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찾아온 손님

2022.03.22 09:15:51

 

겨울 흔적 희끗희끗한 동산엔 소리 없는 봄들의 도란거림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인다. 봄의 전령사 매화, 산수유꽃에 이어 하얀 목련꽃이 따스한 봄볕에 물들어 천상의 소리처럼 퍼진다. 늦은 3월의 어느 하루, 종종거리며 보낸 오후의 흐느적거림은 흩어지는 구두 굽 소리조차 이명으로 멀어지게 한다.

 

매년 이맘쯤이면 언제나 지나는 골목이 있다. 그 깊은 골목 안에는 폐가인 듯 마른 풀만 무성한 집이 있다. 그 집이 눈길을 끄는 것은 마당 서쪽 가장자리에 담장 높이의 서너 배를 훌쩍 넘는 목련 한 그루 때문이다. 이 목련은 매년 3월이 되면 겨울 끝 봄의 시작이란 알림을 전해준다. 올해도 이 나무는 작년과 비슷한 시기에 봄을 활짝 열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작년에는 꽃봉오리가 부풀어 오르는 과정을 하루도 빠짐없이 눈여겨 봤는데, 올해는 대상포진이란 짖궂은 녀석에게 일격을 당하여 놓치고 말았다.

 

만개한 목련꽃을 쳐다보며 셔터를 누른다. 한 뿌리, 한 몸뚱이에서 나온 가지에 매달린 꽃봉오리들은 모두 같은 시각에 만개 하는 일은 없다. 아마 일조량에 따라 그 순서를 달리하여 그럴 것이다. 부풀어 올라 열리기를 기다리는, 반 정도 열린, 완전히 열린 꽃봉오리를 보며 고통의 인내 환희의 합창에 느낌표를 더하며 고개를 숙인다.

 

3월이다. 말은 하지 않지만 이 달은 봄꽃의 개화처럼 아픔을 무릅쓰고 새로움을 마주하는 힘든 달이다. 특히 학교에 입학하는 새내기들과 새 학년 학급을 맡은 선생님, 일 년 이란 교육의 긴 항해를 관리하는 관리자들 또한 힘든 날의 연속이다. 이 힘듦은 새로운 환경에 대한 개개인의 날카로움이 무디어지는 적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새로움에 당황하는 이는 간혹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말을 떠 올리는 일도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변화를 두려워하며 지금의 상황에 계속 있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변화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 그만한 산고는 겪어야 함이 지당한 논리이다.

 

3월 첫날이다. 진급한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호기심이 잔뜩 서려 있고 신규 발령의 새내기 선생님의 얼굴엔 기대감과 걱정, 힘듦이 가득하다. 시간이 약이라고 며칠 지나면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겠지만 교육 현장에서의 새내기 선생님은 낯설고 물설은 곳에서의 적응이 그리 녹록지 않다. 그래서인지 새내기 선생님의 입술 가장자리는 하얗게 타들어 갈라지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마주하면 언제나 적응으로 인한 낭패를 본다. 내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삼십여 년 전 첫 발령을 받을 때 새 구두에 양복을 입고 출근을 했다. 길들어지지 않은 구두는 발뒤꿈치를 사정없이 물어뜯었고, 졸업식 말고 처음 입어보는 양복은 몸 따로 옷 따로 노는 듯했다. 게다가 3월의 꽃샘추위 덕에 편도염을 달고 살았다. 이런 3월의 아픔은 새내기 교사, 경력 교사 모두에게 찾아온다.

 

올해에 찾아온 손님은 대상포진이었다. 교직 생활 동안 지금까지 합하면 다섯 번째 앓는다. 주원인은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력 저하이다. 본디 내 성격은 일을 미루거나 대충하지 못해 스스로를 쥐어짜는 형태다. 이런 성격의 소유자에게 3월의 상황은 심리적 압박감을 더하게 마련이다. 대상포진을 앓는 동안 많은 반성을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했다. 이제는 둥글어질 때도 되었는데 나이를 잊고 살았을까? 욕심이 많은 걸까? 몸의 신호를 알면서도 쉬지 못하는 3월의 특성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모든 원인은 빨리 가려는 욕심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 많은 교직 생활 동안 아직도 깎이지 않은 습성을 책망하며 지난 2월 남면 두곡 몽돌 해변에서의 깨달음 돌이켜 본다.

 

썰물로 인해 드러난 넓은 몽돌밭과 모래톱이 봄 햇살을 맞고 있었다. 물을 머금은 모래사장은 단단하여 걷기가 좋았다. 그리고 크고 작은 몽돌들은 각기 다른 모양으로 세월을 몸에 새기고 있다. 만져보면 매끈하다. 모두가 다 그렇다. 해변 한쪽에 넓게 차지한 암회색 바위가 부서져 모난 곳은 깎이고 다듬어져 지금의 모습이 되었으리라. 그 모난 돌이 몽돌이 되기까지의 세월을 과학적으론 환산이 가능하겠지만 그 사연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모난 돌의 동글어짐이나 목련꽃 봉오리가 아픔을 참으며 겨울 눈 껍질을 벗겨내고 순백의 그리움과 순수를 품어내는 개화를 마냥 예쁘다고 할 수는 없다. 둥글게 다듬어진 몽돌에는 세월의 삭풍이 연재되어 있고 목련꽃에는 자연의 흐름에 적응한 모습이 새겨져 있다.

 

우리의 일상은 언제나 길들임을 요구하고 있다. 새 신발, 새 필기구 등 ‘새’ 자가 들어간 말은 무디어짐이람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살기 위해서 나를 위해서 길들이지 않으면 자신과 세상과의 갈등이 표면화될 뿐이다. 적응은 속도가 우선이 아니다. 뛰어가면 지쳐서 오래 가지 못한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항상 자신만의 보폭으로 하루를 걸어야 한다. 하루의 과정이 중요하고 지금의 오늘을 즐겨야 한다.

 

장현재 경남 해양초 교사 qwe85as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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