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풍경] 리스본과 신트라에 취하다

2025.07.07 10:00:00

유라시아의 끝에서 마주한 낭만

 

그저 한 번쯤은, 끝에 다다르고 싶었다. 목표는 유라시아 대륙의 끝이었지만, 끝을 향하는 길목마다 더 큰 낭만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 낭만의 이름은 리스본, 그리고 신트라였다. 이베리아반도(스페인·포르투갈)를 여행하게 된다면 포르투갈의 수도이자 대표 도시인 리스본(Lisbon)은 반드시 고려하는 여행 목적지 중 하나일 것이다. 리스본 여행은 대개 구시가지에서 시작하게 되는데, 출발했던 유라시아의 동쪽과는 다른 경관에 취해 반쯤 넋을 잃고 걷다 보면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지만 정말 오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리스본 외곽에 위치한 신트라(Sintra)는 리스본에 가려진 고요한 낭만이다. 유라시아 끝자락에서 마주한 낭만, 리스본과 신트라에 취해보자.

 

테주강을 따라 걷는 리스본의 시작
1월 중순,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예상보다 따뜻한 공기였다. 책에서만 배웠던 지중해성 기후가 이런 느낌이란 것을 몸소 느끼며, 리스본에서 여정은 산뜻하게 시작되었다. 리스본을 여행한다면 바이샤(Baixa) 지구는 여행의 출발지로 손색이 없다. 이곳은 리스본의 중심부이면서 최대 번화가이다. 1755년 대지진 이후 체계적으로 재건된 이 지역은 다른 오래된 유럽 도시들과는 다르게 정돈된 격자형 거리가 특징이다. 바이샤 지구의 호시우 광장(Praça do Rossio)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아우구스타 거리(Rua Augusta)에는 카페·상점·식당이 이어져 있어 가볍게 산책하며 리스본의 분위기를 느끼기에 좋다. 걷다가 도착한 거리 끝에는 웅장한 아우구스타 개선문(Arco da Rua Augusta)이 자리하고 있다. 


개선문을 지나면 탁 트인 코메르시우 광장(Praca do Comercio)과 바다처럼 보이는 테주강(Rio Tejo)을 마주할 수 있다. 코메르시우 광장은 과거 왕궁이 있던 자리에 조성된 넓은 광장으로, 테주강과 맞닿아 있다. 강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이 노란색의 건축물로 둘러싸여 있으며, 정면으로는 강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광장 주변에는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이 있어 잠시 앉아 여유를 즐기기에도 좋다. 


노을이 질 무렵이면 하늘과 강이 붉은빛과 주황빛으로 천천히 물들어 간다. 붉게 타오르는 하늘 아래에서 코메르시우 광장과 강이 하나로 이어지는 풍경은 리스본을 기억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다. 이때 시선을 조금만 옮기면 멀리 ‘4월 25일 다리(Ponte 25 de Abril)’가 테주강 위를 길게 가로지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저녁노을에 물든 다리의 실루엣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하며 리스본의 낭만적인 저녁을 완성한다. 

 

 

역사와 맛이 공존하는 벨렝지구
벨렝(Belem)은 리스본 서쪽에 위치한 해안 지구로, 대항해 시대의 흔적과 지역 고유의 미식이 어우러진 장소다. 시내 중심부에서 전철이나 트램을 타고 약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으며, 리스본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제로니무스 수도원(Mosteiro dos Jeronimos)이다. 16세기 초, 바스쿠 다 가마의 항해 성공을 기념해 지어진 이 수도원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마누엘 양식의 걸작이다. 입구부터 화려한 조각과 섬세한 아치 구조가 시선을 압도하며, 내부 회랑은 차분하고 정제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포르투갈의 국민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와 바스쿠 다 가마의 석관이 있어 역사적 의미도 크다.


