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모집 가기 위해 저축했어요"

2005.06.21 15:32:00

조회를 끝내고 교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한 남학생이 긴장된 표정을 하고 나를 따라오며 말을 했다.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상담 좀 해주세요.”
“그래, 점심 시간에 찾아오렴. 그런데 무슨 일인데.”
“네.”

그 학생은 내 말에 짧게 “네”라는 대답만 하고 고개를 숙이고 교실로 들어갔다. 사실 이 남학생은 2학년 때 전학을 온 학생으로 평소에 말이 없고 차분한 성격으로 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는 터였다. 그래서 상담을 청하는 그 학생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점심을 먹고 난 뒤 아무런 생각 없이 교정을 거닐었다. 그런데 나의 잠깐의 휴식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한 통의 문자메시지였다. 확인결과 아침에 상담을 요구했던 그 남학생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선생님, 어디에 계세요?”

순간적으로 아침의 일이 떠올려졌다. 그리고 보니 그 학생과의 약속을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부리나케 발걸음을 교무실로 옮겼다. 교무실에 도착하자 그 학생은 내 책상 옆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멋쩍게 서 있었다. 나는 미안한 생각에 간단한 수인사를 하고 난 뒤, 그 학생을 데리고 교정의 벤치 쪽으로 갔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몰라 그 학생은 한참을 망설인 끝에 말문을 열었다.

“선생님, 대학 입시문제로 며칠 뒤에 저의 아버지께서 선생님을 찾아뵈러 오실 거예요. 사실 아버지께서는 제가 수시1차에 원서를 내는 것을 반대하고 있어요.”
“아버지께서 반대를? 왜?”

내 말에 그 학생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도 태연한 척 하려고 애쓰는 표정이 역력히 나타났다.

“사실 몇 달 전부터 아버지께서는 아무 일도 하시지 않고 쉬고 계세요. 그래서 현재 집안 형편이 말이 아니에요. 만약 제가 수시로 대학을 간다고 하면 전형료 내지 경비 등을 감당할 능력이 안되거든요.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나중에 집안 형편이 나아지면 대학에 지원하라고 고집을 부리시고 계세요. 선생님께서도 아시다시피 현재 제 성적으로는 수시 2차나 정시는 조금 힘든 상황이거든요. 선생님이 아버지께 잘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제가 틈틈이 모아 둔 용돈 15만원으로 수시 1차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학생의 이야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한 학생이 수시 모집으로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전형료(30,000~50,000원)를 내야하며, 특히 지방에 있는 학생들이 전형을 하기 위해서 서울 소재 대학에 가기 위해 소요되는 경비 또한 만만치가 않다. 또한 한 학생이 어느 한 대학만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2개 이상의 대학을 지원한다고 가정했을 때 부모의 부담은 배가된다는 사실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수시 모집 1차를 위해 저축해 둔 15만원으로 본인이 갈 수 있는 대학 2군데를 선정해 달라고 부탁하는 그 학생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7월부터 시작되는 수시 모집 때문에 학생들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더군다나 1학기 기말고사와 중복되는 관계로 학생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연일 계속되는 무더운 날씨 학생들의 마음을 속시원하게 해줄 좋은 이야기는 없을까.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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