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계고는 산업화 시대에 필요한 기술 인력을 양성함으로써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직업계고는 낮은 선호를 넘어 존폐 위기에 처했다. 신산업‧신기술의 등장과 기술의 고도화, 높은 대학 진학률, 열악한 고졸 취업 환경 등은 직업계고 선호도를 떨어뜨렸다. 여기에 잦은 학과 개편, 낮은 학생 충원율, 기초학력 부족 학생 지도의 어려움 등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 차원에서는 산업 변화와 수요에 부응하는 직업교육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고, 선취업 후 진학, 고졸 채용 확대 등 취업 지원 정책도 추진했다. 직업계고 또한 생존을 위해 학과 개편, 학생정원 감축, 학교명 변경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직업계고 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효과를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존폐 위기 직업교육 살리기 위한
현장 의견 정책에 반영‧추진 시급
정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직업계고 정책 방향이 산업화 시대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미래 사회를 좌우할 신산업‧신기술의 발달은 새로운 지식과 역량을 가진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고도의 기술 전문성을 가진 인재가 될 필요는 없지만, 고교 수준의 교육만으로는 새로운 산업과 기술에 대응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대학 진학률이 70%가 넘는 우리 사회에서 직업계고 졸업자가 사회적‧경제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한계 또한 자명하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과거 직업계고가 산업 인력을 양성해왔던 것처럼 졸업 후 취업을 최우선 과제로 강조하고, 학습을 통해 역량을 높일 수 있는 진학 기회를 제공하는 데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학생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진로 선택에서 직업계고를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한국교총은 이러한 직업계고 위기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미래직업교육특별위원회를 구성‧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직업교육 현장 전문가들이 참여해 수개월 동안 논의한 끝에 직업계고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지난 11일,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부에 전달하고 정부 정책에 반영할 것을 요청했다.
제안서에서 교총은 직업계고가 취업률의 굴레에서 벗어나 고교 교육의 다양성을 제공하는 학교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반고가 보통교과를 배우는 학교인 것처럼 직업계고는 진로‧적성에 따른 전문교과를 배우는 학교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진학을 원하는 학생에게는 동일계 특별전형 확대를 통해 진학 기회를 확대하고,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에게는 안정적으로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취업의 질을 제고하고 장기근속 유인과 능력개발에 대한 지원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이번 제안은 직업계고의 숙원 과제다. 올해 상반기에 교육부는 직업계고 발전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한다. 교육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 미래 사회 변화를 논하면서 산업화 시대의 관점을 고수하고 특정 산업 인재 양성이라는 국가전략에만 매몰돼서는 직업계고 발전은 요원하다. 직업계고가 진학이든 취업이든 학생 개인의 미래와 성장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때,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직업교육은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