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교감이 안 돼도 수업전문가로 우대받는 교사, 그래서 ‘승진’보다는 ‘수업’을 고민하는 교직사회를 꿈꾸며 2008년부터 시범도입 된 수석교사제. 법제화 미비로 아직은 역할수행에 한계가 많지만 295명의 수석교사들은 오늘도 수업컨설팅, 교사멘토링, 교과연구활동 등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바로 ‘좋은수업, 좋은선생님’을 지원하려는 이들의 활동을 ‘수석교사가 뛴다’ 시리즈에서 소개한다.
최혜경(6학년 수학전담) 대구 동산초 수석교사는 올 4월부터 매주 20시간인 자신의 수업을 모두 공개한다.
서울 강남구에 비견되는 대구 수성구에 소재한 학교. 그래서 선행학습으로 무장한(?) 아이들을 사로잡는 수업이 늘 고민인 교사들. 수업공개는 바로 그 고민의 해법을 함께 찾아가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왕이면 잘 준비해서 한 달에 한번만 공개해도 될 것을 왜 매일, 그것도 매시간 공개하는 걸까.
최 수석은 “진짜 중요한 것은 공개용 수업이 아니라 평상시 수업이죠. 겉보기에 화려한 자료가 아니라 학생들의 사고를 돕는 자료, 정해진 패턴의 수업이 아니라 목표에 맞게 때로는 교사가, 때로는 학생이 이끌어가는 수업,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생과 학생이 함께 호흡하는 수업을 보여주려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그는 6학년 수학 교과의 매 차시 수업을 전부 재구성해 전개한다.
‘부피의 단위’ 시간에 파란 노끈으로 엮은 정육면체를 보이며 “이게 1㎥ 란다. 우리 교실에 이게 몇 개 있으면 꽉 찰까?”하는 식이다. 이러면 선행학습을 한 아이들도 처음 알았다는 듯이 “아~!”한다. 그리고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머리와 손, 입이 바삐 움직이며 계산하고 친구들과 자기 방법을 자랑한다. ‘풀어보고 싶은’ 과제 앞에서 손을 놓는 아이들은 없다.
수업을 본 교사들도 “아~. 이렇게 가르치면 되는 구나” 무릎을 친다. 전혀 몰랐던 새로운 방법을 알았다기보다는 실천적 수학, 체험적 수학을 통해 원리를 스스로 깨치게 하는 것의 중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와 비율에 대한 이해’ 수업 때는 칠판에 선분을 긋고 나무가 서 있으면 좋을 위치를 스스로 찾아보게 한다. 또 ‘그냥 좋아 보이는 명함 만들기’도 해 본다. 자연 속에 내재한 황금비율을 찾는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본 차시 수업 목표를 뛰어넘어 우리 안의 미적인 본성과 수학의 심미적 가치마저 이해하게 된다.
1학년 전미경 교사는 “탐구하고 원리를 발견해가는 수업, 사고의 힘이 느껴지는 수업은 지도서, 학습자료를 한번 더 생각하고 준비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또 거의 매일 수업을 본다는 6학년 김정윤 교사는 “수업에 집중하게 하는 학생과의 완벽한 호흡, 상호 반응, 적절한 발문에서 많은 점을 배운다”고 평가한다.
최 수석은 요청하는 학교를 찾아 맞춤형 수업도 공개한다. 2007년부터 대구교수학습지원단 교사로 호응을 얻었던 방문수업을 이어 가고 있는 셈이다. 예전에는 미리 준비한 수업을 공개했지만 올해 수석교사가 되면서는 학교가 부탁한 주제로 수업을 한다.
1학기엔 현풍초 등 5개 학교에서 ‘각뿔의 전개도 그려서 만들기’ 등을 주제로 ‘출장수업’을 했다. 욱수초 구영애 교사는 “레크레이션을 통한 수학적 리크리에이션, 학습장 쓰기로 수학적 사고력 키우기, 즐기는 수학수업 등 항상 더 쉽고 체험적인 교수방법을 캐내는 모습에 자극을 받는다”고 말한다.
2학기에는 벌써 도원초에서 색다른 요청이 왔다. 교사들을 학생 삼아 수업을 해 달라는 부탁이다. 수업은 교사와 학생의 交感이므로 직접 학생이 돼 그 ‘感’을 잡겠다는 뜻이다.
최 수석의 이런 수업공개는 수업을 ‘해결’하기보다 역설적이게도 수업을 ‘고민’하게 하는데 의미가 있다. 그것이 교사들과 최 수석의 수업을 함께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최 수석은 “참관 교사와 수업을 평가, 반성해 다시 수업을 보완하고, 그렇게 개선된 수업을 교사들에게 공개한다”고 말한다. 또 박덕향 연구부장은 “교사의 진정한 고민거리는 바로 ‘수업’임을 깨닫게 되면서 교내 장학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고 말한다.
매달 진행되는 교내 수업공개 교사들, 그리고 수업연구교사의 대외 수업공개 지원도 그의 몫이다. 수업설계부터 수업 후 협의까지 의견을 나누며 함께 ‘좋은수업’을 만든다.
다음 달, 교내 전체교사를 대상으로 ‘소수의 나눗셈’ 공개수업을 준비 중인 최 수석. 요즘 그는 실질적인 수준별 수업방안을 모색 중이다. “보충․심화학습 자료를 제공하는 방법 외에 수준차가 나는 아이들을 아우를 수업방식을 찾아 공유하고 싶다”는 그의 책상 위엔 서점에서 쓸어오다시피 한 관련 서적이 수북이 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