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4일, 첫 방송을 타며 내 마음 속으로 걸어들어온 이순신 장군의 모습. 오늘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불멸의 이순신'은 끝났다. 그러나 그 분은 이제 시작이라는 불씨를 내 마음 속에 던졌다.
내 나라를 지킨다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이외에는 어떠한 사심도 없이, 운명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그 비장함이 전편에 흐르고, 영원한 짝사랑으로 주군의 매서운 의심을 받으며 돌아오지 못할 길로 몰입하는 한 인간의 고뇌와 절망이 민족을 지키는 희망으로 승화되던 마지막 장면의 영상이 방송의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잔영으로 남았다.
자신의 몸보다 더 아끼는 부하의 죽음을 비통한 눈물로 보내는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와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앞에 숙연해졌다. 아직도 그 분의 죽음은 베일에 싸여 있다고 하니 아직도 그 분은 우리 앞에 그 진실을 내놓고 싶지 않은 지도 모른다.
한 편의 잘된 영화를 보고 난 감동이 아닌, 아직도 내 곁에서 살다 가신 부모님의 모습처럼, 늘 알고 지내던 분처럼 가까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만약 이 순신 장군의 마지막 모습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을 인정받아 주군으로부터 깍듯한 대접과 사랑을 받았다면 이렇게 아쉽고 애달픈 감정으로 추억하지 않을 것 같다.
오직 한 뜻으로 임금에 대한 끝없는 충성과 백성을 사랑하며, 자식 노릇도 어버이의 행복함도 누리지 못한 한 인간의 아프디 아픈 역사를 과거의 역사로 묻어버리기에는, 존경하는 인물 정도로 역사에 남기기에는 너무나 아파서 작가는 문학의 힘으로 그를 살려 냈으리라.
그것도 모자라니 온 국민에게 알리고 싶은 희망을 담아 영상으로 담아냈으리라.
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 이 나라의 현실을 장군이 다시 살아와서 보신다면 뭐라고 하실까?
평화통일의 길은 아직도 멀어 보이는 현실 속에서 밀고 당기는 나라의 모습. 한 쪽은 기아와 가난 속에서 핵무기를 쥔 무서운 손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날만 새면 삿대질하며 서로를 믿지 못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힘들어하는 서민들의 짐을 들어줄 엄두도 못내는 이 나라의 아픈 모습을 장군이 보면 뭐라고 하실까?
이산의 아픔을 한 순간의 방북 장면으로 채우기에는 너무나 지친 천만의 아픔. 만남의 기쁨보다 기약 없는 이별로 통곡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언제까지 이어져야 하는가? 나는 마지막 방송을 보며 우리 민족이 다시 거듭나는 길은 ‘이순신 정신’으로 무장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위로는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으로부터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위치에서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일, 그 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 하는 정신 자세,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그 길을 가는 진정성, 나 한 사람으로 인해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일이 그 정신이라고.
적을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어렵다고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서 나에게 전해져 온 장군의 한 마디는 커다란 울림으로 남았다. 최선을 다한 뒤 누구의 눈치를 보기보다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의 힘을 믿을 수 있는 인내심. 배반의 역사를 안고서 피멍든 가슴으로 마지막 운명을 향해 담대히 걸어 나가며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의 용기 앞에 흐르는 눈물로 장군의 모습을 가슴에 담았다.
장군은 그 때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가슴에 살고 계셨던 것이다. 민족의 굴곡진 역사의 순간에, 위기의 순간에 다시 부활하여 나아갈 바를 가리키는 나침반이 되고 싶으셨던 것이다. 존경하는 인물이 없는 개인은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더 나아가 국가적으로 존경할 인물이 없는 나라는 더 비참하다고 생각한다.
어두운 밤을 지나며 길잡이가 되어줄 별빛이나 달빛조차 없는 개인의 삶이나 국가의 운명은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존경받아야 할 인물은 먼저 높은 도덕성을 지녀야 함을 생각할 때 이 순신 장군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는 그 본분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진정성은 최고의 도덕성을 상징하고도 남는다.
또한 직위를 이용하여 백성을 탄압한 일이 없으며 오히려 백성의 사랑과 추앙으로 인해 주군의 의심까지 받을 정도였으니 백성의 눈물을 함께 아파하고 나누는 위정자의 모습을 지녔음을 오늘의 공직자와 가진 사람들은 본받아야 할 일이다.
더 나아가 진인사대천명의 정신으로 최선을 다 하되 알아주지 않음을 원망하지 않고 하늘에 맡기며 진실의 위대한 힘을 믿는 우직한 성품 또한 간절히 본받고 싶은 모습이다. 그것뿐이 아니다.눈물을 지닌 인간적인 모습도 닮고 싶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속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성장을 보여 온 나라이다. 고속으로 달려오느라 놓친 일, 마음 아픈 역사를 치유하느라 갈등을 겪고 있다. 아무리 바빠도 꼭 챙겼어야 할 문제들을 이제라도 한 번쯤 중간 점검을 하며 챙기고 다독인 뒤, 다시 앞으로 나아갈 짐을 꾸려야 할 단계이다.
이 시기에 꼭 필요한 시대정신이 ‘이순신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본질에 충실한 정신, 문제점을 과감하게 고치는 정신, 옳다고 검증된 일은 앞 뒤 재지 말고 밀고 가는 힘, 결과를 하늘에 맡기는 진정성이 필요하다고.
이제 나는 여름방학을 마친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이순신 정신’을 가르치며 2학기 100일을 설계한다. 그리고 장군을 가진 우리 민족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가르치려 한다. 어떻게 사는 일이 ‘이순신 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지 아이들과 토론할 것이다. 장군의 모습은 역사 속의 인물로만 남겨서는 발전이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라도 본받고 실천하게 하는 일이 내 본분이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마지막 방송을 보며 장군의 목소리를 가슴에 새겼다. 내가 가르친 교실의 아이들이 ‘이순신 정신’으로 성공하여 이 사회와 국가의 반석이 될 수 있도록 부단히 깎고 다듬는 석공의 임무를 다 해야 함을! 장군이여! 나침반이 되어 부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