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침의 성역 - 티베트 고원

2006.12.01 09:00:00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티베트 고원.
일반인의 접근을 거부하는 환경이지만
찾는 이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한다.


*뒤편으로 포탈라 궁이 보이는 언덕에 놓여있는 야크의 머리뼈에 기도문이 새겨져 있다.*

박하선 | 사진작가, 여행칼럼니스트


'청장철도'로 한층 가까워진 티베트
세계의 지붕이요, 대륙의 심장격인 티베트 고원은 세계 최고의 오지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다. 첩첩이 산들로 둘러싸여 보이는 건 온통 하늘을 찌를 듯한 산봉우리. 그 산길을 구불구불 기어가는 트럭을 타고 한나절을 하늘로만 올라가다 보면 만년설의 고독이 반기우고, 저 멀리 히말라야를 뚫고 흐르는 부라마푸트라 강의 넓고 조용한 흐름이 대자연의 위대함을 실감케 한다. 이따금씩 펼쳐지는 초원의 평지라고 해도 해발 3000m가 넘는 이 고원에서 살아가는 티베트 족들은 흔히 우리가 '밀교'라고 말하고 있는 '라마교' 즉, '티베트 불교'를 신봉하며 현실보다는 내세의 안녕을 위해 살아간다. 그래서 신앙 그 자체가 곧 생활인 것이다. 이렇듯 살아있음에 위대한 땅 티베트는 그 어느 곳을 가도 지구가 아닌 어는 혹성의 한 단면을 보는 듯 하고 신들이 사는 불가침의 성역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그 신비의 땅 티베트 고원의 중심인 '라사'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다. 그만큼 가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물론 항공편을 이용하면 그 불가침의 벽을 단숨에 허물어버릴 수는 있다. 하지만 해발 3700m나 되는 고지대에 단숨에 불시착하게 됨에 따라 호흡장애와 두통 등을 일으키는 고소증세의 복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이것 역시 만만치만은 않다. 그렇다고 일찍부터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곳이기 때문이다. 또 최근에 연결된 '청장철도'가 있어 급변하는 가운데 많은 이들이 도전하고 있다.

부라마푸트라 강의 한 지류인 라사 강변에 자리한 인구 15만 정도의 아담한 도시 라사. 지금은 비록 이곳까지도 현대문명의 손길이 미쳐 원초적 모습을 차츰 잃어가고는 있다지만 아직껏 그 독특한 건축양식과 오가는 사람들의 전통적 옷차림 등에서 티베트 고유의 멋과 분위기를 즐기는데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또 그 유명한 '포탈라 궁'과 '조캉 사원'을 비롯한 큰 사원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모든 티베트족들이 성지 순례 차 이곳으로 몰려들어 연중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몽환의 세계 안내하는 조캉 사원
라사 시내에 들어오게 되면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언덕 위에 고고하게 버티고 서있는 포탈라 궁이다. 마음 같아서는 곧장 그곳부터 들러보고 싶지만 참아야 했다. 왜냐하면 그 포탈라 궁의 가장 높은 곳이 해발 3900m나 되기 때문에 먼저 고소에 대한 충분한 적응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날은 먼발치에서 쳐다만 봐야하는 이 포탈라 궁이 더욱 신비스럽다고 느끼면서 발길을 일단 조캉 사원 쪽으로 돌린다.

시내 한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이 사원 일대에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그것은 이 조캉 사원에 불공을 드리기 위해 각지에서 순례자들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순례자들은 '바코르'라고 말하는 조캉 사원의 담장을 따라 도는 순례코스를 몇 바퀴인가 돌고나서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사원 앞 돌바닥에 전신을 미끄러지듯 쭉 깔고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하는 큰 절을 행하고 있었다. 이것을 '오체투지(五體投地)'라고 하는데 라마교도들의 특이한 행동과 토속적인 미가 물씬 풍기는 이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분명 별천지에 자신이 와 있음을 실감케 한다.

