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적 문학도, 문학적 과학도 길러야

2008.07.17 17:55:00

■ 기획대담-교육과 과학기술, 통섭을 말한다



민경찬-융합의 시대, 특정 지식기반으론 생존 못해
이원희-통합교과적 초중등교육, 대학입시 연계돼야


교육과 과학기술이 동거를 시작한 지 6개월. 그러나 교육현안에 매몰된 교과부에서 장기적인 과학기술정책은 찾을 수 없고, 대통령 주변에는 과학기술인이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교육에서 과학기술의 강조, 나아가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융합을 국가 생존전략으로 중시하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여전히 위태롭게 동거 중인 우리의 교육과 과학기술. 이원희 교총회장과 민경찬 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 상임대표가 만나 양자의 통섭을 말했다.

이원희=교육부와 과기부를 합쳐 교과부로 개편될 때 과학기술계뿐만 아니라 교육계도 우려가 많았습니다. 한쪽이 위축될 가능성 때문이지요. 과실연은 7일 개각 때 ‘김도연 장관 경질로 이명박 정부에 과학기술인이 한 명도 없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는데요. 과실연 대표로서, 교과부 정책자문위원장으로서 교육과 과학의 지난 6개월의 동거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민경찬=아직 평가하기에는 이른 단계입니다. 특히, 미국 소고기 파동으로 국가 운영 자체가 계획대로 추진될 수 없었던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교육부와 과기부를 통합하면서 융합적인 관점에서 부서들을 재편했는데, 이제 각 부서들이 서로 역할을 확인하며 조정하고 적응해 나가는 단계라고 봅니다. 다만 교육 쪽이 워낙 현안에 매몰되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정부 또는 국민의 관심이 더욱 약화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특히 청와대도 교육과학문화수석체제로 가면서 교육자가 임명돼 청와대와 국무회의, 국회 등에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가 없는 상황입니다.

이=통섭의 시대, 국가생존전략의 큰 축인 교육과 과학기술이 만나 융합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교과부 내 인적, 물적 구성을 어떻게 조화롭게 살피는냐에 따라 윈윈할 수도 있을 텐데요. 대표님은 앞으로 교과부에서 교육과 과학이 불협화음 없이 잘 융화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교총과 과실연이 함께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은 또 어떤 게 있을까요.

민=우선 청와대와 교과부가 강력한 리더십으로 교육과 과학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정책의지를 갖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국가 과학기술행정을 책임질 CTO(최고과학기술책임자)를 임명해 대통령 주변에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너무 교육 현안에 매몰돼 장기적인, 전략적인 마인드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교과부 구성원들은 과학기술시대, 융합, 통섭의 시대 흐름을 잘 인식해야 합니다. 날로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선진국들은 이미 교육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인문학과의 융합을 함께 강조하고 있고요. 국가 경쟁력은 기초원천기술에서 나오고, 이를 위해 수학과 과학교육을 강화하고, 그것이 상상력과 창의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문사철을 결합시키는데 정부가 나서고 있는 겁니다. 미국은 대통령이 나서 수학, 과학 성취를 세계 최고로 만들겠다며 3년간 32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고, 빌게이츠는 이공계 교육 강화를 위해 30억불을 내놨습니다. 교총과 과실연은 이런 시대적 흐름을 바르게 인식하고, 교육과 과학이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교육과정 개발을 비롯해 여러 방향에서 공동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선 여러 형태의 소통 기회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인문학적 사고와 수학과학적 사고의 융합은 입시에서의 통합논술, 학교 현장에서의 통합교과적 교육과정과 연계된다고 봅니다. 민 대표님이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지 않는 통합적 교육을 강조하신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통합교육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요.

민=갈수록 지식 주기가 짧아지고, 개인의 진로, 사회적 환경이 다양하게 변화되기 때문에 변화 적응 능력과 기본 소양이 더욱 중요합니다. 대학 졸업후 전공을 살리는 경우는 20퍼센트 뿐입니다. 70% 정도의 ‘문과’ 학생들이 살아가면서 ‘이과’ 영역에 넘어올 수 있을 정도의 수학, 과학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융합적인 환경에서 경쟁력이 없게 된다는 얘깁니다. 예를 들어 작가나, 법조인, 기업경영인이 과학기술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 앞서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모든 글로벌 이슈는 과학기술과 깊이 연계되어 있기도 하고요. 반면에 ‘이과’ 학생들도 문학, 역사, 철학이라는 인문학적 기본 능력이 충분히 준비돼 있지 않으면 과학기술에 필수적인 상상력,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이공계도 논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대학들은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교육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것이 대입과정에도 반영돼야 합니다. 이는 고교교육에도 연계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입시사정관제도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이=일시에 보는 시험, 같은 성적 잣대만 들이대는 선발이 입시지옥의 원인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사정관에 대한 기대는 큽니다. 다만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정부나 대학차원의 행재정적 지원이 필수라고 봅니다. 학교마다 수십명의 사정관이 필요하고, 사정관 1명당 1억원의 예산은 들여야 할테니까요. 물론 입학사정의 객관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준비도 철저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대학들은 일선 고교와 충분한 소통을 통해 입시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거기서 학문간 통섭을 반영한 입시안 마련도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일선 학교의 수학, 과학 얘기를 좀 해 보겠습니다. 요즘 쉬운 입시, 쉬운 내신, 쉬운 수학 등 심화과정 없는 ‘쉬운 공부’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이공계 기피와 학력저하를 가져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초중고의 수학·과학 교육 강화 방안에 대해 어떤 의견이십니까.

