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면 서울 화단이나 공원에서 온통 홍자색으로 물든 나무를 볼 수 있다. 잎도 나지 않은 가지에 길이 1~2㎝ 정도 꽃이 다닥다닥 피기 때문에 나무 전체가 홍자색으로 물든 것 같다. 박태기나무꽃이다.
박태기나무에 물이 오르면서 딱딱한 나무에서 꽃이 서서히 밀고 올라와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정말 신기하다. 물론 아무 데서나 꽃이 피어나는 것은 아니고 겨우내 꽃눈을 달고 있다가 점점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이 화려한 꽃을 볼 때마다 박완서의 단편 <친절한 복희씨>가 떠오른다. 이 소설만큼 박태기나무꽃의 특징을 잘 잡아내 묘사한 소설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설은 지금은 중풍으로 반신불수인 남편을 돌보는 할머니 이야기다. 할머니는 꽃다운 열아홉에 상경해 시장 가게에서 일하다 홀아비 주인아저씨에게 원치 않는 일을 당하고 결혼을 했다. 그런 할머니에게는 결혼 전 가게에서 식모처럼 일할 때, 가게 군식구 중 한 명인 대학생이 자신의 거친 손등을 보고 글리세린을 발라줄 때 느낀 떨림의 기억이 있다.
나는 내 몸이 한 그루의 박태기나무가 된 것 같았다. 봄날 느닷없이 딱딱한 가장귀에서 꽃자루도 없이 직접 진홍색 요요한 꽃을 뿜어내는 박태기나무, 헐벗은 우리 시골 마을에 있던 단 한 그루의 꽃나무였다. 내 얼굴은 이미 박태기꽃 빛깔이 되어 있을 거였다. 나는 내 몸에 그런 황홀한 감각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이를 어쩌지. 그러나 박태기나무가 꽃 피는 걸 누가 제어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떨림을 감지한 대학생은 당황한 듯 내 손을 뿌리쳤다.
순박한 시골 처녀의 첫 떨림 비유
버스 차장을 목표로 상경한 순박한 시골 처녀가 처음 느낀 떨림을 박태기꽃에 비유해 어쩌면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작가가 경기도 구리 아차산 자락 아치울마을에 노란집을 지어 살 때인 2006년 봄에 발표한 것이다. 그 집 마당엔 목련·매실나무·앵두나무 등과 함께 박태기나무도 있었다. 작가가 새봄마다 애정을 갖고 박태기나무가 꽃 피는 것을 보았기에 ‘딱딱한 가장귀에서 꽃자루도 없이’ 같은 표현이 나왔을 것이다. 필자도 마당이 생기면 박태기나무 한 그루는 꼭 심을 생각이다.
<친절한 복희씨>에서 할머니는 전처의 아들 하나를 포함해 5남매를 키웠다. 아이들을 최고로 기르고 싶었고, 자식들이 되기를 바라는 이상형은 ‘나의 몸이 잠시나마 물오른 한 그루 박태기나무로 변신하는 기적과 환희를 맛보게 해준 대학생 같은 남자’였다. 남편은 반신불수인 상태지만 ‘속에서 뻗치는 기운은 여전한 듯’ 아랫도리를 씻어줄 때 교성을 낸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내 안에서 출구를 찾고 있는 잔인한 충동’을 느낀다.
그리고 할머니는 남편이 자신을 핑계로 비아그라를 구입하려 했다는 것을 알고 치욕감에 ‘죽이고 싶은 건지 죽고 싶은 건지 대상이 분명치 않은 살의’를 느낀다. 그러면서 시골에서 상경할 때부터 간직해온, ‘많이 먹으면 고통 없이 죽을 수도, 남을 감쪽같이 죽일 수도 있는 약’을 한강에 던지며 ‘터질 듯한 환희’를 느낀다. 할머니가 꽃다운 나이에 원치 않는 일을 당한 후 남편에게 가져온 ‘살의’를 비로소 벗어던진 것인지, 죽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버린 것인지 분명치 않다. 이처럼 박완서의 후기 작품에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게 열린 결말을 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작가는 2007년 10월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친절한 복희씨’라는 제목은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따 왔다”며 “남자들이 여자를 폭력적으로 ‘정복’하면 곧 그 여자를 ‘소유’할 수 있다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랑의 과정 없이 여자를 ‘정복’하는 따위의 짓은 영원히 상처를 남긴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북한 이름은 구슬꽃나무
박태기나무는 중국 원산이지만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나무 이름은 꽃이 피기 직전 꽃망울 모양이 밥알을 닮은 데서 유래한 것이다. 어릴 적 필자 고향에서는 밥알을 ‘밥태기’라고 불러서 이 나무 이름을 듣고 금방 수긍할 수 있었다.
북한에서는 ‘구슬꽃나무’라고 부른다. 꽃의 모양을 보고 붙인 이름으로, 활짝 핀 꽃이 아니라 막 피어나려는 꽃봉오리가 구슬 같다는 의미일 것이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 <궁궐의 우리나무>에서 “박태기나무와 구슬꽃나무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박태기나무보다 낭만적인 구슬꽃나무에 점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박태기나무는 꽃이 피면 매우 화려하고 모양도 독특해 화단이나 공원에 많이 심는다. 다만 꽃색 등이 너무 튀기 때문에 다른 나무들과 함께 심기보다는 따로 한 그루를 심거나 아예 이 나무끼리 모아 심는 경우가 많다. 이 나무들만 모아 심어 생울타리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햇빛을 좋아하지만, 반그늘이 져도 잘 살며, 특히 콩과 식물이기 때문에 메마른 곳에서도 뿌리혹박테리아가 질소를 고정해 살아갈 수 있다. 잎은 계수나무잎과 비슷한 심장형이고, 좀 두껍고 반들반들하다. 꽃이 지고 나면 10cm쯤 되는 꼬투리 모양의 열매가 달린다. 꽃처럼 열매도 다닥다닥 달린다. 어쩌다 꽃이 흰색인 박태기나무도 볼 수 있다.
박태기나무는 전국 어디에나 흔한 나무 중 하나지만 <친절한 복희씨> 같은 소설을 통해 문학적인 생명력을 얻었다. 필자에게도 이 작품을 읽은 다음에 보는 박태기나무꽃은 더 이상 이전의 박태기나무꽃이 아니었다.
박완서는 꽃을 주인공에 이입(移入)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 작가의 다른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능소화는 여주인공 현금처럼 ‘팜파탈’ 이미지를 갖는 화려한 꽃이다. 현금이 “능소화가 만발했을 때 베란다에 서면, 마치 내가 마녀가 된 것 같았어. 발밑에서 장작더미가 활활 타오르면서 불꽃이 온몸을 핥는 것 같아서 황홀해지곤 했지”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능소화를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 비유한 것이다.
작가는 사람들의 위선과 허위의식에는 가차 없는 시선을 보내지만, 주변 꽃은 한없는 애정으로 바라보며 또 다른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소설가 김훈이 ‘말을 걸어올 때까지 눈이 아프도록’ 꽃을 바라보는 스타일이라면, 박완서는 꽃을 그리 길지 않게 묘사하고 지나가는 것이 단숨에 특징을 잡아내는 스타일인 것 같다. 작가의 맏딸 호원숙씨는 “꽃이 피었을 때 엄마가 가장 그립다”고 말했다. 필자는 꽃 중에서 박태기나무꽃과 능소화가 필 때 작가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