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료는 노동의 대가

2016.05.20 11:55:00

며칠 전에 지인이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잡지사 기자가 내 글을 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기자와 친구처럼 지낸다며 원고 청탁이 오면 받아 주라는 부탁을 했다. 간혹 원고 청탁을 할 때 직접 연락이 오기도 하지만 이렇게 인맥을 동원해 외압(?)으로 밀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어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교육 전문 잡지라는 이야기에 내심 기대를 했다.

  전화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기자가 전화를 했다. 교육 전문 잡지를 창간했는데, 특집에 나를 모시고 싶다는 황송한 말씀을 한다. 특집에 맞게 글의 주제도 까다로웠고, 원고 매수도 많았다. 원고 청탁은 받으면 묘한 감정이 만들어진다. 청탁을 받는 순간은 작가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에 가슴이 부풀기도 하지만, 막상 글을 쓰다가 글이 마음대로 안 풀리면 산더미 같은 후회를 한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잡지 창간호 특집에 실리는 글이라는 부담감이 오히려 기대감을 갖게 했다.

  청탁을 받고 글을 쓰는데 연락이 왔다. ‘수업’이 특집이지만 필자가 여럿이기 때문에 내용이 겹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배움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수업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수업에서 실패했던 이야기 중심’으로 써 달라는 부탁을 한다. 순간 그동안 퍼부은 노동력을 보상하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마음을 눌렀다.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배우는 관점을 살피지 못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수업의 실패를 떠올려보고 성찰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듯해서 참았다.

  갑자기 원고 내용을 수정하고 분량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약속 날짜에 맞춰 원고를 보냈다. 간혹 유명인은 원고 날짜를 넘기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말하지만, 나 같은 무명인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다른 일을 접어두고 마무리를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다 완곡하게 표현하며 마쳤다. 늘 하던 대로 원고료 입금 통장 번호, 주민번호, 사진도 함께 보냈다. 

  그 뒤 며칠이 지나서 지인이 다시 전화를 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잡지사 사정을 길게 말한다. 친구는 1인 기업가라고 한다. 즉 기자, 영업, 편집, 운영까지 혼자 하고 있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재능 기부를 하라는 통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불쾌했다. 억울했다. 글의 내용을 바꿔가면서 청탁에 응했는데 고작 이런 답례를 받다니. 글 값은 제쳐두고라도 최소한 늦은 시간까지 내 몸을 혹사했던 노동의 대가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런 비슷한 사례는 종종 있다. 젊어서는 보통이고 최근까지도 있었다. 잡지사 환경이 안 좋다느니, 신문사가 어렵다느니 하면서 사정이 좋아지면 원고료를 지급할 계획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심한 경우는 지면에 글을 쓰는 기회를 제공했다며 오히려 자기들이 어깨를 편다. 하도 여러 번 당해 언젠가는 글을 싣지 말라고 따졌더니 엉뚱한 화살이 왔다. 선생이라는 사람이 더욱 글을 쓴다는 사람이 돈을 너무 밝힌다는 비난이었다.

  청탁도 일을 시키는 행위다. 당연히 대가가 있어야 한다. 존 스타인백은 “글쓰기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노동”이라고 했다. 글쓰기는 외로울 뿐만 아니라 강도가 센 노동이다. 길거리에 붙는 간단한 부업거리도 일하는 시간과 임금을 안내하고 있다. 따라서 청탁을 할 때는 주제, 원고 매수만 요청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원고료 액수도 알려 줘야 한다.  

  간혹 청탁을 한 사람들은 원고료를 주지 않고 재능 기부며 봉사 활동이라고 생각하라고 한다. 이는 자신의 비열한 행위를 재능 기부나 봉사 활동으로 합리화시키려는 의도다. 봉사나 재능 기부는 하는 사람이 결정한다. 자의에 의해서 해야 한다. 그것을 상대방이 결정하는 것은 노동 착취다.

  요즘 노동 환경에서 열정 페이가 논란의 대상이 된다. 몇몇 기업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인턴 기회를 부여한다는 명분 아래 무급 혹은 저임금 인턴으로 고용한다. 이 상황은 자세히 살펴보면 부당한 방법으로 청년을 고용하면서 열정 페이로 미화하는 격이다.

  열정 페이는 절박함을 이용한 폭력이다. 마찬가지로 일부에서 원고료를 주지 않는 관행도 부당한 행위를 넘어 횡포에 가깝다. 잡지사 운영도 사업이다. 정당한 투자를 하고 이윤 창출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원고료 지급 준비도 없이 잡지 판매에만 눈을 두는 사업 행태는 성공하기 어렵다. 처음부터 글쓰기 노동에 합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혹독한 준비가 있어야 잡지 사업에 미래가 보일 수 있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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