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기도

2020.03.26 16:19:13

봄 미나리, 봄동, 쪽파 무침, 봄 바다에서 건져 올린 야들야들한 돌미역, 통통하게 살 오른 풋마늘 잘게 썰어 참기름 넣은 간장 한 종지로 늦은 저녁 밥상에 봄 향기가 가득하다.

 

사회적 거리감 두기로 생활하다 보니 갑갑한 일상이 되었다. 전원도 아닌 시멘트 건물 속에서 라디오, 텔레비전, 스마트 폰 등 모든 매체는 갑자기 나타난 뉴스특보로 봄날을 우울의 나락으로 침몰시킨다. 이럴 때는 바다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마음의 빗장도 풀 겸 남면 해안 1024번 지방도로를 달린다. 덧칠하는 햇볕에 황톳빛 흙은 부드러운 숨을 쉰다. 마늘은 통통하여 윤기가 흐르고 촌부의 손길에서 멀어진 듬성듬성 돋아난 시금치는 세어 늙어 간다.

 

화계마을을 지나자 저 멀리 소치섬을 윤슬로 보듬은 짙은 에메랄드 남빛 바다가 가슴을 연다. 파란 하늘은 연둣빛 명주바람을 풀어내고 녹슨 대문 안에 쭈그리고 앉은 동심을 일으켜 세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진한 블랙 커피 향을 마주한다. 봄빛 바다 냄새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커피 향이 목울대 밑에 잡힌 그리움과 서러움을 들여다보게 한다. 누구에게나 지난 시절의 일은 추억의 단맛이 된다. 녹슨 시계 톱니바퀴에 매달린 구부러진 시침 같은 일들은 발효를 거듭하여 아득한 그리움이 된다.

 

서쪽으로 기우는 햇살에 투영된 여수반도가 끝나는 수평선 위 입항을 기다리는 떠 있는 배들이 위태롭게 졸며 시간의 그네를 탄다. 기다림과 안녕의 기도가 잘브락 거린다. 카페문을 나서며 나지막한 밭 언덕을 본다. 유채 향기가 바람에 뿌려지고 새하얀 치아를 닮은 별꽃, 에메랄드 빛깔의 봄까치꽃, 돌나물 덩굴이 벽을 기어오른다. 봄은 어느새 개화의 도화선을 여기저기 누르고 있다. 아마 며칠 후면 수채화 같은 봄의 꽃 잔치가 이산 저산 여기저기 물들여질 것이다.

 

이맘쯤 우리 주변의 봄은 목련꽃이다. 일전에 마당이 넓은 빈집의 물오른 목련의 함박웃음을 마주한 일이 있다. 그 집의 뜨락은 꽃등을 달아 놓은 듯 환했다. 목련꽃을 보며 낮은 휘파람으로 ‘그집앞’을 부르던 사람, 사랑을 이루기 위해 거센 폭풍이 몰아치는 북녘 바다에 사공으로 간 임을 기다리다 죽음의 소식을 듣고 생을 마감한 백목련으로 피어난 공주의 전설을 떠올린다. 다른 꽃들은 해바라기를 하지만 백목련꽃은 언제나 북쪽을 향해 피어난다. 음력 이월 영등할멈 심술에 꽃샘바람은 꽃가지를 흔들고 멍들어 떨어진 꽃잎엔 그리운 휘파람새 소리만 스친다. 꽃처럼 저버릴 사랑이지만 숭고하다

 

아픈 삼월의 봄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따스한 마음의 봄을 만들어야 한다. 파아란 하늘 아래 연한 바람이 불고 연녹색 환희로 가슴 벅찰 봄의 꿈 밭을 그리면 이 어려움도 이길 수 있다. 태양 하나로 언 땅을 못 녹이면 마음속에 또 태양 하나를 따서 불을 켜 지펴야 한다. 언 땅을 녹이고, 언 마음을 녹이고, 차가운 겨울을 단숨에 떨쳐내고 꽃잎 같은 봄 하나 만들어야 한다.

 

이제 겨울의 흔적은 점점 퇴색되어 간다. 성큼 다가온 봄, 묵묵한 자연의 부름을 보며 우리의 삶도 이해와 사랑과 베풂이 있는 푸른 숲을 만들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숲길을 나란히 걸으며 토닥여 주어야 한다. 지금은 봄 향기가 숨죽인 사슬에 갇혀버렸지만 다시 제 빛깔을 찾을 수 있으리라.

 

조용한 촌집에 풀죽은 사람 대신 텔레비전 소리만 요란하다. 꺼져 가는 불꽃이라고 해서 다시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불씨가 남아 있기에 연소할 힘이 남아 있다. 모두 함께 제 몸을 태우는 바람으로 어려움을 보듬어야 한다. 지금의 어려움으로 날개를 잃었다고 해서 영원히 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추락하는 것에도 날개가 있고 긴 기다림의 끝에 더 높이 날 수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가슴 가득한 따스함을 버리는 봄은 되지 말아야 한다.

 

또 새롭게 시작하는 삼월의 아침이다. 붉은 아침노을 가득 담은 여명의 방문을 감사하며 마음을 모아 생활의 문을 펼쳐보자. 그리고 금빛 찬란한 문지방까지 찾아든 아침햇살에 숨어든 봄의 전령을 보듬어 보자. 분명 따스한 봄의 기도가 이 어려움을 녹여 줄 것이다.

장현재 경남 해양초 교사 qwe85as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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