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상해 임시정부 청사

2005.08.21 14:51:00

금년 8월 15일은 광복 6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찍 이룩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 되어 불행하게도 우리 문화를 모방해 간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되어 35년이 넘는 긴긴 세월을 나라 없이 보내어야만 했던 암울했던 치욕의 역사! 이를 어찌 잊어버릴 수 있으랴.

수치스러운 과거사이지만 이를 정리하고 교훈으로 삼아 미래를 열어갈 똑바른 시각을 가지고 우리 민족과 나라의 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위해 다같이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작년 8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하였던 기억이 광복절을 맞아 새롭게 떠오른다. 상해시 마당로 306동 4호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舊地)'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좁은 골목길을 들어갔더니 목판을 벽돌 벽으로 개량한 근대형 이롱주택(里弄住宅)이 연립하여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동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였다.

임시정부 청사를 보는 순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초라한 청사의 모습에 가슴이 찡함을 느끼며 좁은 청사 현관으로 들어갔더니 당시의 임시정부 활동 사진이 비디오로 방영되고 있었다. 벽에는 김 구 선생의 친필이 걸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1층에는 그 당시에 사용하던 부엌과 화장실이 있었고, 좁은 목재 계단을 오르니 2층에는 집무실 겸 침실, 책장과 전화기가 놓여 있었으며, 김 구 선생과 그의 아들 김 인,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진이 걸려 있었고 독립신문도 전시되어 있었다. 3층에는 요인 숙소로 사용된 침대 세 개와 탁자 , 선풍기 , 시계, 옷걸이 등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벽면에는 1919년 4월에서부터 1932년 5월까지의 3차례에 걸친 임시정부 각료 명단이 게시되어 있었는데, 1919년 3월 21일 조직된 초대 임시정부 명단을 보니 대통령 손병희, 부통령 박영호, 내무 안창호, 군무 이동휘, 재무 윤형진, 산업 남형우, 강화대사 유동설이었다.

2대 대통령 박은식이 저술한 『한국독립 지혈사』, 파리 대표단 김교식 선생의 '한국 독립 승인 요구서' 및 각서, 대한민국임시정부사료편찬위원회의 사진,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사진, 제34차 독립군 통합회의 광경을 찍은 사진, 중국 정부가 우리나라의 6.10만세운동을 지지한 선언문도 함께 있었다.
당시에 사용되었던 집기와 독립 운동 사료들이 좁은 공간에 숨막히게 꽉 들어차 있어 너무 답답하게 보였다.

건물 외벽에 어수선하게 늘어진 낡은 전선줄을 보니 언제 화재가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급속한 상해 경제 개발의 열풍으로 어느 날 갑자기 이 건물이 철거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얼핏 뇌리를 스쳐갔다.

우리 헌법 전문을 보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이어받아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이어간다"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는데, 그간 역대의 우리 정부는 임시정부 청사를 위하여 어떤 투자를 하였는지 의심스러웠다.

먹고 살 만하여 '민주다, 인권이다, 평등이다, 역사 바로 세우기다' 목소리만 높이고 있는 위정자들! 임시정부 청사 하나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는 말인가?
역대의 대통령들이 자기 집은 잘 챙기면서도 대한민국의 전신인 임시정부 청사를 이렇게 방치하다니 국민을 위한다는 위정자들의 목소리가 정말 공허하게 느껴졌다.

중국 정부와 협상을 하여 중국 내에 새 청사를 짓든지 아니면 우리나라에 임시정부 청사를 새로 지어서, 당시의 소중하고 귀중한 역사 유물들을 잘 전시하고 보존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며 마땅히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요 국민 모두의 당연한 일이다.

임시정부 청사를 보기 위하여 찾아드는 방문객들에게 교육장도 만들고 세미나실도 만들어 조국에 대한 애국심과 자긍심을 키워 나갔으면 한다. 그리고 각종 편의시설도 만들어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였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상해시 당국이 우리의 역사적 유물들을 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잘 보존해 준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늦었지만 정부 차원에서 새로운 임시정부 청사 보존 대책을 하루속히 강구하였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요 국민의 뜻이리라.

적은 액수이지만 '임시정부 청사 보존'을 위한 성금을 내고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나니 한결 내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최근 중국의 중화주의 사상과 고구려사 왜곡, 일본의 심상치 않은 우경화와 독도를 자기 땅이라 우기는 망언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말로만 떠들고 있으면 그게 해결될 일인가?

역사는 힘이다. 힘이 있어야 바른 역사를 만들 수 있으며 지킬 수 있다. 새 역사, 새 문화 창조는 그러기에 국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경제력, 정치력, 외교력, 국방력, 교육력, 문화력 등 모든 분야에서 정부가 앞장서고 국민이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선진 열강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힘과 논리를 길러내야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의 운명이 꺼져 가는 촛불인데 나라 안에서는 진보다 보수다 제각기 자신의 목소리만 높이고 있으니 한심스럽다. 아비는 바야흐로 병이 깊어 목숨이 위독한데 자식들이 "양방이다' 아니, '한방이다' 하면서 처방을 놓고 왈가왈부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 아닌가?
지나간 역대의 무능한 지도자를 탓하면 무엇하랴? 지금부터 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바르게 실천하면 될 일이 아닌가.

광복 60주년을 맞아 임시정부 청사의 보존 대책이 화급함을 느낀다. 임시정부 청사를 가꾸고 보존하는 일은 바야흐로 역사적 소명으로 우리의 뿌리를 가꾸는 일이며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다.
정병렬 포여중,수필가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