꽉 막혀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소통할 줄을 모르고 자기주장이 강하다.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의견만 옳다고 여긴다. 그러다보면 훈계조나 명령조로 말하기 일쑤다. 지위가 높다고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꼰대의 전형이다. 의견이 대립할 때 나이로 상황을 제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꼰대는 우리말 같지 않는 느낌인데, 국어사전에 실려 있다.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이다. 실제로 어릴 때 우리끼리 선생님을 이렇게 부르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여지없이 꼰대다. 나이도 차고 있고, 직업도 들어맞는다.

하지만 나는 꼰대이기를 거부한다. 우선 어감이 안 좋다. 늙은이라는 것도 억울하다. 젊은 사람들이 말하는 꼰대의 이미지를 거부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가장 먼저 나는 젊은이처럼 살려고 노력한다. 젊은이처럼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고 배우는 일이다. 쥐꼬리만큼 가지고 있는 지식이 위태로워 늘 공부를 한다. 곰팡내 나는 생각도 참신하게 하려고 책을 가까이 했다. 공부는 젊은이에게 많이 전해주려고 한 것도 아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내면이라도 살찌울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오기가 일어나 젊은 선생님에게 내 블로그를 소개하고, 내 글이 교과서에 실렸다는 자랑까지 했다. 옆에서도 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냐고 야단이다. 자기 피알(PR) 시대인데 자랑 좀 하고 다니라고 친절하게 일러 준다.

그들 말대로 내가 때마다 자랑을 하고 다녔으면 어땠을까. 나를 꼰대로 규정하지 않고, 실체를 제대로 알았을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나를 제대로 알리기는커녕 욕을 더 많이 먹지 않았을까.

주변에서 들리는 말로 나이 먹은 사람들의 최고 덕목은 남에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남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들을 때 현명해진다. 자기를 돋보이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갖고 따뜻한 시선을 보일 때 내 삶은 어느덧 빛날 수 있다. 내 삶을 구구하게 설명하면 구치하다. 하지만 그 자체로 빛나면 감동이 있다.

나이 들수록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보이는 것보다 나 스스로 내면을 채우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이 남을 평가하는 것이란다. 가장 어려운 것은 나를 평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에 맞게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삶을 영위해야 하지 않을까. 나를 스스로 평가해야 바르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물론 평가의 잣대도 내가 만들어야 한다. ‘나는 주변 사람에게 따뜻한 사람인가. 나는 어린사람들의 눈에 어른으로 보일까. 나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라고 끊임없이 내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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