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집 속의 가난한 사람

2022.07.19 08:41:21

'책통령'을 보고 싶다

해석의 한계를 넓히는 독서

 

망구엘은 "넓은 의미에서 독서라는 행위가 우리 인간이란 종을 정의한다"고 믿는다. 특히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지경으로 변할 때, 또 우리가 누구에게도 인도받지 못한다는 당혹감이 밀려올 때, 우리는 글이 쓰인 곳에서 이해의 실마리를 찾는다"고 주장한다. 이 말에서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떠오른다. -444쪽, 옮긴이의 글에서

 

이 책은 몇 번이나 읽다가 포기한 책이다. 소개되는 작가들의 책을 읽지 못하고 접근한 탓도 있고 소개된 책들의 주제가 무거워서 속도가 나지 않아 몇 년씩 밀쳐둔 책이다. 하지만 세 번째 도전에도 완독에는 이르지는 못했다. "해석의 한계는 상식의 한계와 일치한다"는 움베르토 에코의 지적을 절대적으로 수긍하면서 내 문해력의 한계에 깊은 한숨을 쉬며 더 젊었을 때 공부를 더 하지 못한 후회를 하는 중이다.

 

시선이 오래 머문 곳은 맨 처음 등장하는 체 게바라의 죽음을 다룬 곳이다. 이 나라의 정치 현실을 어둡게 보는 나의 시각. 분노하지만 아무런 행동도 못하는, 아니 하지 않는 무책임이 체의 죽음이라는 거울 앞에 부끄러움으로 반사되었으니. 입만 열면 부동산과 경제에 돈타령에 매몰된 세상은 모든 이슈를 잡아먹는 블랙홀이 되어 일차적 인간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지금 이 나라에 체 게바라가 등장한다해도 분노밖에 할 수 없으리란 것을. 

 

세상은 이 책을 처음 사서 읽었던 2012년의 상황보다 더 나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망가진 경제 상황,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빚어진 물가의 폭등, 정치의 극한 대립, 심화된 부의 양극화, 청년실업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세상은 결코 좋아지지 않는 모양이다. 오히려 거꾸로 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다룬 대목도 처음 알게된 사실이 있어서 놀라웠다.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세 명이 유배를 가거나 사형을 당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바르게 판결하지 못한 죄책감을 잊지 않고 바로잡은 로마의 시민의식.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맞은 후에야 아테네 시민들은 후회하며 애도의 표시로 격투장과 체력단련장을 폐쇄했고, 세 기소자 중 둘을 아테네에서 추방하고 한 사람은 사형에 처했다는 것.

 

법의 잣대보다 더 수준 높은 시민의식이 부러웠다. 바꾸어 말하면 법보다 더 중요한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시민의식은 지금 이 나라에 꼭 필요하지 않을까. 가짜 뉴스로 억울한 사람을 양산하는 사람과 언론은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3명의 고발자와 같다. 거짓으로 판명이 나더라도 이미 상처 받고 회복불능 상태를 경험하는 사람은 오늘날에도 많이 있으니. 실추된 명예와 억울함을 풀지 못해 목숨까지 버리는 일도 얼마나 많은가!

 

역사를 바로잡는 균형추가 되어야 할 언론은 잘못된 프레임을 씌워 사실을 왜곡하는 기사를 남발하여 국민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일로 신문부수를 늘리고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제목으로 클릭장사를 서슴치 않는다. 그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내야 할 시민의식은 언론의 장난질에 끌려다닐 뿐 분노의 목소리는 미약한 현실이다. 그러니 볼 만한 기사도 드물고 지식을 얻기 위한 새로운 기사보다 가공할 범죄 기사로 채우고 낯 뜨거운 받아쓰기 기사가 난무한다.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가장 가까운 역사인 5.18 민중항쟁마저도 아직도 단죄하지 못한 역사로 남아있다. 엄청난 죽음과 상처를 남긴 결과는 많은데 실체적 진실은 이제서야 천천히 역사의 무대로 등장하고 있다. 계엄군에 작접 가담한 군인의 속죄는 가뭄에 콩나듯 드물고 아직도 거짓선동으로 가짜뉴스를 남발한 사람들은 버젓히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참담한 죽음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마저 상처의 계곡에서 허우적대다 병으로 세상을 등지고 있다. 지금도 '폭도'라는 누명을 뒤집어 씌우며 난도질하는 극우세력이 상존하는 현실이니 언제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답답하다. 그 저변에는 가짜뉴스에 매몰되어 팩트체크를 게을리 한 탓이다. 힘있는 사람들이 함부로 써대는 거짓선동에 생각 없이 따라다닌 우매함, 위정자의 무책임, 가르치는 자들의 냉대도 한몫했으니 진실은 늘 시간이 걸린다고 변명하지 말자.

