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영등포종합사회복지관. 주화영(싱가포르국립대 3학년) 양이 ‘하이든 첼로 협주곡 2번 1악장’을 연주했다. 묵직하고 깊은 첼로 음색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흔히 첼로에 대해 ‘사람을 닮은 악기’라고 한다. 사람의 목소리를 닮은 첼로 특유의 중후하면서도 애절한 소리가 특별한 울림과 감동을 준다는 것이다. 초등 3학년 때 첼로를 처음 접한 주화영 양도 단숨에 이런 첼로의 매력에 빠졌다.
“첼로 4줄 중 2줄만 익힌 상태에서 무작정 지역 청소년오케스트라 오디션에 도전해 맨 뒷자리에 앉게 됐는데, 열심히 연습하면서 점점 앞자리로 가게 됐고 결국 수석 자리에 앉게 됐어요. 단원들과 함께 멋진 음악을 만든다는 사실이 정말 재밌고 첼로가 어느새 제 삶의 전부가 돼 있었어요. 첼로를 평생 할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현재 싱가포르국립대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면서 연습에 매진 중인 주화영 양의 꿈은 세계를 누비며 연주하는 첼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절대음감을 가져 정확한 음정 표현이 장점인 그는 활을 자유롭게 쓰면서 소리를 풍부하게 내는 점이 테크닉적인 강점으로 꼽힌다.
초등 6학년 때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음악영재 장학사업에 선발돼 무료 레슨을 받으며 꿈을 키운 주 양은 결국 예원학교(예술중학교)에 합격한 데 이어 서울예고에도 진학하게 되면서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러나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은 첼로를 계속하는 데 있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예원학교 3년 동안 사실 힘들었어요. 다른 아이들은 몇천에서 억대에 달하는 비싼 악기로 연주하고, 큰 선생님, 중간 선생님, 작은 선생님 등 레슨도 매일매일 받는 데 비해 저는 그럴 수 없다 보니 자꾸 비교가 돼 스트레스가 컸거든요. 고등학교에서도 이런 환경을 3년 동안 또 버텨서 대학에 갈 생각을 하니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많은 고민 끝에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고1 때 홈스쿨을 택한 주 양은 연습실을 빌려 아침에는 검정고시 공부를 하고 밤늦게까지 첼로 연습을 하면서 그야말로 자신과 싸움의 시간을 보냈다. 주 양은 “당시 레슨을 맡은 김태우 선생님께서 비용에 구애받지 않고 제 열정 하나를 보고 도와주셨다”며 “선생님 덕분에 한국 대학이 아니라 싱가포르 대학 등 해외로도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주 양의 첼로 스승 김태우 숭실대 외래교수는 “화영이가 첼로에 대해 진심이라는 것이 눈에 보였고 실력과 잠재력이 있는 학생이 어려운 상황 때문에 꿈을 접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이해력과 수행력이 매우 우수해서 테크닉적으로도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 많아 함께하면 재미있는 학생이었다”고 회상했다.
“비록 열악한 환경이지만 정말 간절했던 것 같아요. 10시간씩 맹연습을 하면서 몸을 돌보지 못해 어깨와 손목 등 여기저기 많이 망가졌는데, 힘들수록 더 오기도 생기고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하게 됐어요. 좋은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고등학교 2학년 나이에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당시 선발인원이 2명이었던 싱가포르국립대에 첼로 분야에도 전액 장학금으로 합격하게 됐어요. 외로웠지만 그 시간들이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열심이었기에 일찍 성과를 얻었지만 위기도 있었다. 충분히 쉬지 않고 무리하게 연습한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그는 더는 활을 켤 수 없을 정도로 손목 부상이 심해졌고 2020년 건초염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주 양은 “손목 외에도 목디스크가 와서 어깨와 팔이 저리는 일이 많다”며 “이제는 연습도 중요하지만 스스로를 잘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 몸을 더욱 아끼기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주 양은 기쁜 일과 위기였던 일까지 이 모든 과정에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도움이 컸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자퇴 후 2018년부터 지금까지 인재양성 지원사업 ‘아이리더’ 장학금을 받고있는 그는 재단 지원을 통해 레슨비는 물론 콩쿨 참가비, 악기 대여비, 악기 줄과 활털 교체비 등 각종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내달이면 4학년이 되는 그는 현재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할지, 오케스트라나 실내악 단원으로 관객들을 만날지 구체적인 진로 방향을 놓고 고민중에 있다. 전 세계를 무대로 연주하고 싶은 꿈도 있지만, 그의 진짜 바람은 자신처럼 힘든 상황에서 꿈을 향해 노력하는 학생들을 위해 재능을 베풀고 후원자의 입장이 돼 받은 만큼 사랑을 배로 돌려주는 것이라고.
“너무 욕심부리기보다 오히려 마음을 비웠을 때 슬럼프가 자연스럽게 극복되더라고요. 올 9월에는 학교에서 선발돼 핀란드 시벨리우스 음악원의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에 참가할 예정이에요.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 모르지만 열린 마음으로 현재에 최선을 다하려고요. 그러다 보면 좋은 기회도 오리라 믿어요.” 김예람 기자 yrkim@kfta.or.kr
※한국교육신문이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인재양성사업 ‘아이리더’의 지원을 받는 아동들을 소개합니다. 지금까지 학업·예체능 등 다양한 분야에 잠재력 있는 저소득층 아동 556명에게 약 123억 원이 지원됐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후원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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