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그날, 난 속초 청봉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다. 갑자기 강원도교육청으로부터 현장체험학습 중 교통사고가 났는데, 교감과 담임선생님만 있으니 가서 도와주라는 전화를 받았다. 현장 사고 수습을 지원하기 위해 서둘러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안타깝게도 손쓸 겨를 없이 학생이 사망했다는 의사의 판정을 받았다. 갑자기 일어난 불의의 사고로 제자를 잃은 담임선생님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한참 후 연락을 받고 학생의 부모님들이 병원에 오셨다.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되는 그런 안타까운 사고였다. 교육지원청 현장수습팀이 나머지 일을 잘 처리했고, 도교육청에서도 진심을 다해 학생 사망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사건이 잘 끝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원론적인 판결 취지 … “아무리 법에 감정이 없다지만”
그런데 얼마 뒤 들려온 소식은 안타깝기만 했다. 현장체험학습을 인솔했던 교사들이 업무상 학생 인솔 부주의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되었고, 검찰에 기소되어 해당 교사들이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지난한 시간이 흘러 지난 2월 11일 춘천지방법원에서 해당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시간을 내어 방청했다. 재판이 있기까지 교원들은 학생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였기에 유족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 어떠한 행동도 자제했다. 이런 사고로 설마 교단을 떠나야 할 정도의 판결은 내리지 않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를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판결을 기다렸다.
그런데 판결 취지는 너무 원론적인 내용이었다. 인솔 교사가 왜 중간중간 뒤돌아보지 않았으며, 차가 이동하지 않았는데 왜 학생들을 이동시켰고, 차가 이동할 것을 예측하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자동차가 정차했고, 학생들이 다 내린 뒤 인원 확인하고 교사가 인솔했는데, 정차해 있는 차가 움직일 거라고 어떻게 예상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근거로 담임교사에게 금고 6월, 집행유예 2년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판결이 선고되었다.
현장에 있던 모두는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할 말을 잃었다. 가르치던 제자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는 일을 현장에서 겪은 교사의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평생의 상처로 남을 것이고, 이것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선생님에게 교직을 그만둘 정도의 형사적인 처벌이라니. 아무리 법에 감정이 없다고 하지만, 이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예견된 일 … 현장체험학습 운영 보류·폐지
이번 법원의 판결은 교육현장을 또 한 번 혼란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장의 교사들은 2023년 ‘노란버스 사태’ 때처럼 술렁이게 되었고, 모든 교원단체가 교원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는 더 이상 현장체험학습을 진행할 수 없다는 의견들을 내놓았다. 어쩌면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강원 초등교장회에서도 판결 직후 긴급하게 의견을 수렴했다. 결과는 현장체험학습 운영 시 교사들의 의견을 적극 존중하고, 교권보호 법률이 시행될 때까지 보류 또는 폐지하겠다는 의견이 응답자의 69.5%를 차지했다. 현장체험학습 때 교사의 과실로 인한 사고가 아닌 경우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학부모 동의가 있을 경우에만 진행하겠다는 의견도 16.3%에 이르러 대다수 교장은 현장체험학습 운영에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이러한 현장의 의견을 간과하고 예전처럼 현장체험학습 운영을 학교에 맡겨두게 된다면 노란버스 사태 때 일부 지역 학부모들이 교사들을 고발하는 등의 갈등이 재연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필자가 처음 발령받았을 때만 해도 학교행사라고는 봄 소풍과 가을소풍 그리고 가을 운동회가 전부였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 학교 주관의 현장체험학습을 운영하는 것이 하나의 관행처럼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과거 문화적 혜택이 별로 없고,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기 어렵던 시절에는 학교 주관으로 체험학습과 수학여행을 진행했지만, 반드시 해야 할 필수 교육과정은 아니다. 다만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배웠던 것들을 학교 밖에서 직접 체험하며 인식의 세계를 넓히는 활동을 관행적으로 해 온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학기 중에도 학교 규칙이 정한 일정 기간 가정 체험학습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국내여행은 물론 해외여행을 다니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이런 시대에 교사들에게 무한 책임을 지우고, 심지어 교직을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현장체험학습을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것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 시점이라고 생각해 본다.
시대 변화에 맞춰 현장체험학습에도 상황과 현실을 반영해야
요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학습 경험 중심의 수학여행을 운영해 보면 각종 문화유적이나 유물에 관한 관심보다는 밤새도록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정작 중요한 수학여행의 취지에 어긋난 경우가 많다. 또 아이들을 인솔하다 보면 정말 럭비공처럼 어느 곳으로 튈지 몰라 인솔 교사들이 한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또한 아이들과 부모들의 수요에 맞추다 보면 체험학습이라는 것이 놀이동산에 가서 놀이기구를 타거나 외부 전문업체에 위탁하는 것을 선호하기에 현장체험학습의 본질이 퇴색되는 것 같다. 더구나 이번 판결에서 보듯이 인솔 교사가 수십 명의 학생 안전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게 된다면 교사들은 체험학습 운영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시대 상황과 현실을 반영한다면, 차라리 학교 주관의 현장체험학습을 폐지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교육부나 교육청에서는 현장교사들의 의견을 먼저 들어보고 거기에 합당한 대책을 세워야 마땅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늘 대책이라는 것이 교육수요자라 일컫는 학부모들을 먼저 보고, 또는 경제 활성화 등의 사회적인 이유로 현장과는 동떨어진 보여주기식 대책을 일방적으로 내려보내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많다. 세월호 사건 이후 모든 학생에게 생존수영교육, 학생 자살사건이 생기면 생명존중교육, 학교폭력 대책으로 학교마다 전담경찰관을 두고, 학교폭력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시행하게 했지만 학교가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학교가 자율적으로 운영해야 할 교육과정을 경직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은 현장에 답이 있다고 한다. 이런 때일수록 무슨 무슨 법을 급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먼저 현장교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보자. 조금은 더디지만 그렇게 교육구성원들의 충분한 논의과정을 거쳐 교사들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충분히 법적으로 보호받으며 안심하고 가르칠 수 있는 교육환경, 사회적인 환경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하고, 교사들은 안심하고 가르치는 그런 행복한 학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