수도원 인근에는 에그타르트의 원조로 알려진 ‘파스테이스 드 벨렝(Pasteis de Belem)’이 위치해 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전해졌다는 레시피를 유지하며 1837년부터 운영되어 온 이 전문점의 갓 구운 에그타르트는 바삭한 페이스트리와 부드러운 커스터드 크림이 조화를 이루며, 여기에 계핏가루를 뿌려 먹는 방식이 현지식이다. 테이크아웃도 가능하지만, 여유 있게 앉아 먹는 경험이 더 기억에 남는다.


달콤한 휴식을 마친 후에는 테주강 강가에 위치한 벨렝탑(Torre de Belem)으로 향했다. 벨렝탑은 16세기 초, 항구 방어와 등대 기능을 위해 지어진 석조 요새이다. 마누엘 양식 특유의 장식과 해양 상징이 곳곳에 새겨져 있으며, 대항해 시대의 상징물로서 상징성과 건축미를 동시에 지닌다. 내부 관람이 가능하지만, 입장 대기 시간이 다소 길 수 있어 시간 여유를 두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매력적인 교통수단, 트램과 푸니쿨라
리스본은 언덕의 도시라는 별명답게 걷는 길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이러한 지형 덕분에 독특한 교통수단들이 발달했는데 그중 하나가 푸니쿨라(Funicular)다. 탑승했던 비카 푸니쿨라(Bica Funicular)는 테주강변의 카이스 두 소드레(Cais do Sodré)와 구시가지 언덕을 잇는 짧고 가파른 골목길을 따라 운행된다. 푸니쿨라는 천천히 오르며 양옆으로는 리스본 특유의 낡은 건물과 골목이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진다.

 

좁은 골목 사이를 느리게 올라가는 그 시간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을 선사한다. 도착 지점에 내리면 그 장면은 절정을 맞는다. 노란 푸니쿨라 차량과 리스본 특유의 좁은 골목, 그리고 저 멀리 펼쳐진 테주강의 반짝이는 수면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전경은 그 자체로 리스본을 응축한 ‘한 컷’처럼 느껴진다. 짧은 탑승 시간이지만, 이 풍경 하나만으로도 비카 푸니쿨라를 경험할 이유는 충분하다.


리스본을 대표하는 교통수단인 트램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28번 트램(Eléctrico 28)은 알파마·바이샤 등 리스본의 구시가지와 언덕 마을을 연결하며,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가장 밀도 있게 담아낸다. 12번 트램(Eléctrico 12)은 알파마 지역을 짧게 운행하지만, 클래식한 골목 풍경을 부담 없이 즐기기에 좋은 노선이다. 좁은 골목 사이를 달리는 트램이 자동차와 아슬아슬하게 교차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스쳐 가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인상 깊다.

 

운전석 옆에 서서 기사들의 조작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트램 노선과 시간표는 구글 지도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어서 초보 여행자도 큰 어려움 없이 활용할 수 있다. 천천히 도시를 관통하며 달리는 트램에 앉아 있으면, 마치 또 다른 영화의 한 장면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창밖으로 흐르는 리스본의 골목·풍경·사람들까지 모두가 하나의 장면이 되어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리스본을 한눈에, 상조르즈 성과 산타후스타 엘리베이터
구시가지의 중심에서 트램을 타고 알파마(Alfama) 지구에서 내리면, 상조르즈 성(Castelo de Sao Jorge)으로 향하는 언덕길이 시작된다. 성까지는 도보로 약 10분 남짓 오르막길이 이어지지만, 그 길조차 리스본 특유의 고즈넉한 골목과 상가들이 이어져 있어 걷는 시간마저 즐겁다. 언덕 위에 자리한 상조르즈 성은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이다. 고대 페니키아인부터 서고트족·무슬림·기독교 등 1,500여 년 동안 리스본의 지배세력이 바뀔 때에도 이용되었던 역사적인 장소다. 성 내부에서는 특별한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곳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공작들이 이 요새의 독특한 분위기를 완성해 준다. 


