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사람들] 아릿한 카를교 체코를 여행하는 세 가지 방법

2024.09.05 10:00:00

 

체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행지는 프라하다. 대부분의 여행자가 프라하만 보고 다른 나라의 도시로 넘어간다. 하지만 프라하 말고도 돌아볼 만한 도시가 많다. 쿠트나호라와 플젠이 대표적인 도시인데, 두 도시 모두 당일치기로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한때 유럽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와 현대 맥주가 시작된 도시에서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과 그로테스크가 공존하는 도시
쿠트나호라(Kutna Hora)라는 도시가 있다. 프라하에서 기차를 타면 40분 정도 걸리는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해발 254m의 쿠트나호라 고원지대의 브르흘리체 만 급경사면에 자리한 이 도시는 13세기에 엄청난 양의 은이 매장된 광산이 개발되면서 성장한다. 최고로 번성했던 14~15세기에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가운데 한 곳이기도 했고, 중앙 조폐국에서 최초의 은화인 ‘프라하 그로셴’(Prague groschen)을 주조하기도 했다. 


당시 쿠트나호라는 프라하에 버금가는 도시였고, 보헤미아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 16세기 이르러 은광이 바닥나면서 도시는 쇠락의 길을 걷지만, 15세기 말까지만 해도 도시엔 시청과 거대한 귀족저택이 속속 들어섰다. 블라슈스키드부르 궁전, 성 바르바라 대성당, 성 야고보 성당, 스톤 하우스, 고딕양식의 분수대 등은 보헤미아의 아주 값진 유적들이며, 유럽 건축 양식에서 보석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지금의 쿠트나호라는 마을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조용하다.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프라하를 빠져나와 마을 골목길을 여유롭게 거닐다 보면 이곳에서 며칠 정도 숨어서 지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쿠트나호라에는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은데,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성 바르바라 대성당이다. 마을 입구에서 보면 멀리 고딕식 첨탑을 송곳처럼 두르고 있는 거대한 성당이 위용을 뽐내며 서 있다.

 

1380년대에 건축이 시작돼 150년 뒤에 완성된 이 성당은 외관의 웅장함도 보는 이를 경탄케 하지만, 내부의 갖가지 장식도 보는 이를 감탄케 한다. 15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등 볼거리로 가득하다. 천장에는 보헤미아 왕가와 길드,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왕국의 문장들이 새겨져 있다. 


성 바르바라는 광부들의 수호자다. 성당 건설비의 대부분은 가톨릭교회가 아닌 시민들의 모금으로 건설되었는데, 수호성인이 아닌 광부의 조각상이 서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17세기경 민속의상을 입은 광부가 가스등과 채광도구를 들고 서 있는 그림도 인상적이다. 성당 앞마당의 난간에서 내려다보는 단풍숲으로 둘러싸인 쿠트나호라의 전경도 더없이 매혹적이다. 


성 바르바라 성당이 아름다움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매혹시킨다면 기이함과 그로테스크함으로 여행자를 홀리는 곳도 있다. 주인공은 일명 ‘해골성당’이라 부르는 코스트니체 세드렉(Koarnice Sedlec) 성당이다. 한창 은광산이 성업 중이던 14세기 무렵 유럽을 휩쓴 흑사병에 이어 후스전쟁으로 수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성당 부근에 매장됐는데, 더 이상 시신 안치가 힘들어지자, 성당의 한 맹인 수도사가 죽은 이들의 뼈와 해골로 만드는 성당을 고안해 낸다. 이후 체코 조각가가 성당 내부에 해골과 사람의 뼈를 정교하게 쌓았고 여러 장식을 덧붙인다. 


성당은 으스스하고 오싹하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입구부터 사람 키 높이보다 높은 해골 탑이 방문객을 맞는다. 천장에는 해골과 뼈를 엮어 만든 2m 높이의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다. 언뜻 보면 마늘 타래를 엮어 걸어놓은 것 같기도 하다. 해골로 만든 제단도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보기만 해도 무서운데 이 모든 걸 일일이 손으로 만든 조각가의 노력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성당 안에 싸인 해골은 모두 4만여 구의 시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는데, 성당의 종교적인 기운에다 기괴하다는 느낌, 그리고 사람의 뼈로 만든 장식의 화려함이 한데 비벼져서 독특한 느낌을 갖게 한다. 


 

 

달콤 쌉싸름한 도시, 플젠
프라하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근교 여행지는 90km 정도 떨어진 조용한 소도시 플젠(Plzen)이다. 기차로 한 시간 반이면 닿는 이 도시는 체코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맥주인 필스너 우르켈을 생산하는 곳이자 주당들에게는 ‘맥주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우리는 흔히 맥주 하면 독일을 떠올리지만, 체코는 독일 못지않은 맥주 강국이다. 전 세계에서 개인 맥주 소비가 가장 많은 나라가 바로 체코다. 체코인들의 맥주 사랑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대단하다. 한국인의 식사에 김치가 빠지지 않듯, 체코인의 식사에는 결코 맥주가 빠지지 않는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술이 물보다 싸고, 그래서 물보다 술을 더 많이 마신다. 


