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79년 대전의 D고교를 졸업했다. 당시 전국의 5대 도시가 고교평준화로 인해 대전의 D고교는 지방의 몇몇 도시의 고교들과 함께 S대 진학의 최상위권을 다투던 시기였다. 76년 D고교에 입학하니 본관 건물의 상단 한 가운데 “전국 제패 학생 되고 끌어주는 스승 되자”라는 슬로건이 크게 돋보였다. 3년의 고교생활은 그야말로 오직 하나 S대 진학의 목표에 몰입되어 공부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을 정도로 학구파가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도 한 순간의 결정으로 다양한 진로의 폭을 넓히지 못하고 단순한 사고에 집착했다. 그 결과는 개인적 환경을 넘어 입시철이면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진로 선택의 고언이자 충언으로 남았다.
필자는 집안의 장손으로 대학생 1호다. 1960년 출생 당시,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가정이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필자의 경우 그중에서도 특히 빈곤한 집안으로 부모 세대는 모두가 초등학교 졸업에 그쳤다. 필자의 부친은 할아버지가 일찍 작고하신 이유로 9남매의 장남으로 젊어서부터 한 집안의 부(父) 역할을 대신했다. 막내 동생(필자의 삼촌)만이라도 가르치고자 하는 의지로 충청도 시골에서 교육도시 공주의 고등학교까지 유학을 시켰으나 그 동생은 당시 유명한 공주의 국립 K-사대 진학에 2번이나 실패했다. 그 여파로 한이 서린 부친은 자연히 장손인 필자에게로 그 소원이 내리물림이 되었다. 그것은 필자에게 선택의 폭을 좁히고 평생에 한을 남기는 아쉬운 결정이었다.
고교 3학년 담임교사는 어려운 가정환경의 필자에게 교내 및 교외의 장학금을 받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하지만 대한 선택의 최종 순간에 필자가 원하던 S대 지원에 아슬아슬한 상태에서 전통의 K-사대를 권유했고 이는 아버지로부터 일찍부터 세뇌당한 상태인지라 아쉬움을 잔뜩 품고서 행동은 담임교사를 따르게 되었다. 학급의 모든 친구들이 원서를 자필로 작성했지만 유독 필자만은 담임교사가 직접 작성해 주는 친절을 베풀어 다소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그것은 나중에 합격자 발표 후에 인사차 들렸을 때 “그래, 수석을 했냐?”라며 묻는 것으로 인해 모든 궁금증이 풀렸다. 담임교사는 필자를 자신의 모교인 K-사대로 보내 유망한 후배로 키우고자 했던 것이었다. 물론 여기엔 가정형편상 선택의 불가피함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아쉬운 대학 선택의 한을 품고 교사가 되어서는 개인적으로 엘리트주의를 지향하는 고교 교사가 되었다. 그래서 80년대 말 당시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상태로 소속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30세의 나이에 고3 담임교사로 발탁되어 매년 담당 학급에서 가장 많은 대학 합격자와 꾸준히 S대 합격자를 배출하는 진학지도의 명성을 쌓았다. 여기엔 지역 공대로의 진학을 희망하던 학생을 고3 1년간 지극정성으로 관리해 S대의 낮은 학과로 진학시키는 파격적인 진로지도를 했다. S대에 진학한 학생은 경영대학을 복수전공해서 대기업 기획부에 입사하기도 했다. S대 입학 후에 학부모와 함께 필자를 찾은 학생은 그동안의 고마움을 진심으로 표명해 결국 필자의 진로지도는 개인의 대리만족을 넘어 엇나가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이런 결과가 축적되어 필자는 고3 지도에 열정과 봉사, 헌신 그리고 성과로 인해 지역에서 널리 인정을 받았다.
중요한 것은 필자가 오랫동안 진학지도에서 간직한 확고한 철학이었다. 그것은 경험이 많지 않고 생각의 폭이 넓지 못한 학생들에게 소위 ‘적성’이란 개념은 지도하기 나름이라는 판단이었다. 적성은 관심과 경험 여부에 따라 크게 좌우되기도 한다고 믿었다. 멀티지능을 가진 인간은 다양한 잠재력을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길 아니면 저 길도 있다’는 폭넓은 사고와 도전적인 자세, 의지가 더 중요하다. 또한 닭의 머리가 되는 것보다 용의 꼬리라도 되는 것이 후에 더 큰 삶, 더 낳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의 결정적인 요소는 첫째는 학생 자신의 자발성과 큰 이상을 목표로 하는 강력한 의지이고 둘째는 학생의 잠재력을 파악하는 교사의 역량이며 셋째는 이를 경제적으로 뒷받침할 학부모의 멀리 내다보는 안목에 달려 있다.
지금 전국적으로 대학 입시 수시 전형이 한창 진행 중이다. 6일 수능 결과가 발표되면 정시전형에 대한 준비도 해야 할 때이다. 부디 모든 수험생이 한 순간의 선택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순간의 결정을 평생으로 고착시키지 말고 일생에 걸쳐 도전하는 자세를 견지하길 바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자발적인 결정이든 아니면 부모나 교사에 의한 반자발적인 것이든 부디 고정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가능성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미국의 민중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시(詩)에서 노래하듯이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도 내가 가면 길이 된다는 생각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 길은 나중에 선도적인 결단에 대한 아름다운 성과를 남길 것이다. 그 길이 자신만이 개척한 독특하고 개성이 넘치는 또 다른 시대를 여는 길이 될 수 있다. 이 땅의 수험생 제위의 슬기롭고 지혜로운 진로 선택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