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절교육 28년, 김성수 이화여고 국어교사

2012.06.01 09:00:00

입시와 학력위주 경쟁사회에서 여러 이유로 인성이 다시금 중요한 교육적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예절을 아는 것만으로도 경쟁력을 가지는 시대가 된 지금, 쉽게 넘어설 수 없는 28년이란 전통을 가진 인성교육의 명인이 있다. 바로 이화여고 김성수 교사. 그와 함께 그가 가진 오랜 ‘전통’을 만났다.


1985년 봄, 이화여고에 부임한 김성수 교사. 어느덧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한결같이 이화여고 교단에 선다.
생기 넘치는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학교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김 교사가 먼저 불을 밝힌다. 부임 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학생들보다 일찍 등교해 하루를 여는 김 교사의 일과는 ‘이조 패밀리’의 예절교육으로 시작한다.
사실 김 교사의 별명은 ‘이조 쌤’이다. ‘이화의 조선인’의 줄임말인 ‘이조’와 선생님을 뜻하는 은어 ‘쌤’이 합쳐진 말이다. 그가 평소에 효, 존경, 생명존중 등 예절을 매우 중요시하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이조 패밀리’ 역시 ‘이조 쌤’에서 나온 말이다. 옷매무새가 단정하지 못하거나 예절에 어긋난 행동을 하다 김 교사에게 지적을 받은 학생들, 수업시간에 김 교사에게 찍힌 학생들 모임인데 자원해서 ‘이조 패밀리’에 가입하는 학생들도 있을 만큼 그의 예절교육은 인기가 많다.

이조 쌤, 생활이 곧 예절교육
“공수, 배례!”
올해로 28년째를 맞은 김성수 교사의 예절교육은 인사로 시작해 인사로 끝난다. 등교시간과 점심시간에 주로 하는 예절교육뿐만 아니라 수업시간 인사도 ‘차렷, 경례’ 대신 ‘공수, 배례’라는 말을 사용한다. 학생들과 김 교사는 배꼽에 두 손을 얹고 천천히 허리를 90도로 굽혀 흔히 말하는 배꼽인사로 서로에게 인사한다. 예절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인사에 정성을 담아 스승과 제자가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기르기 위해서다.
“교육은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장소나 시간 역시 문제가 될 것이 없죠. 요즘 학생들에게는 일상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행하는 교육이 가장 필요하고, 특히 인성교육을 위한 예절교육이 절실하죠.”
10∼15분간 김 교사는 ‘이조 패밀리’ 각 학생에게 그들에게 필요한 맞춤형 이야기를 해준다. 학생들이 그 말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차분하고 다정하게 예절교육을 진행하고 수업에 들어가서도 간단한 한 마디의 말이나 이야기를 풀어 놓으며 다소 어렵고 거북스러운 예절교육을 하나의 일상으로 만들었다. “생활지도와 학업은 분리해서 하는 게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김 교사 말처럼 이화의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올바른 인성을 먼저 배우고 있었다.
2학년 인(仁)반 이지현 학생은 “처음에는 왜 하는지 몰라서 의문이 많이 들었는데, 이제 조금은 예절이라는 말의 참뜻을 알 것 같다. 선생님께서 세심하게 학생들을 챙기는 모습에 가끔 깜짝 놀라기도 한다”며 김 교사의 예절교육에 대해 얘기했다.
이렇게 일상에서의 예절교육을 강조하는 김 교사는 가끔 ‘이조 패밀리’ 아이들을 불러 차를 마시는 다도의 시간을 갖는다. 평소 차를 좋아하는 그를 위해 졸업생들이 공수해 준 차를 매개로 학생들과 언제나 소통한다.
“요새는 아이들과 상담하는 것이 무척 어렵죠. 하지만 상담이 아니라 아이들과의 소통, 즉 서로 얘기하는 것이 우선이에요. 얘기할 때는 언제나 눈을 맞춰야 해요. 눈높이교육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눈맞춤교육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학생들과 담소를 나누며 자신이 하는 예절교육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을 듣고, 아이들에게 다양한 얘기를 해주는 김 교사는 이런 생활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가 모두 예절교육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론이 아닌 생활의 예절. 머리로 이해하고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배우고 서로 소통하며 마음으로 익히고 자연스럽게 깨닫게 인도하는 것이 그가 하는 인성교육의 마음인 것이다.

