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지식이 있어야 하는 책은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다. 가령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그렇다. 물론 소설을 읽을 때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무시하고 줄거리 위주로 즐길 수도 있지만 확실히 배경지식이 풍부하면 작가가 그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고 행간 속에 숨겨진 묘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그런데 배경지식이 없이 ‘몸만 오면’ 된다고 손짓하는 친절한 작가들이 있다. 그중 한 명이 2012년 중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옌이다. 그가 2009년에 발표한 <개구리>야 말로 천재 작가가 쓴 친절한 소설이다.
천재 작가의 친절한 소설
평소 중국 문학에 관심이 없다가 중국 현대문학에 발을 들여놓고 싶은 독자에게는 <개구리>만 한 소설이 없다고 자신한다. 이 소설은 시골 산부인과 의사인 완신이 오십 년 동안 무려 1만 명이 넘은 아기를 받은 영웅에서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1가구 1자녀를 규정한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인 ‘계획 생육’ 관리가 되고 정관 수술과 임신 중절 수술에 앞장서면서 급기야 ‘살아 있는 염라대왕’으로 비난과 저주를 받는 존재로 변모하기까지의 일대기를 그린다.
출산과 가족 문제를 다루는 소설인 만큼 중국의 고유한 가족관이나 풍습이 자주 등장하지만, 독자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편안하게 읽어나갈 수 있다.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중국 문화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는 구성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개구리>라는 재미난 제목을 정한 이유도 저자는 친절하게 소설 속에서 설명한다.
단순히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을 다룸으로써 대략 최근 60년간의 현대중국사회의 한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은 우선 초반부터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입력과 재미가 엄청나다. 읽다가 너무 재미나서 아껴 읽게 되고 재미난 부분을 다시 돌아가 읽어나가기 일쑤다. 게다가 유머, 슬픔, 감동, 기괴함까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재미나면서도 슬프고 슬프면서도 감동적인 소설이다.
중국 사회의 변화 보여줘
‘계획 생육’을 무섭도록 잔인하게 실행하는 산부인과 의사 완신이 탄 쾌속정의 추격을 피해 허술한 뗏목에 만삭 아내를 태우고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시골 가족을 보면서 많은 독자는 눈물을 흘리기 마련이다. 뗏목을 따라잡은 ‘계획 생육’ 전용선이 추월하지 않고 뗏목을 강둑 쪽으로 밀어붙이려고 할 때 삿대를 쥔 사내는 산부인과 의사를 향해서 ‘고귀하신 의사 선생님, 우리를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라고 절규한다. 이 장면을 지켜본 이웃들은 모두 한마음이 되어서 뗏목 가족을 응원한다. 심지어 자신이 익사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일부러 물에 빠져서 뗏목 가족에게 시간을 벌여주려는 ‘계획 생육’ 간부의 행동은 모두를 감동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뗏목 추격 장면 하나만으로 저자 모옌은 1960~70년대 개발도상국 중국의 생생한 모습을 마치 인간 극장처럼 독자에게 잘 보여준다. ‘계획 생육’이 허용하지 않는 임신을 한 가정에 대해서 무시무시한 벌금을 부과하며 끝까지 추적해서 강제로 중절 수술을 시행한 1960~70년대였다면 ‘계획 생육‘을 비판한 <개구리>는 출간 자체가 불가능했을 터였다. 그러나 2009년이 되어서는 모옌도 중국 정부도 더 이상 산아제한이 중국의 미래를 밝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음이 분명하다. 지나친 산아제한으로 인해서 중국은 늙어가고 있으며 인권 존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나라라는 오명을 벗어야 한다는 각성이 일기 시작했다. <개구리>는 중국 사회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