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단상

2020.01.28 11:16:51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손꼽아 기다리는 설날을 맞이한 기쁨과 즐거움이 노랫말에 스며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마음이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

 

달력에 빨강 색으로 칠해진 설날,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렸던 명절 설날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9세기 세시기(歲時記)인 경도잡지(京都雜誌), 열양세시기(列陽歲時記)에는 음력 새해 첫날인 설날에는 아침 차례상을 통해 조상에게 인사를 하고 웃어른에게 세배하는 것으로 전한다. 그리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설날에 떡국과 만두를 먹는 것은 돈 많이 벌고 복 받으라는 중국 풍습에서 왔다고 한다.

 

한편 설날을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라 하고 한자로는 신일(愼日)이라고 쓰기도 하는데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간다.’는 뜻이다. 묵은 1년은 지나가고 설날을 기점으로 새로운 1년이 시작되는데 1년의 운수는 그 첫날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던 탓이다. 이러한 설날은 가족, 이웃, 지인들끼리 덕담을 주고받으며 한해의 운수대통을 축원하는 세시풍속으로 대보름까지 15일 정도 지속하였다.

 

설날은 언제나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내일, 모레, 고페(글피), 고고페(그글피)…. 설레는 마음으로 달력에 날짜를 지우며 기다렸다. 가난과 배고픔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그 시절, 설날만큼은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객지로 돈 벌러 나간 누나들이 싸 들고 올 선물에 대한 기대감에 동무들이랑 쏘다니며 밤늦게까지 놀아도 허용되는 날이었다.

 

어렴풋이 옛 설날 풍경을 떠올려 본다. 모두가 가난했던 유년 시절이었지만 설밑은 온 동네가 설맞이 채비로 들썩거렸다. 가마솥 뚜껑에 부치는 부침개의 고소한 냄새가 코를 훔쳐 가고 조청을 만들기 위해 종일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기도 했다.

 

떡 방앗간은 자욱한 김으로 가득 차 분주하고 아이들은 긴 가래떡을 하나씩 들고나와 누구 떡이 긴지 자랑을 하기도 했다. 어떤 해는 미리 설빔을 입고 나와 으스대며 연도 날리고 제기도 차고 꽁꽁 언 논에서 앉은뱅이 썰매도 탔다. 그리고 외지에 돈 벌러 떠난 형이나 누나들이 있는 집 애들은 동구 밖 신작로에 나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흙먼지를 날리며 버스가 서면 쭉 빼입은 형이나 누나들의 한 손에는 종합선물세트나 정종이 들려있었다.

 

그렇게 설날을 하루 앞둔 그믐밤이면 묵은해를 마지막 보내는 날이라고 집집이 불을 켜는 바람에 오 촉 짜리 백열등은 빛을 내지 못하고 졸기만 한다. 칠흑 같은 그믐밤,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고 마루에서 잠을 쫓고 객지에서 늦은 귀향을 반기는 개 짖는 소리가 밤하늘을 가득 메운다. 어둠 속에서도 피붙이들의 상봉이 끈적하게 묻어나고 이야기들은 가지런히 썰어 놓은 가래떡에 베여 들어간다. 가물거리는 호롱불과 촛불은 심지를 돋우어 긴 그을음을 흘리고 겨울 하늘 별빛은 쏟아질 듯 댓돌 위에 내려와 있다.

 

그리고 설날이다. 설빔을 입고 기다리던 아이들은 차례가 끝나자마자 음복을 마다한 채 어른들에게 세배한다. 저마다 세뱃돈을 챙긴 아이들은 마을 이웃 어른 및 친인척을 찾아서 떼를 지어 세배하러 다닌다. 웃어른들은 세배를 받고 덕담한 뒤 세뱃돈을 안겨주었다. 가족공동체의 끈끈한 면을 보여준다.

 

이런 설의 의미도 요즈음은 많이 바뀌고 있다. 설날이라고 가족들이 모여도 전부 스마트폰에 눈길을 둔 채 이야기도 없고 시간만 보내다 모두 제 갈 길을 떠난다. 심지어 일주일 전 미리 앞당겨 부모를 찾았던 자식들은 자녀들을 데리고 외국 여행을 떠나거나 휴가지에서 차례상을 맞춤하여 보내는 경우도 많다. 경쟁과 편리를 좇다 보니 가족애와 유대감은 자연히 멀어지고 있다.

 

24일은 까치설날이다. 아이들에게 섣달그믐날 야광귀 이야기나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말을 해도 믿지 않는 눈치다. 유년 시설 그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믿고 친구들과 모여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가 잠을 자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못내 잠들고 말았던 시절, 가끔은 그때가 그리워진다.

 

설빔을 차려입고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음식과 마음을 나누며 한 핏줄을 재인식하는 명절은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여전히 우리 삶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다.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래서 설날은 우리 민족에게는 더 없는 축복의 명절로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웃음과 감동을 맛볼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다. 이번 설날에는 끈끈한 가족애와 더불어 훈훈함과 인간미 넘치는 사연들이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함께하였으면 좋겠다.

장현재 경남 해양초 교사 qwe85as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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