헌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순례자들이 중노동이나 다름없는 이 오체투지를 하루에 500번을 행하고 나서야 자리를 뜬다는 것이다. 또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변방에서 평생의 소원인 이 조캉 사원의 참배를 위해 한 손에 법륜을 돌리면서 걸어서 온 자들도 많다는 사실이다. 대단한 불심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불심을 반영한 이 특이한 행동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니 몽환의 세계에 빠져든 듯 그 자리를 쉽게 뜰 수가 없게 되고, 이 전신투척이라는 게 우리나라의 큰절과 흡사해서 이게 바로 우리 큰절의 원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순례자들 사이를 비집고 사원 안쪽으로 들어가니 어두컴컴한 가운데 수많은 버터 등불이 분위기를 잡고 있다. 이 조캉 사원은 7세기경에 지은 것으로 당태종의 딸 문성공주가 이곳으로 시집올 때 가져왔다는 불상이 대단히 화려하게 장식되어 보관되고 있으며 나무기둥들은 1300년이라는 긴 세월에 손때가 묻고 야크 기름이 묻어 번들번들 윤기가 흐른다. 가는 곳마다 사방 벽면에 석가모니의 생애를 비롯한 여러 이야기를 그려 놓은 탱화가 걸려 있고, 부처 또한 과거, 현재, 미래부처들로 나뉘어져 있으며, 그 신들을 보호하는 신이 따로 무서운 괴물 모양으로 버티고 있다. 또 그 불상들 밑에는 '달라이 라마'의 사진이 놓여 있어 지금은 비록 티베트 땅을 떠나 있을지언정 이들 마음속에는 아직껏 생불로 남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1만 명이 넘는 중들이 공부하기도
조캉 사원이 오랜 전통과 화려함을 말해주고 있다면, 시내 서쪽 변두리에 위치한 '뜨레풍 사원'은 규모의 엄청남을 말해주는 곳이다. 15세기경에 세워진 이 사원은 일종의 승가대학으로 전성시대에 중들의 수가 1만 명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큰 사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여러 동으로 나뉘어 지어진 건물들의 수가 한 부락을 이루고 있는 듯 했다. 현재는 450명 정도의 중들이 있고 건물 일부는 민간인들에게 임대하여 사용케 하고 있다는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중들 수만큼이나 개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를 가도, 저기를 가도 발에 채는 것이 개들이기 때문에 달려들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으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또 뜨레풍 사원과 쌍벽을 이루고 있는 사원이 바로 반대편에 있는 '쎄라 사원'이다. 거대한 바윗덩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산기슭에 포근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이 사원은 뜨레풍 사원과 거의 같은 시기에 설립된 승가대학으로 비록 미비하지만 오늘날까지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쎄라 사원을 유명케 한 역사적 사실을 한 가지 들자면, 1959년 이곳 티베트가 중국에 강제 합병될 때 뜨레풍 사원 쪽에서는 일찌감치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반대한 쎄라 사원의 중들이 뛰어난 전술로 중국군을 괴롭히면서 끝까지 항전했던 사건이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이따금씩 있게 되는 반(反) 중국에 대한 집회는 꼭 쎄라 사원에서 주도하고 있다.

새로운 주인 기다리는 천상의 궁전
티베트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포탈라 궁은 건물 높이 13층에 폭이 300m가 넘는 역대 달라이 라마들의 궁전으로 천상의 궁전처럼 떠올라 있다. 7세기경부터 짓기 시작해 15세기경에 거의 완성을 보았으며 5대 달라이 라마의 공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나 있는 이 궁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큰 건물에 못 하나 사용치 않고 흙, 돌, 나무만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적궁과 백궁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적궁은 역대 달라이 라마들의 기념관 및 사원이고, 백궁은 거실 및 침실이다. 정면의 돌계단을 따라 천상의 궁전으로 들어간다.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화려한 채색으로 어둑어둑한 가운데에서도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수많은 계단들을 오르내리게 되어 있는 길이 미로와 같았으며, 버터 등불 아래서 한나절을 두리번거려도 미련이 남게 한다. 특히 적궁에 있는 5대 달라이라마의 무덤탑이 1700㎏이나 되는 황금으로 만들어졌다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언덕 저 밑의 호숫가에서 바라다보는 포탈라 궁의 모습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기보다는 동화 속의 신들이 살고 있는 듯한 환상의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지금은 주인 잃고 쓸쓸하기만 한 포탈라 궁은 마치 집나간 자식을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처럼 슬프기만 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머지않아 인도에 망명 중인 달라이 라마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포탈라 궁 주변을 새롭게 단장하는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그렇다면 그 어머니의 슬픔도 머지않아 끝나게 될 것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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