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생일은 감사하는 날인 걸 잊었니?

2005.06.08 08:57:00

점심시간에 급식실로 들어돈 5학년 지현이의 눈이 퉁퉁 부었다. 이유를 알아보니, 어제가 생일이었는데 부모님이 깜박 잊고 못 챙겨줘서 부모님께 투정을 부리는 바람에 꾸지람을 듣고 울어버렸다고 한다.

우리 연곡분교는 초등학생 16명, 유치원생 9명으로 모두 25명의 학생이 다니는 작은 학교이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의 자질구레한 일들이 모두 알려지고 가족처럼 지낸다. 두 학년을 묶어서 담임을 하지만 구분 없이 모든 선생님이 전교생을 지도하는 일이 많다.

바이올린도 그렇고 사물놀이도 4학년 이상 모두 참여한다. 체험학습에는 유치원생들도 함께 가곤 했다. 도시 학교에서처럼 집단따돌림이라든가 학교폭력이라는 단어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오히려 그런 단어를 가르치려면 설명하는데만 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요즈음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내리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 탈이다. 생일만 해도 그렇다. 우리 1학년들도 자기 생일인 날은 마치 큰 자랑거리인양 아침부터 친구들에게 광고를 한다. 축하를 꼭 받아야겠다는 듯이…. 그럴 때마다 나는 한 마디 하는 걸 잊지 않는다.

“얘야, 생일은 물론 축하를 받는 날이야. 그런데 그것보다 더 먼저인 것은 낳아주신 부모님이 너를 낳아 기르며 고생하신 은혜에 먼저 감사를 드리는 것이란다. 어느 나라의 유명한 정치가는 자신의 생일에는 하루 종일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꼬박 굶으면서 어머님이 자신을 낳으실 때 겪으신 고통을 생각하며 간절하게 어머님을 사모했단다. 밥을 굶으면서까지 부모님을 생각하며 깊이 감사는 드리지 못할망정 좋은 선물이나 외식을 안 시켜 줬다고 떼를 쓰면 되겠니?"

이제 우리 1학년 아이들은 자신의 생일이 돌아오면 부모님께 감사 편지를 쓰고, 교실에서 큰절을 연습한 뒤 보내곤 한다. 점심이 끝난 뒤 지현이를 조용히 불러 우리 1학년 아이들에게 해 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리한 아이라서 금방 깨닫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생일에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일을 먼 훗날 아파하게 될 때쯤이면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해 주신,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부모님이 이 세상에 안 계실 거라는 말에 눈이 벌개지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 나라 부모님들의 자식 사랑은 그 도가 지나쳐서 탈인지도 모른다. 끝없는 내리사랑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모질게 홀로 서게 해야 할 경우에도 안쓰러워서 받침대를 거두지 못해 부모 곁을 맴돌게 하여 정신적인 젖떼기를 놓치는 경우를 많이 보곤 한다.

생일이면 비싼 식당에서 초대를 하는 도시 아이들의 모습, 집에서 치르는 경우에는 친구들을 몽땅 불러 엄마를 고생시키는 모습은 뭔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축하를 해주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어머니 스스로는 그렇게 가르치지 못해도 가족 중에서 할아버지나, 아버지, 유치원 선생님이든 어른들 누군가는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 지현이는 자신의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부모님께 감사 편지를 쓰고 생일 아침에는 감사의 큰절을 올리리라 믿는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치사랑(윗사람에 대한 공경과 사랑)이 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요즈음은 매체건 광고건 간에 ‘웰빙’을 외쳐대곤 한다. 우리 글로 풀이하자면 ‘참살이’ 라고 한다. 진정한 참살이가 뭔가? 사람이 사람다움 아니겠는가? 물질문명에 치여서 정신적 가치가 뒤로 처진 삶을 바르게,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 진정한 웰빙이라고 생각한다.

영양식으로 잘 먹고 운동을 하여 몸을 잘 다스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인 정신적인 참살이라고 생각한다면, 생명의 시작인 생일의 의미부터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서 치사랑의 기본을 닦아주는 것이 소중하지 않을까?

더 넓게 생각하면 자신이 받은 고귀한 생명을 전수시키기 위해서 결혼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자식을 낳는 것도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일찍부터 알게 되리라 믿는다. 풀 한 포기도 생명이 다하기 전에 씨를 퍼뜨리려고 안간힘을 다 쓰고 행여 박토를 만나거나 계절이 맞지 않으면 본래보다 일찍 꽃을 피워서 씨를 맺고 일찍 죽어가는 걸 본다. 하물며 사람은 그 자신이 받은 생명의 소중함을 후대에 남기는 일에 풀 한 포기보다 못 해서야 되겠는가?

내일 당장 자치 활동 시간에는 전교생을 모아 놓고 ‘생일을 맞이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실습을 해야겠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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