민=‘선택 교과’의 문제를 바르게 인식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쉽게, 좋은 점수를 받으려는 생각은 당연합니다. 따라서 필요하면 공부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 교육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융복합이 기본이 되는 시대에 수학, 과학에 대한 기본 능력이 없으면 개인의 경쟁력도 심각하게 저하됩니다. 단지 수학, 과학 지식의 습득을 넘어 수학, 과학 교육을 통해 논리적인, 추상적인, 과학적인 사고를 훈련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수학, 과학 교육은 호기심, 흥미가 중요하므로 초등교에도 과목전담 교사가 필요합니다. 또 문과, 이과 구분 없는 수, 과학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수학, 과학 등 초등교육에서의 교과전담제 확대는 제 공약사항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전공을 하신 교사가 교과를 더 흥미롭게, 그리고 동기부여를 하며 수업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즐겁고 재미있는 과목이 수학’이라는 이야기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여전히 수학은 어렵고 힘든 과목이라는 생각이 학생들에겐 지배적입니다.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한 분으로 초중고 교사들에게 수학 교수법에 대해 한 수 지도해주시겠습니까.

민=반복적으로 문제를 많이 풀게 하기에 앞서, 한 문제라도 스스로 풀도록 하여 성취감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학생이 재미, 흥미, 호기심을 갖도록 하고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훈련이 가장 중요합니다. 문제에서 주어진 용어의 뜻을 먼저 깊이 생각하도록 하고, 이를 기반으로 논리적으로,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문제 풀이 자체는 진로에 따라 몇 년 지나면 모두 잊게 되겠지만, 그렇게 길러진 논리적 사고력, 문제해결 능력은 평생 개인의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맞습니다. 사교육 문제의 근원이 바로 그런 기계적 학습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과정이 인정받는 그런 교육이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대학경쟁력 얘기가 나왔으니 재정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합니다. 등록금 고통 문제까지 겹쳐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얘기가 탄력을 받고 있는데요. 문제는 GDP 4.2퍼센트에 불과한 교육재정이 한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민=GDP 6% 교육재정 실현이 그런 점에서 중요합니다. 아울러 사회가, 특히 기업이 교육에 투자할 수 있도록 의식을 제고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저 인재를 골라 쓴다는 생각에서 함께 기른다는 책무성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이=재정에 있어 국가와 대학의 책임도 있겠지만 기부문화를 확산시키는데 공조해야 합니다. 세제 혜택 등을 주는 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이 부분에서 교총과 과실연이 힘을 모으면 좋겠습니다.

민=그렇습니다. 교과부만 쳐다보며 각 단체가 산발적으로 던졌던 아젠다를 수평적으로 공유하고 추진한다면 여러 과제를 관철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교육계와 과학기술계가 공동학술대회를 열며 소통을 기회를 넓혀야 합니다. 그 바탕에서 교육과 과학기술의 발전적 융합, 통섭을 위한 교육과정 논의도 객관적으로 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민경찬 상임대표=연대 수학과 학․석사. 캐나다 Carleton 대학 박사. 연대 입학관리처장, 학부대학장을 거쳐 현재 대학원장으로 있다. 대한수학회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기초과학연구진흥협의회 위원장, 과기부 수학․과학교육 경쟁력협의회 위원장을 거쳐 교육부정책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과학적 사고와 방식이 국가 정책수립, 국민생활 전반의 작동 원리가 되고,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는 바른 과학기술 사회를 목표로 2005년 12월 창립한 시민단체. 이공계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분야 교수, 연구원, 경영자, 일반 시민 등 200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기술유출, 북핵, 국가 과학기술과제 등 현안에 대한 월례 포럼을 통해 심도 있는 대안제시에 주력하고 있다. 과기부 폐지 반대, 대운하 검증 등 핫이슈에 대한 성명을 통해 각계의 행동과 인식전환을 촉구하는 현실참여 활동과 ‘과실연이 뽑은 과학기술 최우수 국회의원상’ 등을 통한 압력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해부터 청소년을 대상으로 ‘노벨과학에세이대회’를 열어 이공계에 대한 관심도 제고하고 있다.
상임대표 외에 6명의 공동대표가 있으며 회비와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조성철 chosc@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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