 

가장 진지하게 읽은 곳은 '피노키오는 글 읽기를 어떻게 배웠을까' 라는 부제를 단 131쪽~144쪽이다. "시민이 되기 위한 첫 단계는 글 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글 읽기를 배운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여기에는 서너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사회의 기억이 부호화된 문자 체계를 배우는 기계적인 과정을 말한다. 둘째, 그런 부호들이결합되는 통사체계의 학습을 뜻한다. 셋째, 그런 부호들로 쓰인 글이 우리 자신과 주변 세계를 추상적으로나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학습을 뜻한다. 물론 세 번째로 언급한 학습이 가장 어렵고 위험하며, 영향력 또한 크다. 피노키오는 이 단계에 이르지 못한다. 피노키오는 온갖 유형의 압력-사회의 유혹, 동급생들의 조롱과 시기, 교사들의 냉담한 지도-에서 비롯되는 장애물들을 극복하지 못해 책을 읽는 독자가 되지 못한다.

 

공교육에서 읽기 학습을 마친 학생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책과 멀어지는 현상을 정확하게 지적한 대목이다. 부호화된 문자 체계를 배우고 통사체계의 학습을 마친 후, 세 번째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책을 읽는 독자로 전환되지 못하는 우리 교육의 현실, 특히 '교사들의 냉담한 지도' 라는 지적에 마음에 걸렸다. 학교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목도했던 사실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는 교사, 독서지도를 하지 않는 교사, 심지어 독서환경 조성에 무관심한 관리자나 교사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에는 책을 읽지 못하게 한 시절도 분명히 있었으니. 국민이 책을 읽고 시민의식이 깨어나면 통제하기 힘들고 대항한다는 이유에서 우민정책을 펴는 사례는 역사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불온문서라는 이름으로, 금서목록을 지정하여 출판마저 금지되는 일은 얼마든지 있으니. 심지어 여자라는 이유로 글을 가르치지 않은 조선의 역사까지. 현대에 이르러서도 딸이라는 이유로 아들에게만 공부를 시킨 일은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경제 선진국은 되었으나 책을 읽지 않는 나라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인간의 행위 중 가장 인간다워지기 위한 선택이다. 작게는 한 개인의 자아정체성을 찾게 한다. 힘든 시간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책을 읽고 새로운 꿈을 꾸고 재도약의 발판을 삼은 이들, 크게는 한 조직이, 대학의 변화를 이끌기도 한다. 살기 힘들어질수록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세상의 변화를 선도하거나 자신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이끌 수 있다. 그러니 이 나라의 혼란은 책을 읽지 않음에 있다고 단언한다.

 

다산 정약용은 18년 동안의 긴 유배생활을 복숭아뼈에 구멍이 날 정도로 독서와 글쓰기로 이겨냈다. 모함과 굴욕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난중일기를 쓰며 나라를 구한 이순신을 구한 것도 책이었다. 불운을 달고 다닌 링컨의 영혼을 지킨 것도 책이었다. 독재의 서슬 아래 죽음 같은 시간을 보내던 김대중 대통령을 지켜낸 것도 책이었다. 난독증으로 학교에서 쫓겨난 에디슨은 동네 도서관의 책을 모두 읽고 발명가로 이름을 날렸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인 한글을 창제한 세종 임금의 독서력 또한 엄청났고 조선의 부흥기는 정조 임금의 독서력에 있었다.