고요한 성곽, 초록의 나무 그늘, 그리고 천천히 걸어 다니는 공작의 조합은 현실과 동화의 경계를 허문다. 성벽 위에 오르면 붉은 지붕으로 가득한 구시가지와 푸른 테주강, 그리고 멀리 펼쳐지는 언덕 도시 리스본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노을이 도시를 붉게 물들일 때 상조르즈 성에 머물고 있다면, 그 장면은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풍경이 된다. 이곳이야말로 리스본이 지닌 낭만과 역사, 그리고 도시의 형태를 가장 완벽하게 드러내는 장소다.


산타후스타 엘리베이터(Elevador de Santa Justa)는 바이샤 지구 중심의 아우구스타 거리 중간에서 마치 타워처럼 솟아 있는 독특한 구조물을 하고 있다. 1902년에 완공된 이 엘리베이터는 네오고딕 양식의 철제 구조물로,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브 에펠의 제자였던 라울 메스니에르 두 퐁사르가 설계했다. 엘리베이터는 도심 속 수직 이동 수단으로, 저지대인 바이샤와 고지대인 시아두(Chiado)를 직접 연결해 준다. 현재는 전망대 관람을 위한 주요 관광 루트로 더 많이 이용된다. 꼭대기에 마련된 전망대에서는 구시가지와 테주강, 멀리 보이는 상조르즈 성의 모습까지 조망할 수 있다.


상조르즈 성과 산타후스타 엘리베이터는 각기 다른 높이와 방식으로 리스본을 조망하게 하지만, 두 장소 모두 리스본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깊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천천히 걷고, 느리게 오르며 마주한 이 도시의 전경은, 여행자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
 
신트라에서 마주한 유라시아의 끝
신트라는 리스본 교외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문화경관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리스본과는 또 다른 고요한 정취가 흐르고, 골목마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동화 속 마을에 들어선 듯한 풍경이 펼쳐지고,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여행지처럼 느껴진다. 리스본을 방문한다면 하루쯤 시간을 내어 꼭 들러볼 만한 가치가 있다.


리스본 중심의 호시우(Rossio)역에서 신트라행 열차를 타면 환승 없이 약 50분 후 도착하게 된다. 도착과 동시에 리스본과는 확연히 다른 공기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신트라에는 신트라 왕궁, 페나 성, 무어인의 성터 등 볼거리가 풍부해 하루 만에 모두 둘러보기는 어렵다. 그중에서 내가 찾은 곳은 헤갈레이라 별장(Quinta da Regaleira)이었다.

 

헤갈레이라 별장은 20세기 초 포르투갈의 한 부자가 지은 저택과 정원으로, 마치 미로처럼 설계된 건축물과 상징적인 공간들이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다. 특히 이니시에이션 웰(InitiationWell)은 가장 독특한 구조물이다. 우물은 깊이가 27m에 달하며, 나선형 계단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차분히 걸어 내려가는 동안 돌벽에 스치는 습기와 어둠, 그리고 점점 좁아지는 공간은 단순한 관람이 아닌 하나의 체험처럼 느껴졌다.


여정의 마지막 지점은 호카곶(Cabo da Roca)이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 끝’으로 알려진 이곳의 십자가 탑에는 포르투갈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말인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가 적혀 있다. 신트라에서 버스를 타고 산길을 굽이굽이 30분이나 넘게 달려 도착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푸른 대서양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압도적인 풍경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장소였고, 실제로 그 기대를 넘어서는 감동이 있었다. 유라시아의 동쪽 끝에서 출발해 서쪽 끝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작은 관광 안내소에서는 호카곶을 방문했다는 증명서도 유료로 발급받을 수 있었는데, 그 종이 한 장이 이번 여행의 의미를 상징처럼 담아주는 기념이 되었다.


리스본과 신트라를 걷고, 경관을 바라보면서 낯선 공간이 주는 익숙한 위로를 받았다. 걷고, 바라보고, 감탄하는 그 모든 순간이 삶의 리듬을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유라시아의 끝에서 마주한 낭만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내 마음속을 천천히 비추고 있다.
 

김하늘 인천 온라인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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