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촉법소년 형사처벌 연령 하향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거세다. 범죄 수법이 잔인해지고 연령대가 낮아지는 현실 앞에서 대중이 느끼는 분노와 공포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그러나 30여 년간 교단을 지키며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본 교육자의 시선에서 볼 때, 무거운 의구심이 든다. 우리가 마주한 비극은 아이들을 올바르게 길러낼 ‘교육의 힘’이 현장에서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무력화된 교원 보호 장치
오늘날 교육 현장에는 공동체 의식보다 개인의 요구와 권리가 과도하게 강조되는 기형적인 모습이 존재한다. 사회적 역량을 키워주는 대신 극단적 개인주의가 팽배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적 질서를 익힐 기회를 잃고 있다. 판단 능력이 미흡하고 자아정체성을 수립해 나가는 청소년기에 적절한 ‘교육적 제동’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미성숙한 존재들에게 단죄의 칼날을 들이대기 전, 우리 사회가 공동체 교육이라는 본연의 책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 뼈아프게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교육 당국 역시 교권 보호와 올바른 훈육을 위해 다각도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그 장치들이 실질적인 효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를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일부 학부모의 과도한 이기주의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교사가 정당한 교육적 권위를 가지고 아이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해도, ‘민원’이라는 이름의 압박이 시작되면 마련된 제도들은 힘없이 무력화되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다. 교육 본연의 기능에 집중해야 할 학교가 민원 대응에 과도한 에너지를 쏟게 되면서, 정작 바르게 길러져야 할 아이들은 제대로 된 훈육을 받을 기회를 잃고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 아이를 참되게 귀한 사람으로 키우는 올바른 방법을 알지 못하고 행한 ‘오냐오냐’ 식의 잘못된 양육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중한 아이들을 범죄로 내몰아 형사처벌의 위기로 밀어 넣는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했다.
물론 강력한 교권 확립을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가 교권 보호 장치를 마련하면서도 끊임없이 교육 현장에 ‘아동학대’와 같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잣대를 들이대도록 허용하는 이유는, 매우 극소수이긴 하나 정상적인 교육 수행이 불가능한 부적격 사례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정부는 촉법소년 형사처벌 연령 하향 논의와 더불어, 교육 시스템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우선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실질적 교권 확립이 필요하다. 부당한 개입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하고 교사의 교육적 판단을 신뢰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둘째, 부모의 교육적 책무성을 강화해야 한다. 잘못된 애착이 내 자녀의 올바른 성장과 행복을 위협하는 행위가 될 수 있음을 명확히 인지시켜야 한다. 셋째, 교육계에 자정 시스템을 도입하여 공교육의 신뢰를 확고히 해야 한다. 전문적 검증을 통해 99.99%의 선량한 교사를 보호하고 교육의 질을 담보해야 한다. 넷째, 개인의 요구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우선시하는 교육 시스템으로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단죄보다 교정 우선 분위기 필요
뿌리가 썩으면 건강한 줄기도 열매도 기대할 수 없다. 청소년들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기 전에 우리 사회가 그들을 바른길로 인도할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시켰는지 반성해야 한다. 사회는 학부모가 바른 양육을 인식하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아이들을 가르칠 권한을 교사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교단은 내부 자정으로 신뢰를 공고히 하고, 부모는 학교를 신뢰하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촉법소년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 열쇠다. 단죄보다는 교육과 교정이 우선되는 사회를 위해 실질적인 현장의 변화가 일어나길 간곡히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