체코 맥주의 대표선수는 ‘필스너’다. 라거 계열 맥주를 대표하는 필스너는 전 세계 맥주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맥주인데, 필스너가 처음 만들어진 곳이 바로 이곳 플젠이다. ‘필스너’라는 맥주의 이름은 플젠이라는 지명에서 나온 것으로 프랑스 샴페인 지방에서 처음 만들어진 스파클링 와인(샴페인)처럼 원산지에 대한 표기가 전체 카테고리를 대표하는 명사로 자리 잡은 경우다. 체코인들은 플젠에서 생산된 원조 필스너 맥주의 명성을 보호하고자 오리지널(Original)을 뜻하는 우르켈을 더해 오늘날의 필스너 우르켈이라는 맥주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즉 ‘필스너 우르켈’은 ‘오리지널(원조) 필스너 맥주’라는 뜻이다.


플젠에서 맥주가 처음 생산된 것은 1295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00여 년 전이다. 당시 맥주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도시였던 플젠은 250여 가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250여 가지의 각기 다른 맥주를 생산했다. 당시 여러 제조공법으로 만들어지던 맥주는 품질이 매우 낮았고 맛은 형편없었다. 그러다 1838년 일대 혁명이 일어나는데, 플젠의 시민들이 맛없는 맥주를 더 이상 마실 수 없다며 약 5,700리터의 맥주를 광장에 쏟아버린 것이다. 


화가 난 시민들은 질 좋은 맥주를 만들기 위해 독일 바바리안 지역의 전설적인 브루마스터였던 요셉 그롤을 초빙하고, 요셉 그롤은 필젠 지역의 물·홉·보리를 사용해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는 하면발효식 맥주를 개발한다. 그리고 1842년 드디어 현대 맥주의 시작이자 최초의 라거인 필스터 우르켈이 탄생한다. 필스너 우리켈의 제조과정은 현대화됐지만, 그 제조법은 1842년 처음 탄생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동일하게 지켜지고 있다. 병·캔 등 어느 용기에 담기든 전 세계 어디에서나 처음 만들어진 그 맛 그대로다. 


굳이 맥주 한 잔 마시러 플젠까지 간다고? 이런 의문을 가진 이들도 일단 우르켈 공장에 들어서는 순간 입맛을 다시기 시작한다. 연간 25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이 공장은 53개국으로 수출되는 필스너 우르켈의 실제 공장이자, 맥주 양조과정을 관람할 수 있는 박물관을 겸하고 있다.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효모가 살아있는 상태 그대로의 맥주를 시음하는 순서다. 필스너 우르켈 지하 터널 저장고에서는 전통방식 그대로 나무통에서 숙성되고 발효된 필스너 우르켈을 맛볼 수 있다. 오크통에서 바로 따라 주는 맥주는 홉의 진한 향과 구수하면서도 상쾌한 맛이 환상적이다. 갓 따른 맥주는 눈부신 황금색을 자랑하며 풍부한 거품은 시간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다. 한 모금 쭈욱 들이키면 ‘캬아~’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살균도 여과도 하지 않아 효모가 그대로 살아 있고 맛과 향이 풍부하다. ‘아침부터 맥주를?’ 했던 사람도 금세 한 잔을 비우게 된다. 풍성한 거품과 함께 입천장과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쌉싸름한 맥주는 두세 잔째를 청하게 만든다.

 

로맨틱 프라하를 만나다
그리고 프라하. 유럽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보헤미아 왕국의 천 년 역사와 로맨틱하면서도 웅장한 건축물로 가득한 도시. 하지만 관광객으로 일 년 내내 북적이는 도시. 연간 1억 명이 찾아든다는 이 도시는 이미 1년 내내 관광객들에 의해 점령되다시피 한다. 다른 대륙은 말할 것도 없고 이웃 유럽국가의 관광객들까지도 가장 매력적인 관광지로 꼽는 곳이니 말해 무엇할까.   


프라하를 가장 잘 여행하는 방법은 딱 하나다. 바로 걷기다. 코스도 단출하다. 우리에게 ‘프라하의 봄’으로 유명한 바츨라프 광장에서 출발해 구시가 광장을 거쳐 블타바강을 가로지르는 카를교를 건넌다. 그리고 프라하성까지 건너가면 대부분의 명소를 섭렵할 수 있다. 좁고 구불구불한 구시가의 돌길을 끼고, 은유와 직유가 가미된 장식과 석조물로 화려하게 치장된 수백 년 된 건물 사이를 걷다 보면 마치 중세의 시간 속으로 들어선 듯하다.


그리고 이 코스를 동트는 새벽에 걸어볼 것. 한적하고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프라하를 만날 수 있다. 카를교에서는 블타바강 건너 있는 프라하성의 멋진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팁 한가지. 프라하를 방문한 여행자들은 그 아름다움에 반해 꼭 한 번 다시 찾기를 소원한다. 이런 이들은 카를교에 늘어선 30개의 성인상 가운데 별 다섯 개와 광채가 머리를 감싸고 있는 성 요한 네포무크 동상을 찾자. 조각상 밑단에 그의 순교 장면이 묘사된 부조를 만지면 프라하를 꼭 다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 여행정보 ]
프라하 중앙역에서 쿠트나호라 중앙역(Kotna Hora Hlavni Nadrazi)까지 가는 기차를 타면 된다. 1시간 반 동안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기차로 가는 게 가장 빠르다. 해골 성당은 쿠트나호라 중앙역에서 가깝고, 마을은 메스토역에서 내리면 가깝다. 플젠까지는 프라하역에서 기차로 갈 수 있다. 필스너 공장은 역에서 가깝다.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체코음식은 고기로 시작해서 고기로 끝난다. 대표적인 전통음식은 꼴레뇨다. 돼지를 만 하루 맥주에 마리네이드해 오븐에서 크리스피하게 만든 음식으로 족발과 비슷하다.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없고 담백한 것이 특징으로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 

최갑수 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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