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무덤의 주인인 안티오크 두상*
산 정상에 남아있는 왕국의 자취
터키의 드넓은 아나톨리아 평원을 지나 동부로 향하다 보면 건조한 스텝 지대가 펼쳐지면서 군데군데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해 앞길을 막기 시작한다. 이러한 산들은 거의가 석회암 질이어서 키가 작은 나무들만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을 뿐이다. 또 어떤 곳에는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들고 크고 작은 바위들만 뒹굴고 있어 삭막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것들도 있다. 이렇듯 이 모두가 한눈엔 별 볼일 없어 보일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산들 중에서 그냥 지나치지 못할 산이 하나 있다. 그게 바로 '넴루트 다이'다.
'다이'라는 말은 이곳 말로 '산'을 뜻하기 때문에 '넴루트 산'이라고 해야겠다. 이 넴루트 산은 해발 2150m로 역시 삭막한 바위투성이의 산이다. 이 정도 이상의 높이를 갖은 산은 동부 터키에는 많다. 그렇다면 만년설을 이루고 있을 정도로 높은 것도 아니고, 또 수려한 계곡이나 숲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닌데 무엇이 이 넴루트 산의 매력이어서 뭇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일까.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특이하게도 이 산 정상에는 수수께끼의 고분과 거대한 석상들이 뒹굴고 있기 때문이다. 기원 전 150년경부터 이 일대에 '코마제네(Commagene)'라는 왕국이 자리하고 번영을 누리고 있었는데,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왕 '안티오크 1세'의 무덤이 200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왕의 무덤 지키는 거대한 석상들
심하게 가파른 산도 아니고 또 어느 정도까지는 차로 올라왔기 때문에 등산을 하기 시작한지 30여분 만에 정상에 닿을 수 있었다. 제법 차가운 새벽 공기가 몸을 움츠리게 하는 가운데 저 멀리서 어둠을 가르고 서서히 동이 터 오기 시작한다. '신의 발자욱'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지금 서 있는 곳이 정상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눈앞에서 시야를 가리고 있는 것이 있다. 피라미드처럼 보이는 거대한 자갈무더기다. 그리고 주변에는 바윗덩이들이 제 멋대로 뒹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 수수께끼의 석상들과 안티오크의 무덤이다.
이윽고 이 안티오크의 무덤에 오늘의 첫 번째 태양빛이 비추었다. 그리고 이 태양빛과 함께 찾아온 여러 신들이 거대한 석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제우스', '헤라클레스', '아폴론', 독수리 형상인 '카라쿠스', 사자 모습인 '아슬란', 그리고 코마제네의 여신인 '포르토나'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2000년 동안 이곳에서 코마제네 최고의 왕이었던 안티오크의 무덤을 지켜 왔다. 그러니까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바윗덩이들이 바로 이러한 신들의 두상이었던 것이다.
개중에는 안티오크 자신의 모습도 끼어 있다. 이러한 신상들은 애초에는 무덤 앞에 20여개의 바위들로 조합한 거대한 모습으로 가지런히 서 있었는데 언제인가 있었던 지진으로 인해 이렇게 두상들만 떨어져 나와 땅바닥에 뒹굴게 된 것으로 밝혀져 있다. 아직도 무덤 앞에 가지런히 남아 있는 몸체들이 그걸 잘 말해 주고 있다. 두상들의 크기만 해도 2m 정도이고, 가장 큰 신상은 제우스상인데 전체 무게가 91톤이나 된다고 한다.
이러한 신상들은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뿐만 아니라 무덤의 뒤편, 즉 태양이 지는 서쪽에도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아침에는 동쪽을, 늦은 오후에는 석상들이 석양빛에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서쪽에서 여러 신들로부터 코마제네 왕국 시절의 전설을 듣게 된다면 이 넴루트 산 등정의 최고의 맛을 느끼게 된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는 수수께끼
사실 이 넴루트 산정에 이토록 엄청난 석상들이 나뒹굴고 있는 고분이 있다는 것을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러다 1881년 오스만투르크 시절의 지질학자들이 이 넴루트 산의 지질조사에 나섰다가 우연하게 발견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학술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계속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가, 1953년 미국 고고학계에 의하여 어느 정도 그 수수께끼는 풀렸다. 밝혀진 바에 의하면, 고대 코마제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비명과 비문을 남기려고 해 왔다.
그래서 이 안티오크의 자갈 무덤과 석상들을 만드는데 대략 12년이 걸렸으며, 동원된 인원이 엄청날 뿐만 아니라 수천 명이 공사 중 죽었다는 사실이다. 자갈 무덤의 높이가 75m였으나 계속 흘러내려 현재는 50m정도다. 또 각 두상이나 발판 등에 한 변의 길이가 5cm정도의 네모난 구멍이 깊이 7cm 정도로 뚫려 있는 것으로 봐서 이곳에 바를 끼어서 들어 올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자갈 무덤 또한 처음에는 모래로 봉분을 만드는 것에서 헬레니즘 시대에 접어들면서 코마제네 왕가에 의해 처음으로 채택되어 거대한 조각상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것들은 많다. 특히 이 고분의 주인공인 안티오크에 대한 것은 고분 동쪽 비문의 기록에 의해서 코마제네 최고의 왕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페르시안, 어머니는 마케도니아 사람이었다는 것뿐이다. 이것은 당시 코마제네 왕국은 동으로는 페르시아, 서로는 마케도니아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족의 딸들을 양쪽으로 결혼시켜 가면서 평화를 유지해 왔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지만 안티오크가 언제 태어났고, 얼마동안 왕위에 머물렀으며, 언제 죽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이렇다 보니 많은 고고학자들이 이 무덤 속을 궁금해 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 실시한 것이 전자탐사다.
이 전자탐사는 이곳뿐만 아니라 코마제네 왕국의 두 번째 수도였던 '에스키 칼레'에 있는 안티오크의 아들 '카라쿠스'의 무덤에서도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의외다. 카라쿠스의 무덤 속에는 뭔가 들어있는 것으로 나왔으나 정작 이 안티오크의 무덤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도굴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그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공식적으로 발굴하기 위해 자갈을 퍼내기 시작한 적이 있었는데 퍼낼수록 계속 위쪽에서 자갈들이 흘러내리기 때문에 중도 포기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것일까. 이것 또한 수수께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