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세계그룹 <스타벅스 코리아>의 역사 왜곡과 혐오 사상에 근거한 저급한 청년 마케팅으로 전국이 몸살을 앓았다. 여기에 당당해야 할 청소년의 스포츠 경기장에서도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의 구호를 외치며 또다시 비슷한 조롱과 혐오, 지역 비하, 역사 왜곡의 모습이 고등학생들에게 그대로 전이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먼저 교육 매체에서 전하는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고자 한다. “선생님, 5·18은 (어느 도시든 유명 빵집이 있듯이) 그냥 유명한 광주 빵집에서 일어난 이벤트 같은 거 아니에요?” 어느 고등학교 역사 수업 시간, 한 학생이 킥킥거리며 던진 이 한마디에 교실은 순식간에 침묵이 흘렀다. 이는 농담이 아니다. 요즘 중고등학교 교실이나 청소년들이 주로 상주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면, 가슴을 쓸어내리다 못해 피눈물이 날 지경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피로써 일궈낸 광주의 아픔과 상처는 어느새 ‘조롱거리’가 되었고, 청소년 사이에서 일종의 ‘핫(hot) 한 놀이문화’처럼 확산되었다.
이 철없는 청소년들을 보며 우리는 너무나 기가 막혀 혀를 차게 된다. 과거를 쉽게 잊는 민족의 특성을 가진 우리는 “요즘 애들은 철이 없어도 너무 없다”라며 개인의 인성 문제로 치부해 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과연 이게 철이 없어서 벌어지는 일일까? 아니면 우리 역사 교육이 완벽하게 실패했기 때문일까? 단언컨대, 이것은 단순한 ‘철부지들의 방황’이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반역사주의자’들이 설계한 덫에 청소년들이 홀린 듯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은근히 ‘서울 및 수도권 우월주의’라는 정서까지 겹치면서, 지방은 지워지고 차별은 당연시되는 끔찍한 청소년 문화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은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살다 보니, 요즘 이곳의 청소년들에게 ‘지방’은 마치 미지의 대륙이나 다름없다. 서울 중심주의에 빠진 청소년들에게 수도권 밖의 지역은 ‘발전이 뒤처진 곳’, 혹은 ‘조롱해도 괜찮은 하위문화의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마치 서울 강남 거주자들이 그곳을 벗어나면 귀양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설상가상으로 여기에 온라인의 자극적인 ‘밈(Meme)’ 문화가 기름을 붓고 있다. 유튜브 쇼츠나 틱톡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한 극우 성향의 영상들이 ‘유머’와 ‘재미’라는 탈을 쓰고 유통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진지하게 배우는 교과서보다, 15초짜리 자극적인 영상이 청소년들의 뇌를 먼저 장악해 버리는 것이 가장 큰 후유증이다.
역사학자들의 엄밀한 고증과 법원의 수많은 판결문은 무시한 채, 가짜 뉴스 유튜버의 목소리를 진리로 받드는 청소년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안타까울 지경이다. 교과서 속의 광주는 고통과 눈물의 장소지만, 액정 화면 속의 광주는 그저 ‘댓글 놀이감’의 소재일 뿐이다. 이 비극적 격차를 줄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비극의 연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분열과 증오만 남은 사회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이제는 그저 헛웃음을 지으며 “녀석들 참 철이 없구나”하고 넘어갈 때가 아니다. 국가 차원의 획기적이고 단호한 ‘특별 교육 방안’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 방안으로 두 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가짜 뉴스를 파헤치는 ‘역사 미디어 리터러시’를 의무화해야 한다. “5·18은 1980년에 일어났다”는 식의 암기식 교육은 종말을 고해야 한다. 이제는 교실에서 지혜롭게 ‘일베식 왜곡 자료’나 ‘극우 유튜버의 영상’을 틀어놓고, 그것이 왜 역사적 사실과 다른지 실질적인 ‘역사 리터러시’ 수업을 해야 한다. 아이들이 온라인에서 가짜 정보를 만났을 때 면역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학교가 강력한 백신을 주사해야 할 것이다.
둘째, ‘지방 소멸 방지’와 연계한 ‘지역 교차 교류’를 실시해야 한다. 지방 폄훼와 수도권 우월주의를 치료하는 가장 좋은 약은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다. 수도권 아이들이 광주, 대구, 부산 등 지역의 역사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현지 청소년들과 함께 역사 콘텐츠를 제작하는 ‘전국 학교 교류 프로젝트’를 제안하고자 한다. 예컨대, 광주의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주먹밥을 나눠 먹으며 당시 시민들의 연대 정신을 몸으로 배운 아이라면, 감히 골방에서 손가락으로 혐오의 댓글을 배설하거나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애서 경고한 것처럼 ‘생각 없이 사는’ 것도 끔찍한 범죄 행위라는 인식을 갖게 해야 한다..
해외로 눈을 돌려 보자. 특정 지역을 비하하거나 역사적 비극을 조롱하는 용어를 사용할 경우, 이를 단순한 욕설이 아닌 ‘반사회적 인권 침해 및 학폭’에 준하는 수준으로 엄격히 다룬다. 미국이나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스포츠계에서도 상대 팀이나 선수들을 향한 혐오나 차별의 언어, 표정, 제스처를 하기만 해도 경기장 출입 금지 및 관람 자격을 영구 박탈하는 초강경책을 쓰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지만, 역사를 조롱하는 세대에게는 당장의 인간성조차 없다.” 어느 원로 교육자의 뼈아픈 일갈이다. 청소년들이 광주를 조롱하는 것은 그들이 태생부터 악해서가 아니다. 무엇이 부끄러운지, 무엇이 위대한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이를 방치한 책임이 기성세대들에게 있다.
또한 수도권 우월주의라는 오만한 안경을 벗겨내고, 맹목적 지역 폄훼 사상을 걷어내야 한다. 이제 16개 시·도교육청과 교육부는 눈치 보기식 교육에서 벗어나, 역사 정의와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한 청소년 교육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청소년들의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 화면 속 혐오의 불빛을 끄고, 서로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따뜻한 눈빛을 지켜주는 것,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청소년 교육에 실행해야 할 시급한 국가적 과제다. 광주의 눈물이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단단한 뿌리임을, 청소년들이 가슴 깊이 품을 수 있도록 이제 학교가 역사 인식과 인성 교육의 교육 대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할 때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