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의 공존을 위한 성찰

2016.07.11 13:34:00

 삶에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구나 원하는 삶은 인간다운 삶, 나누며 공존하는 삶,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삶일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기에 공존, 공유, 공감 등은 공동체의 필수요건일 것이다. 이는 국가를 넘어서도 적용된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늘 인문학적인 질문을 던지며 살지만 늘 부족한 삶이다. 따라서 제대로 살기 위한 통찰은 우리 모두에게도 늘 필요하다.

앞서간 선인들을 통해 우리는 올바른 삶의 방향을 찾는 성찰이 가능하다. 지구인으로, 세계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인문학적 성찰은 더 큰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이는 나의 문제, 한국가의 존립에만 집중고, 정신적·물질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누리는 호사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또, 자기 지배권을 강화하려는 또 다른 술책이 될 것이다. 약자들에 대한 연민이 없는 삶은 교묘한 지배논리와 다르지 않다.

플라톤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매우 인상적이다. 플라톤이 길이 막힌 아포리아(통로와 수단이 없는 상태)를 극복할 방법으로 내세운 것은 교육이었다. ‘동굴의 비유’에서 본질인 이데아를 보지 못하고 환영인 그림자를 보는 동굴 속 갇힌 인간이 깨어나는 것은 동굴 밖을 보게 하는 것이었다. 플라톤이 말하는 교육이란 무지한 인간에게 밖으로 나가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었다. 플라톤은 진정한 교육이란 동굴 밖으로 나가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렇게 플라톤은 길이 없는 아포리아의 현실에서 교육을 통해 서로 손잡고 함께 가는 길을 모색했다. 플라톤의 주장은 동굴 안에 머무르지 말고 선을 향해, 이데아를 향해 방향을 잡고 계속 나아가라는 것이었다. 선을 향해 머무르지 말고 나아가라,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경우엔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것이 삶의 자세였다. 캐묻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던 논변의 시대에 소크라테스는 탁월함을 발견한 것이다.

궁극적 성찰은 개인적인 성공과 출세를 위한 몸짱이나 성형 등에서 오는 외모에서의 탁월함이 아니라 절제와 헌신, 정의의 실천, 지혜의 추구가 진정한 탁월함임을 깨달은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깨달음에는 늘 질문하고 답변하는 문답법과 산파술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다. 복잡해진 세계 질서 속에서 공존의 길을 찾는 길은 그렇게 쉽지가 않다. 질문하고 성찰해서 자신의 무지를 알라. 나 자신을 알기가 참으로 어려운 법인데...... 하물며 국가간에는 더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김광섭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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