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보내며

2026.11.05 13:28:31

​11월 3일, 책상에 앉아 서가에 꽂힌 윤동주의 시집을 펼쳐 무심코 읊조려 보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이 ​‘서시’를 나지막이 목청 돋워 읽어 내려갈 때, 늘 가슴 한구석을 치고 올라오는 시린 울림이 오늘따라 더욱 깊이 있게 그리고 의미 있게 다가온다.

 

어둠이 짙게 깔린 일제 강점기, 펜을 쥔 손을 떨면서도 순결한 영혼으로 별을 노래했던 청년 윤동주, 그는 비록 포탄이 터지는 전선의 맨 앞에 서지는 않았으나, 시로써 자신과 시대를 깨우는 영혼의 독립운동가였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그 시절의 청년 학도들은 윤동주 한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 앞선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일어난 한일 학생 간의 충돌은 단순한 패싸움이 아니었다. 빼앗긴 들녘에서 억눌려 온 민족적 분노와 “우리는 차별받지 않고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청년들의 자각이 폭발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광주학생항일운동은 전국 300여 개 학교, 5만 명이 넘는 학생들의 동맹휴학과 시위로 번져나갔다. 1919년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항일 민족 운동을 끌어낸 주역은 어른이나 정치가가 아니었다. 바로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든 10대 청소년들이었다.

 

​학생독립운동은 단 한 번의 단발성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리 역사에서 시대를 전환하고 민족의 양심을 깨운 결정적 순간마다 언제나 ‘학생’이라는 이름의 빛나는 등불이 켜져 있었다.

 

1926년 ​6·10 만세운동은 융합과 연대의 첫 신호탄이었다. 조선 왕조 마지막 임금인 순종의 인산일을 기해 일어난 6·10 만세운동의 중심에도 학생들이 있었다. 조선학생과학연구회를 중심으로 한 청년 학생들은 진영과 이념을 넘어 민족적 단결을 이루어냈다. 이는 훗날 신간회 결성과 광주학생운동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민족운동의 굳건한 징검다리가 되었다.

 

​성진회와 독서회 운동으로 어둠 속에서 피어난 지성의 결사가 있다. 단순한 혈기와 분노만으로는 일제의 치밀한 압제를 견뎌낼 수 없었다. 광주를 비롯한 전국 각지의 학생들은 ‘성진회’와 같은 비밀 독서회를 만들어 밤마다 몰래 촛불을 켜고 역사와 사회, 그리고 민족의 미래를 공부했다. 지성이 뒷받침된 의식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학생들은 스스로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구 2·28 민주운동과 4·19 혁명으로 이어진 민주주의의 핏줄이다. 해방 이후에도 학생들의 피는 꺾이지 않았다. 1960년 2월 28일, 부당한 정권의 정치적 압력에 맞서 거리로 튀어나온 대구의 고등학생들은 훗날 독재를 무너뜨린 4·19 혁명의 위대한 도화선이 되었다. ​독립운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진 이 당당한 흐름은 우리에게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을 말해준다. “학생은 미래의 주인공이 아니라, 오늘을 바꾸는 당대의 주역”이라는 것이다.

 

잠시 ​오늘날의 교실을 둘러보자. 일제의 칼날과 총칼은 사라졌지만, 우리 학생들은 또 다른 형태의 억압과 어둠 속에 갇혀 있다. 끝없는 성적 경쟁, 짓눌린 꿈, 타인의 시선과 디지털 매체의 홍수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잃은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맞아, 오늘을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여러분이 짊어진 삶의 무게 앞에서, 여러분의 가슴을 뛰게 하는 ‘별’은 무엇인가?”

 

​100년 전의 선배들이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면, 오늘날의 학생들이 싸워 이겨내야 할 대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타성에 젖은 무관심’과 ‘스스로의 가능성을 폄하하는 무력감’이라 생각한다. ​독립운동은 단순히 나라를 되찾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존엄성을 되찾고,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증명하는 행위였다. 오늘을 사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독립 정신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남이 정해준 정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정신적 독립’이어야 하고, 불의와 불평등에 눈감지 않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연대의 의식’이어야 한다. ​시인 윤동주의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스스로의 양심을 엄숙하게 비추어 보던 ‘성찰의 태도’가 절실하다. ​이것이야말로 21세기 오늘의 학생들이 가슴속에 품어야 할 새로운 시대의 독립운동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교육은 학생들에게 정답을 외우는 법은 가르치면서도, 세상을 향해 정당한 질문을 던지는 법은 잊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심히 우려한다. ​11월 3일이 우리에게 준엄하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교육은 단순히 시험 점수를 올려 좋은 대학에 보내는 기술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 되게 하고, 불의에 분노할 줄 알며, 타인과 손잡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만드는 ‘영혼의 각성’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의 우리 학생들이 윤동주처럼 가슴속에 자신만의 별을 간직할 수 있도록, 광주와 대구의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선배들처럼 정의로운 야성을 품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시대 기성세대와 교육이 해야 할 참된 역할이라 할 것이다.

 

​다시 윤동주의 시를 읊조린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흩날린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 100여 년 전, 일제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내며 시대를 깨웠던 청년 학생들의 유산은 오늘날 우리 학생들의 핏속에 여전히 흐르고 있음을 믿는다. ​11월 3일, 오늘 하루만큼은 책가방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우리 안의 ‘양심’과 ‘결의’를 되돌아보자.

 

​오늘의 학생들이 스스로 자기 삶의 독립군이 될 때, 부조리한 세상에 당당히 맞서는 정의로운 민주시민으로 일어설 때, 윤동주가 그토록 희망했던 ‘부끄럼 없는 하늘’은 비로소 우리 교실과 이 땅 위에 환하게 열릴 것이다. 전국의 학생 제위여, 그대들의 가슴 속에 있는 빛나는 별을 켜라. 그대들이 바로 이 시대의 찬란한 빛이라 믿는다.

 

전재학 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 산곡남중 교장 hak03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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