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빠져 볼까요?

2005.06.13 22:58:00

나는 지금 내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하고 있다. 학교 일이 끝나고 퇴근도 하지 않은 채, 나 자신과 내기를 하고 있다. 짙은 밤꽃 향냄새가 산등성이를 타고 동네를 지나 교정에 내려 앉아 짙푸른 나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참살이(웰빙) 하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으리라.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로 귀향하는 토요일에는 작은 한숨마저 나오곤 한다. 매연과 소음, 더운 공기 가득한 집을 찾아, 가족을 찾아 일터인 이곳을 벗어나는 일을 아쉽게 느낄 만큼, 이제 나는 지리산 피아골 계곡을 사랑한다.

지극히 일상적인 아내의 역할, 어머니의 역할이 기다리는 주말을 비껴서 학교로 돌아오면 숨통이 트이곤 한다. 흙냄새가 나는 땅, 나비들이 날아다니고 풀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산골 학교는 어릴 적 고향의 모습을 닮았다.

아이들과 함께 배우는 바이올린, 점심시간에 교정을 쩌렁쩌렁 울리는 사물놀이 한마당, 계곡을 타고 흐르는 말간 시냇물 소리는 영혼마저 맑게 한다. 아이들도 산과 물을 닮아 착하고 예쁜 이 곳. 내일이면 갯벌체험을 간다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묻혀 하루가 간다.

낮에는 아이들과 즐겁게 공부하고 밤이면 부엉이처럼 눈을 키우고서 책들과 이야기하는 즐거움이 나를 붙잡곤 한다. 피터 드러커 교수의 <프로페셔널의 조건>을 읽으며 이 책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내 인생이 좀 더 나았을 거라는 한숨을 삼키고 무릎을 치며 읽어가고 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아직도 많은데, 살아온 그대로 앉아서 무사안일하게 살 수 없다는 절박함이 나를 다시금 독학하던 청년기로 돌려놓고 있는 것이다. 흰머리를 감출 수 없게 된 지금, 아직은 건강한 몸을 더 움직여야 하고 고갈된 지적 재산을 비축할 필요를 절감하는 탓이다.

지식근로자로 살아야 할 내 운명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머리숱이 빠져 나가는 정신적 압박감도 오히려 행복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아이들에게 처음 다가서던 그 날처럼 다시 생각의 끈을 조이고 자세를 가다듬어 아이들 앞에 서야 함을 배운다.

최소한의 음식, 조용한 대자연의 노랫소리를 명상 음악으로 들으며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선 책이 주는 예민한 기쁨과 희열이 나를 감싼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요약하며 내면의 갈증을 풀어가는 한여름 밤의 고독을 사랑한다.

공부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애초부터 없다고 생각한다. 여든의 나이에도 오페라를 열정적으로 작곡한 베르디나, 아흔을 넘기면서도 왕성하게 그림을 그렸다던 피카소까지는 못 되어도 그들의 발 아래에서 흉내라도 내보는 이 시간을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한 아쉬움에 더욱 몰입하게 하는 책, <프로페셔널의 조건>을 만났으니 이제 진정으로 그 조건 하나하나에 나를 비춰 보며 닦는 일만 남았다. 지식 근로자가 아니더라도, 어떤 분야에서 프로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금방 친해지리라 믿는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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