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타인벡 지음|로버트 카파 사진
<러시아 저널>은 소설과 기록사진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가슴 설레는 저작이다. <분노와 포도>와 <에덴의 동쪽>으로 너무나 유명한 존 스타인벡과 20세기 가장 유명한 종군 사진기자이면서 스페인 내전 당시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을 담은 사진으로 잘 알려진 로버트 카파의 협업이 낳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저널>은 2차 세계대전이 이제 막 끝난 1947년 소련을 존 스타인벡과 로버트 카파가 2달간 머물면서 전쟁이 남긴 상처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 특별한 저작이다. 전쟁을 다룬 책이라고 해서 진지하고 고통스럽지만은 않다. 절친한 존 스타인벡과 로버트 카파는 마치 톰과 제리처럼 아웅다웅 다투기도 하고 장난도 주고받는다. 그리고 비참한 시절이지만 당시 소련 사람들의 긍정적인 삶의 태도와 아름다운 사연도 가득한 책이다.
과거 기록에서 현재를 보다
<러시아 저널>을 읽다 보면 신기할 정도로 지금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현재 모습과 데자뷔처럼 똑같다. 당시 러시아는 독일에 침략받은 피해자였지만 지금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가해자라는 사실만 다를 뿐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전쟁을 벌이고 있는 푸틴은 침략을 부인한다. 그는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 거주하는 러시아인과 러시아 미래 안보를 위해서 특별 군사작전을 벌이고 있을 뿐이라고 변명한다. 마치 전쟁을 러시아 국민이 원하고 있고 러시아 국민을 위해서 치르고 있다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존 스타인벡은 1947년 러시아가 입은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우리가 만난 모든 사람은 전쟁을 혐오하며, 러시아인들은 다른 모든 사람처럼 평화와 안전을 원하고 있다.’ 전쟁을 원하는 국민은 없다. 그런데도 왜 통치자들은 전쟁을 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전쟁을 불사하지 않는 지도자에 복종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는 존 스타인벡과 함께 소련을 방문했으며 기자 생활 내내 전쟁터를 누비면서 전쟁의 비참함을 알린 로버트 카파가 1954년 월남전 종군기자로 활약하다가 지뢰를 밟고 세상을 떠난 비극으로도 잘 알 수 있다.
전쟁 원하는 국민은 없어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는 독일 군대로부터 극심한 공격을 받지 않았다. 유럽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모스크바는 독일과 전쟁을 치를 때 최전선이 아니며 수도이기 때문에 방어 체계가 잘 갖춰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 스타인벡을 만난 모스크바 시민은 혹시 미국이 전쟁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전쟁이 얼마나 인간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충분히 겪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날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기기 위해서 방금 죽은 동료가 흘린 피에 손을 녹였다는 소련군의 증언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하다.
전쟁 때문에 피해를 본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우크라이나 정교회 본산이자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건축물인 키예프 페체르스크 라버라는 전쟁 중에 독일군의 약탈 대상이었다. 독일군은 이 건축물에 있던 수많은 보물을 약탈했고 약탈을 숨기기 위해서 폭격을 가해 건축물 자체를 파괴했다. 천년을 버텨온 문화유산이 전쟁으로 인해서 한순간에 파괴됐다. 전쟁으로 인한 문화재 파괴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2022년 6월 유네스코는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문화 유적 152곳이 파괴됐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