 

그러니 살고자 하는 자는 책을 읽어야 한다. 의식주에 매몰된 삶이 아닌, 진정한 인간이 되는 길은 책이다. 인간의 영혼은 책을 먹어야 성장하기 때문이다. 공교육 대신 어찌어찌 생존하여 선생의 길을 걷고 이제 인생의 후반기에 이르러 어둠침침한 눈으로 책을 친구삼아 사는 나의 인생은 책이 아니면 결코 건널 수 없는 강이었다. 세상을 떠나며 가져갈 물건을 하나만 고르라면 책을 품으리라. 

 

먼 나라에 가지 않아도, 세상을 유람하며 한가로운 여행길에 나서지 않아도 책 속에서 만나는 인생의 선배들이 남긴 나침반은 언제나 가야할 길을 가리킨다. 그러니 책은 인생의 망망대해를 걷는 우리에게 영원히 변치 않는 스승이 분명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일하는 것'이라며 평생 일중독자로 살았던 에디슨은 죽기 직전 까지 연구실 의자에서 발명에 몰두했다. 나에게 살아 있다는 것은 책을 읽는 것이다. 2만 권의 책을 읽으며 책만 읽는 바보로 불리는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처럼 사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다. 

 

독서에 관한 일반적인 책보다 작가의 주관적인 생각들이 다소 난해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번역의 문제라기보다 문해력이 떨어지고 문학적 상상력이 뒤진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결코 매끄럽게 읽어지지 않으니, 이번에도 완독에 이르지 못하고 중간쯤에서 멈추었다. 이래서 전문적인 공부를 위해서는 그 나라말을 배우는 모양이다. 작가의 의도를 100% 구현하는 번역가는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향상으로 선진국에 진입했다. 경제 규모는 세계 12위, 문맹률도 낮은 나라다. 그럼에도 주변국가에 비해서 책을 읽지 않는 나라다. 대학 졸업자는 세계 최상인데, 학교를 떠나면 책과 담을 쌓는 나라다. 거기다 문해력이 떨어져서 신문 사설을 읽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책을 읽지 않는 학생과 어른, 신문을 읽지 않는 사람들. 그러니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소리 지르고 싸우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책과 신문을 읽지 않고 휴대폰에 코를 박고 사는 풍경도 모자라, 먹방과 술타령까지 등장한 어느 지도자의 모습은 일상에서 만나는 우리들의 모습이니 누구를 탓하랴! 국민은 자기 수준의 지도자밖에 보이지 않는다던가.

 

이 글을 쓰면서 불현듯 생각난 두 번째 소원이 있다. 책 읽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 대통령이 읽는 책을 소개받아 읽고 싶다. 더불어 이 나라의 리더들은 어떤 책을 읽는지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러면 옷이나 구두가 완판되는 세상이 아니라 책이 완판되는 즐겁고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문득, 재임 기간동안 해마다 대통령 집무실에 자기 키만큼 책을 쌓아놓고 읽었다는 링컨을 생각한다.키도 컸던 대통령, 바쁘고 일도 많으며 정적에 시달린 그가 읽어낸 책들이 미국의 역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쟁, 노예해방을 가져왔으니 대통령의 독서는 나라를 바꾸고도 남는다. 부디, 술 대신 책을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요즘 세간에 유행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우리 대통령은 '술통령'이라고. 그 말이 무색하게 '책통령'이 되시길! 대통령의 서재를 갖추고 틈만 나면 불을 밝혀 선각자의 외침을 듣는 공부하는 대통령이길! 불가능한 최대 다수의 최대 쾌락보다는 '최소수의 최소 고통'을 윤리적 당위성으로 삼아, 그늘진 곳에서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지혜로운 눈을 가진 지도자가 되기를! 그리하여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기를! 

 

마지막으로 1962년 세상을 떠난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만 헤세는 그가 떠난지 6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랑 받는 작가다. 책에 대한 그의 일침으로 '책 읽는 사람'의 부족한 독후감을 채우려 한다. "바닥에 아무리 멋진 카펫이 깔려 있고 호화로운 벽지와 명화가 온벽을 뒤덮고 있다한들, 책이 없다면 가난한 집이다" 

장옥순/전 초등 교사/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다수 출간 jos2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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