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아야 할 학폭이야기] 학교전담경찰관의 아침 일과

2022.08.18 11:12:01

학교전담경찰관(이하 spo)이 매일 아침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간밤에 일어난 학교폭력 사건들을 챙기는 것이다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A, B 두 중학교 학생들 사이에 일어난 학교폭력 사건이다. A중학교 2학년 ‘기훈이(가명)’는 아파트 복도에 몰려온 16명의 아이들(B중학교)이 현관문을 발로 차며 위협하는 소리에 공포감을 느꼈다. 기훈이는 직접 경찰에 신고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다급히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알렸고 친구가 대신 112로 신고했다. 출동 경찰이 작성한 신고 처리표의 사건 개요란에는 “친구 집 앞에 10명 이상이 찾아와 벨을 계속 누른다. 친구를 대신해 신고한다”라고 간단히 적혀 있었다.

 

먼저 기훈이 학교의 학교폭력 담당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업 중이라 받지 않아 문자로 자초지종을 보내 놓고 학생부장 교사에게 전화를 건다. 역시 받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교감 선생님에게 전화하니 받으셨다. 신고 내용에 대해 알리고 학생과 면담이 가능한지 학부모와 학생에게 의사를 물어달라고 요청한다. 수업으로 바쁜 담당 선생님들을 대신해 교감 선생님께서 면담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제복을 챙겨 들고 학교로 출발했다.

 

기훈이를 기다리는 동안 B 학교 담당 SPO에게 전화를 건다. 나의 좋은 동료인 김 경사는 이미 주동자인 덕수(가명) 학부모와의 면담을 통해 드러나지 않은 저간의 사정을 샅샅이 파악하고 있었다. 김 경사 덕분에 기훈이가 초등학교 시절 집단 따돌림을 당하던 피해자이고 덕수는 그런 기훈이를 보호해주던 친구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기훈이조차 덕수를 따돌리는 식으로 상처를 준 일이 한 번 있었다고 한다. 이때 덕수 어머니의 주선으로 여러 번 사과를 받긴 했으나 기훈이의 마음속은 배신감과 피해의식으로 단단히 응어리졌고 서로 다른 중학교로 배정을 받은 후로는 어쩌다가 한 번씩 안부를 묻는 정도로만 연락했다고 한다.

 

기훈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112 신고 사건 처리표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루는 덕수가 기훈이에게 전화를 걸어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며 하소연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화 도중, “너는 내 편이야? 그쪽(여자친구) 편이야?”라고 캐묻고 “줄을 서라”고 말하며 선택을 강요하는 일이 일어났다. 애초에 덕수에 대한 신뢰가 없던 기훈이는 이를 오랜만에 전화 온 동네 친구의 한심한 넋두리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휴대폰의 녹음 기능을 켜 녹취를 하였고 통화가 끝난 후, 둘 간의 대화 내용을 고스란히 유튜브에 올렸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덕수의 어머니를 겨냥한 욕설(패드립)을 해당 유튜브에 댓글로 단 후 주변 친구들에게 링크를 전달하는 식으로 유포까지 해버렸다. 이런 행위를 한 이유를 물으니 “다른 아이들이 덕수의 실체를 알았으면 해서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 이제는 양쪽 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상황. 이대로 학폭위나 형사고소 절차로 들어가면 각자의 위법행위에 책임지는 조치를 받는 것이 불가피하다. 즉, 서로에게 더 깊은 상처로 남을 결과만 기다리고 있었다.

 

김 경사와 나는 여기서부터 고민이 깊어졌다. 그래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깊이 들어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양쪽 다 서로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깊이 뉘우치고 있고 사과를 통해 해결하고 싶다는 말이 흘러나왔고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마음이 그러하다면 더는 학폭위나 형사고소 등의 절차를 밟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우리는 경찰서에서 주관하는 ‘회복적 경찰 활동’ 제도를 활용해 공식적인 ‘사과와 화해의 절차를 가지는 것을 제안했고 양쪽 아이들과 부모님들 모두 이에 동의했다. ‘회복적 경찰 활동’이란, 상담 전문기관, 경찰, 그리고 가·피해자 학부모, 학생들이 모여 사전모임, 본 모임, 모니터링의 3단계를 거쳐 ‘약속이행문’을 작성하는 절차로 끝나는 회복적 대화 모임을 말한다. 피해자의 회복과 관계 개선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한다. 3시간의 회복적 대화모임이 끝난 후,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경찰서 정문까지 배웅하면서 기훈이의 심하게 말린 어깨를 보게 되었다.

 

“서로 사과하고 잘 끝났으니 그만 어깨 좀 펴자!”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기훈이의 등을 한 번 탁! 치면서 말했다. 곁에 있던 어머니께서 살며시 웃으셨지만 기훈이는 멋쩍어할 뿐이다. 곧 다시 위축된 어깨로 걸어가는 기훈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초등학교 때 둘 사이에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마음이 씁쓸해졌다.

이승은 울산북부경찰서 경사, 학교전담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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