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고통, 벌써 잊었는가?

2005.07.20 23:17:00

8년 전의 IMF를 떠올려 본다. 많은 국민들이 국가 파산이라는 초유의 위기 상황에 얼마나 당혹해하며 불안에 떨었던가? 속빈 강정처럼 빚잔치를 벌인 대가치고는 너무도 혹독한 시련이었다. 하루아침에 멀쩡하던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든 지하철 역 구내는 노숙자들로 문정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다. 어린 자녀들을 주렁주렁 매단 채 지하도 한 켠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떨던 사람들과 사회단체에서 하루 한 번 제공하는 급식을 타기 위해 끝도 없이 줄을 늘어선 모습이 방영되던 텔레비전 화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지는 파업 소식에 이젠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다. 방송과 언론엔 매일같이 천편일률적으로 붉은 머리띠에 붉은 조끼를 입고 붉은 깃발 아래서 격렬한 구호를 외치며 대치하고 있는 농성장의 모습이 등장한다. 물론 명분없는 파업은 없겠지만, 업종별로 돌아가며 파업을 벌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여간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해마다 봄만 되면 되풀이되던 노사갈등이 올핸 더위로 지친 한여름에 벌어지고 있다. 국가 경제를 불구 상태로 몰아가는 파업을 언제까지 계속할 작정인가?

물론 오늘의 번영을 이루기까지는 몇 사람의 지도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모여 이루어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가경제 발전이란 미명하에 그 험난했던 독재정권 아래에서 인권은커녕 기본적인 생계마저 보장받지 못한 채 참혹한 노동에 시달렸던 노동자들과 낯선 이국 땅까지 진출하여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던 간호원과 광부 그리고 열사의 땅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외화벌이에 나섰던 근로자들의 처절했던 삶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파업으로 인하여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이 공장 철수를 검토하거나 투자계획을 취소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외신들도 한국의 노사갈등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아시아판)은 '죽도록 파업하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노동계의 파업이 한국 경제를 빈사상태로 몰아가고 있다'며 경고했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지는 '잇따른 파업으로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악화될 것으로 우려하는 투자자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임금상승률이 생산성 향상을 뛰어넘는 몇 안 되는 공업국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국인력개발원이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 3년간 156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제조업의 공동화가 가속되면서 하루에도 10개의 공장이 문을 닫고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로 이전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는 이제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잇달아 발생한 파업으로 인하여 국가경쟁력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으며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다. 소위 전문성을 무기로 높은 성과를 얻어낸 사람들은 만족스러울지 모르겠으나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 실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조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해졌다. 그런 만큼 노조의 높은 사회적 책무도 요구된다. 물론 암울했던 시대에 서슬퍼런 권력자와 부도덕한 기업주들로부터 노동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힘을 한데 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호전된 지금, 노조의 투쟁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자칫 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말처럼 혹여 정도를 넘어선 투쟁으로 생존의 근거마저 송두리째 잃게 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IMF를 겪으며 국가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은 바 있다. 당시 쓰러져가는 국가를 살려내기 위해 너나할 것 없이 달러가 될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꺼내들고 은행으로 달려갔던 절박함이 아직도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비록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대다수 국민들은 소위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이 벌이는 배부른 투쟁을 애끓는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최진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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