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위한 마음 챙김 철학] 인생 후반의 ‘새로운 이야기’를 위하여

2025.04.09 10:00:00

 

베이비부머, 컨베이어 벨트에서 밀려나다
인생을 전반생과 후반생으로 나누어 ‘인생 이모작’을 말하곤 한다. 우리나라 최대 인구 집단인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 그리고 제2베이비부머 세대(1964~1974년생)가 ‘인생 이모작’의 현재 주인공이다. 이 세대는 20~30대를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보내며 민주화를 이뤄냈다. 고도성장 시대 끝자락에 사회로 진출하여 30~40대에 IMF 칼바람을 맞았고, 정보화 시대의 첫 문을 열었다.


전후(戰後) 세대로서, 그 전 식민지 시대와 전쟁 시기를 온몸으로 겪은 세대와 여러 면에서 크게 다르다. 평균 수명 증가와 함께 인생 백세시대를 맞이한 첫 세대이기도 하다. 그 전 세대 노인들은 전통적 규범에 따라 경로(敬老) 윤리를 누렸다. 반면 베이비부머 세대는 ‘늙은 사람은 비효율적·비생산적’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된 이후 은퇴와 노년을 맞이하고 있다.


고도 성장기의 빠른 사회 변화에 적응하느라 삶을 성찰할 기회를 갖기 어려웠다. 빠르게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삶이었다.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밀려났다는 상실감에 시달린다.

 

이야기의 힘, 발견·치유·미래 
이런 세대에게 사회학자 김찬호, 문학평론가 고영직, 여성학자 조주은이 묻는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서해문집) 다른 사람 얘기가 아니라 당신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것. 그렇게 이야기하는 가운데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고 열어갈 수 있는지,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뜻이다. 그래서 부제목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구술생애사를 통해 본 희망의 노년 길 찾기’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이야기하는 것은 뜻밖의 큰 힘을 지닌다. 첫째, 발견. 나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둘째, 치유. 덮어버렸거나 애써 모른 척 지나간 상처를 드러내 스스로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다. 셋째, 미래. 나의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미래를 계획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발견·치유·미래가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은행원으로 일하다 은퇴하여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하는 1954년생 최영식, 전업주부로 살다가 자원봉사의 삶을 사는 1960년생 김춘화, 혁신학교 이우학교 교장을 지낸 뒤 시니어 교육운동을 하는 1957년생 정광필…. 베이비부머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 옛 갑옷을 벗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라 _ 문래동 홍반장 최영식 씨
이 가운데 ‘문래동 홍반장’으로 불리는 최영식 씨는 문래동에서 활동하는 젊은 예술가들과 철공소 아저씨들을 연결하는 링커활동 외에도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친다. 그가 서울 마포구 데이케어센터에서 치매 어르신들과 여행 다녀오는 자원봉사를 했을 때 경험담이다.

 

“할머니가 제 손을 꽉 잡으시는 거예요. 그때 ‘아, 나도 치매에 걸릴 수 있다. 그런데 말이 안 통하는 내 얘기를 누가 들어줄까? 아내가? 우리 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할머니한테는 이렇게 잘 대하면서 정작 아내한테는 너무 소홀히 한 거 같더라고요. 멀리 세계여행 가는 게 아니라 자기 옆에 있는 아내의 깊이와 잠재성을 봐야 합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간다는 것. 말처럼 쉽지 않다. 은퇴 후에는 사회활동이나 대인관계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예전 사회적 지위를 잊지 못하여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어색하다. 최영식 씨는 어떻게 극복했을까?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낮춰 다가가고 잘 어울린 건 아닙니다. ‘나이 들었는데 창피하면 어때?’라고 생각하려 했죠. 퇴직 전에 이사였든 뭐였든 ‘뭣이 중한데’요. 사람들은 옛 직함을 끌고 와 지금도 그 조직의 갑옷을 입은 것처럼 행동해요. 수용성이 떨어지는 거죠. 도움 안 되는 갑옷을 벗고, 살아 있는 동안 힘 있을 때 누군가를 위해서 ‘손’을 내밀라는 거예요.”

 

● 새로운 ‘나 자신’으로 거듭 태어나라 _ 자원봉사 달인 김춘화 씨
인터뷰 참가자 가운데 유일한 여성인 김춘화 씨는 전업주부로 살던 중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됐다. 이를 시작으로 안양 지역 ‘자원봉사 달인’이 됐다. 봉사를 잘하기 위해 취득한 자격증만도 10여 개. 그 가운데 미술치료사 공부는 왜 했을까?

 

“마음 아픈 이들을 어루만지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게 됐어요. 아들 다니는 학교 학부모회장을 하면서 아이들을 보고, 주위 어르신들을 보니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자기가 이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못 느끼고 있는 이들의 마음속에 다가가 아픔이 없게 해 주고 싶어 미술치료를 배웠어요.”

 

익명의 아내이자 며느리, 엄마로만 살아오던 김춘화 씨는 봉사활동을 통해 ‘김춘화’로 새롭게 태어났다. 봉사활동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취득한 여러 자격증은 결과적으로 경제적 측면의 노후 대비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생산자·지렛대로서의 새로운 노년
문학평론가 고영직은 최영식 씨의 삶에서 ‘생산자로서의 노년’을 발견한다. 정년 이후 ‘시간 과잉’과 ‘관계 빈곤’에서 벗어나 사회관계를 재구성하면서 공동체에 봉사하는 삶이다. 여성학자 조주은은 김춘화 씨의 삶에서 여성이 ‘스스로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인생 전략을 발견한다.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 ‘50+인생학교’에서 자신과 같은 베이비부머들의 인생 2막을 지원하며 시니어 교육운동을 하는 정광필 씨. 사회학자 김찬호는 그의 후반생에서 ‘지렛대로서의 노년 세대’를 기대한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여전히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물론 이런 구체적인 개인 사례들을 우리가 그대로 따라 할 수도, 따라 할 필요도 없다. 우리들 각자가 처한 상황과 삶의 경험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나의 삶 이야기’를 솔직하게 돌아보고 자신에 대해 너그럽게 그 이야기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 이야기에서부터 후반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표정훈 작가/평론가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강주호 | 편집인 : 김동석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