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지음|서해문집 펴냄
어쩌다 강연을 하면 그 지역에 관한 공부를 미리 하고 간다. 그 동네의 유명 인사라든가 문화유적, 심지어 그 동네 출신 유명 유튜버도 찾아본다. 처음 만난 사이에서 그 동네 이야기만큼 어색함을 해소해줄 이야깃거리도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강연 요청이 왔는데 이번만큼은 동네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을 읽었기 때문이다. 구본준 선생은 한겨레신문 건축 전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여러 건축 에세이를 펴낸 분이다. 건축 이야기 분야의 유홍준 선생이랄까.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건축 이야기를 구수하고 정감있게 알려준다.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은 국내외 사연이 많은 건축물을 희로애락으로 분류해 소개한다. 그런데 이진아기념도서관을 희(喜) 즉, 기쁨의 건물로 소개했다는 사실은 다소 의외다. 이진아 기념도서관이 어떤 건축물인가? 평생 일밖에 모르고 가족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의 딸이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받던 중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슬픔을 기념한 도서관이다.
오래전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현자에게 한 아버지가 찾아와 가족을 위한 글귀를 하나 써달라고 부탁했다. 잠깐 생각에 잠겼던 현자가 마침내 여섯 글자를 써주었다. ‘父死(부사) 子死(자사) 孫死(손사)’.
가훈으로 삼을 좋은 글귀를 기대한 그 아버지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현자가 써준 글은 ‘아버지가 죽고, 자식이 죽고, 손자가 죽는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좋은 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악담에 가까운 글이라고 생각했다. 화를 내는 아버지에게 현자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자식이 부모보다 더 먼저 죽는 것만큼 불효가 없습니다. 태어난 순서대로 천수를 누리고 죽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지요.” 그제야 그 아버지는 현자의 깊은 뜻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우리는 ‘여의었다’라는 말을 쓴다. 그런데 ‘여의다’라는 우리말은 딸자식을 시집 보낼 때도 쓸 수 있는 표현이다. 딸을 시집보내는 것 또한 부모가 돌아가시는 것만큼 슬픈 일이라는 방증이 되겠다. 부모를 모두 여읜 자식을 고아라고 부르지만, 자식이 먼저 죽는 상황을 의미하는 어휘가 우리말에는 없다는 말을 들었다. 겨우 참척(慘慽) 즉, 참혹할 착에다 슬픔 척을 써서 간접적으로 표현할 뿐이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아버지 현진어패럴 대표 이상철 씨는 꿈을 미처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이진아 씨를 기억하기 위해서 사재 50억을 털어서 도서관을 건립하기로 한다. 도서관을 지을 터를 제공하는 서울의 한 구를 정해서 도서관을 짓기로 했는데 여러 경쟁자를 물리치고 서대문구가 선택됐다. 서대문구는 다른 구와는 달리 독립공원 대지를 부지로 제의했다. 이상철 씨는 공원 땅이라면 적어도 도시계획 등으로 도서관이 사라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이진아기념도서관은 수려한 외관도 자랑거리이지만 도서관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설계됐다. 즉, 공부하는 장소가 아니고 책을 읽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열람실 책상을 잘게 쪼개지 않고 눈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최대한 밝고 따뜻한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열람 책상 하나하나에 스탠드를 달고 바닥은 목재로 깔아 서재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2005년 이진아기념도서관은 마침내 준공되었고 아버지 이상철 씨는 자신의 소원대로 틈만 나면 도서관에 들러 산책도 하고 휴지도 주우면서 소일한다. 이상철 씨가 겪은 참혹한 슬픔은 이진아기념도서관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의 기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