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까지 근대화의 과정에서 외국의 교육제도를 모방한 것이 많다. 특히 해방 후는 미국식 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다. 미국은 나라가 크고 다양한 인종이 모여 있는 만큼, 미국 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태도는 각양각색이다. 엄마가 됐지만 약에 찌들어 정부 보조로 먹고 살며 아이는 계획없이 낳지만 교육에는 전혀 무관심한 부모가 있는가 하면, 신념이나 종교, 경제 상황에 따라 아이를 집에서 교육시키는 홈스쿨링 부모도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의 삶의 긴 여정에는 언젠가는 실패가 따른다. 실패없는 인생은 없기 때문이다. 발명왕 에디슨은 자신에게 다가온 실패에 현명하게 대처한 사람 중 하나였다. 어느 날 화재가 갑자기 발생해 실험실 안에는 각종 화학약품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불길이 한번 치솟자 걷잡을 수 없게 됐다. 모든 사람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때 에디슨은 철저하게 소멸돼가는 자신의 평생의 성과를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에디슨은 아무것도 찾아 볼 수 없게 변해버린 폐허 앞에서 말했다. “내 모든 실패가 날아가 버렸다. 다시 시작하게 해준 신이여, 감사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화재가 일어나고 3주 만에 에디슨은 그의 첫 번째 축음기를 선보이게 된 것이다. 이때 그에 나이가 67세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실패를 기회로 받아들였고 이를 통해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낸 일화는 우리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역경을 이겨내는 힘은 가르쳐서 되는 능력이 아니다. 이런 성격은 아동기의 가정 환경에서 큰 영향을 받는다. 한마디로 어려움과 실패를 어떻게 대면하고 극복하느냐에 따라 형성된다. 따라서 아이를 세심하게 돌보되 과보호 하면 배워야 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는 쉬운 일 또한 아니다. 내 자식만큼은 편한 길을 가게 하겠다는 부모의 여린 마음 때문이다. 학교 가는 길조차도 걸어갈 수 있는 길을 자동차로 실어 나르는 모습은 우리 나라만의 모습은 아닐런지!
우리 부모들이 자기 자녀를 큰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패를 경험해도 좋다는 환경을 만드는 여유이다. 그래서 실패를 맛보고 그것을 극복할 기회를 주는 것이 진정 아이와 부모를 위하는 길이란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