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실 앞에서 한 학생이 “오늘 급식 어때?”하고 묻자 점심을 먹고 나온 학생이 대답한다. “급식 쩔어.” 여기에서 ‘쩐다’는 무슨 뜻일까? ‘쩐다’는 학생들 사이에서 두 가지의 상반된 의미로 쓰이는 대표적인 말이다. 짜증이 날 만큼 불만족스러운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고 한 가지 일에 능통하거나 아주 좋은 것을 경외에 찬 시선으로 인정할 때도 쓰인다.
우리말 예절 교육서 ‘말이 예쁜 아이 말이 거친 아이’(추수밭)을 펴낸 공규택(40·
사진) 경기과학고 교사는 학생들과의 언어 소통을 가로막는 좋지 않은 예로 이 같은 사례를 들었다. “급식이 좋다는 얘기야, 싫다는 얘기야?”하고 되묻지 않으면 의미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학생들의 언어 문제에서 욕, 비속어 외에도 고쳐야 할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헐’ 한마디로 모든 감정을 뭉뚱그려 표현하거나, ‘학주’(학생 주임 선생님) ‘멀미실’(멀티미디어실) 등의 과도한 줄임말을 사용하고 생각 없이 유행어를 따라 하는 등의 문제들이 학생들의 언어 능력 발달과 의사소통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교육현장에서 직접 아이들의 언어생활을 보고, 듣고, 지도해온 공 교사는 학부모, 교사의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싶어 책을 발간하게 됐다고 했다.
“어린 시절의 언어습관이 아이의 성품은 물론 공부와 인간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합니다. 학생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더 늦기 전에 사소한 것부터 학부모와 교사가 바로 잡아주는 데서 학생 언어 개선이 시작됩니다.”
자신들이 사용하는 말이 은어·비속어인지, 어떤 것이 상황에 맞는 존댓말·인사말인지 가르쳐주지 않으면 학생들은 잘 몰랐다. 왜 잘못됐는지 설명해주고 올바른 표현을 알려주면 이런 과정을 싫어할 것이라는 어른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했다.
학교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우리말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 교사는 과학고 학생들인 만큼 과학기자재 이름을 우리말로 바꿔 보거나, 학생 동아리 이름을 순우리말로 지어 보게 했다. 또 흔히 사용하는 표현을 우리말로 바꾸는 경연대회를 열기도 했다. 학생들은 ‘스포이트’를 ‘쭉쭉이’로 ‘S라인’을 ‘호리병 몸매’로 바꿔보며 흥미로워 했다. ‘V라인’을 대신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우리말 ‘초강초강하다’(얼굴이 갸름하다)를 찾아온 학생도 있었다. 공 교사의 노력으로 천체관측동아리는 ‘폴라리스’에서 ‘별바라기’로 불리게 됐다.
“교사가 먼저 학생들의 언어를 습득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말이 통해야 학생들의 언어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낯선 말을 하면 무슨 뜻인지 묻고, 나쁜 말은 다른 말로 바꿔주는 훈련을 하세요. 또 ‘-다’로 끝나는 단순 진술형 문장보다 학생들이 말로 다양한 감정표현을 할 수 있도록 발문법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