세상 하나뿐인 씨앗을 심다
‘이조 패밀리’의 가장 큰 자랑은 바로 28년째 대를 이어오고 있는 세상 단 하나뿐인 호박씨다. 대를 이어 매년 선배로부터 후배들에게 전해진 것이지만 자신보다 10년이나 나이가 많다는 호박씨를 처음 받았을 때 학생들은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제가 자랄 때와 다르게 서울의 아이들은 도시에서 자랐죠. 자연과 생명의 신비를 배울 수 있는 자연환경이 거의 없는 곳에서 공부하고 단순한 지식교육만 받고 있어서 생명존중의식이 결여된 상태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예전과 같이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부임 후 곧바로 호박씨 파종을 시작했어요.”
사실 한 생명이 역경과 위기를 극복하고 싹을 틔우며 자라나기란 무척 어렵다. 하지만 이 과정은 어떤 교육보다 학생들에게 주는 것이 많다.
“호박씨를 받는 순간에는 당황해도 싹이 나면 호기심이 생겨 온갖 정성을 쏟으며 호박씨를 돌보는 아이들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생명과 자연의 위대함을 배우게 되는 거죠. 게다가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에서 지혜와 용기를 깨달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자연스러운 인성교육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그냥 도우미만 할 뿐 호박씨는 아이들이 직접 기르는 희망이 되는 거예요.”
호박씨를 나눠주며 학생들에게 스스로 심은 호박씨를 자기 자신으로 생각하라고 말하는 김 교사는 학생들 자신도 직접 발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싶다고 한다. 물론 씨앗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흙과 물과 햇빛이 필요하다. 이런 조건을 제공하고 시련이나 역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승이 되자고 호박씨를 보며 늘 결심하고 지도하는 김 교사였기에 이제는 호박씨가 전통이 돼 이어져 온 것이다.
자신이 심은 호박씨가 자라기 시작했다며 싹을 보여준 2학년 예(禮)반 김자은 학생은 “전통의 호박씨를 받고는 많이 황당했어요. 무엇을 하고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했거든요. 그래도 싹이 올라오니 자꾸 들여다보게 되고 손과 마음이 가면서 정성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생명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알게 되는 것 같아 즐겁기도 하고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호박을 마음껏 자랑했다.

선생님은 단지 학생 양심의 기준이 될 뿐
지금은 담임을 하지 않지만 담임을 하던 시절 김 교사는 호박씨 파종과 함께 학생들과 사제동행 전통시장답사와 심신수련산행도 매년 진행했다. 학교라는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얘기를 하게 되고 그러면서 김 교사는 아이들의 생각을 읽게 되었다. 학생들과 통하는 부분을 만들고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가면서 김 교사는 단순히 가르치는 교사가 아닌 스승으로서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고, 책임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참교육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시작한 또 하나의 전통이 바로 반성문이다. 가장 기본이지만 가장 어렵고, 그러면서 가장 효과적인 교육법. 김 교사는 학생들이 잘못하면 반성문을 쓰게 하는데, 우선 학생들이 원하는 만큼 시간을 주고 분량을 정한다. 그리고 반드시 ‘너 자신을 위해 써라, 선생님은 단지 너의 양심의 기준이 되겠다’라고 당부한다.
“글이란 마음의 작용인데, 반성문을 보면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요. 이를 보고 아이들 개개인에게 필요한 얘기를 하고 아이들의 습관이나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었죠.”
잘못에 대한 사실을 글로 써보면 그것에 대한 반성과 고찰이 시작되고 주관적인 시각과 함께 객관적인 시각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학생들은 반성문을 통해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자기성찰의 훈련을 하는 것이다. 김 교사는 반성문 역시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 또한 학생들이 반성문을 제출하면 함께 평가를 진행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단계 발전하게 된다.

스승의 천명은 최선을 다해 가르치는 일
교실에서 학생들과 소통하는 것처럼 교무실에서 김 교사는 후배 교사들과도 자유롭게 얘기하며 일상을 공유한다. 특히 후배 교사들에게 가르치는 일부터 생활지도, 상담 등 모든 부분에서 선배로서의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나의 천직은 선생님이에요. 하지만 모든 선생님들이 가르침 그 이상의 깨달음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스승이 가지는 천명은 최선을 다해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이죠. 아이들 속에서 아이들과 직접 부딪혀 아이들을 깨달아야 해요. 학생들이 자신의 씨앗을 심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교사도 ‘스승으로서의’ 씨앗을 함께 심었으면 합니다.”
아침 7시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학생들 곁에서 지내는 교사. 학생들 교육은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이루어져야 한다면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 아이들에게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교육을 실천하는 스승. 김 교사의 호박씨는 오늘도 싹을 틔우며 열매 맺기를 기다리고 있다.
황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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