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못 하는 아이 심정 아세요?

2005.09.03 09:03:00

며칠 전 도교육청에서 추진하는 복식수업 연찬회의 강사로 차출되어 우리 학교에서 추진해 온 실적들을 복식학급이 낯선 선생님들께 진솔하게 전해주면 좋겠다는 도장학사님 덕분에 강의 원고를 내놓고 참 많이 고민했다. 차라리 원고를 몽땅 써내고 말지, 발표공포증이 많은 내 심장은 며칠 전부터 방망이질을 해댔다. 이래서 수줍은 아이들 심정을 또 절감했다.

발표를 잘 못하는 아이들의 붉어진 얼굴, 주춤거리는 태도, 자신감의 결여를 내 스스로 실감나게 체험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더 너그러워져야 함을 깨닫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강의를 듣는 내 태도까지 반성하게 되었다. 10분짜리 연설을 위해서 몇 시간을 준비한다는 말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말하는 사람보다 3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도 이해가 되었다.

주제가 '창의적인 복식학급 운영사례'였기 때문에 바로 그 '창의' 라는 단어가 문제였다. 나는 그 '창의'를 강의에 넣기 위해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이 순신 정신'에서 찾아냈다.

미래의 화두가 '창의'임을 생각하면 이 순신 장군만큼 창의적인 인물이 어디 있겠는가? 주어진 악조건을 극복하며 주어진 조건에서 최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준비와 아이디어의 승부, 부하들이 진정으로 존경하고 따르며 기꺼이 전장에 나아가기를 마다하지 않을만큼 위대한 '감성 리더십'

군인으로서 할 일을 다 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진인사대천명'의 숭고한 자세, 마음과 정성을 다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샘과 질투의 올가미에서 버림받곤하는 억울함의 극치를 오가면서도 주군에 대한 충성과 백성에 대한 애달픈 사랑을 접지 못하는 진정성. 마지막 승리를 확신하면서도 물러설 자리를 스스로 선택하며, 다 비움으로써 모든 것을 영원히 얻을 수 있는 '무소유'의 미덕까지 겸비한 그 겸손. 주군에 대한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을 하면서도 결코 원망하지 않으며 오직 한 길로 자신을 던질 수 있는 불굴의 의지!

그 보다 더 좋은 자료를 찾을 수 없어서 강의의 시작을 '이순신 정신'으로 풀어나갔다. 장군은 바로 그가 만들어낸 수군이라는'신상품'을 모두 '명품'으로 만들어낸 위대한 손과 마음을 가진 분이었다고.

요즈음 유행하는 말을 강의실에 들여놓으니 웃어대는 선생님들. 수업 시간에 3번 이상 아이들 배꼽을 빼놓지 못하면 재미없는 수업을 하는 '퇴출대상' 선생님이라는 말이 생각나서 시도했던 것인데 일단 성공한 셈이었다. 10대는 '신상품'이고 20대는 '명품'이며, 30대는 '기획 상품'이라는 요즘 유행하는 말이 아이들을 기르는 우리 선생님들에게 딱 어울리지 않은가? 말을 쓰는 분위기에 따라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으로 들리는것은 직업의식 탓이 아닌가 한다.

우리 선생님들은 모두 다 위대한 분이라고. 자성예언으로 기르고 칭찬으로 키우며 사랑으로 다듬어서 반품이나 불량품이 하나도 나오게해선 안 되는 위대한 손이라고. 특히 복식 학급은 몇 명 안 되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모두 명품이 되게 다듬고 매만져서 위대한 장인 정신을 지닌 선생님의 혼을 담은 명품으로 기를 수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직업'인가를!

시원찮은 초보강사의 강의를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들어주고 즐겁게 받아준 많은 선생님들 덕분에 여름방학 숙제를 다 끝낸 홀가분함을 만끽했었다. 들어주는 데는 얼마나 많은 용기와 인내심이 필요한가. 입이 하나뿐이고 귀가 둘인 것은 잘 들으라는 뜻인데도 그 반대로 살아온 건 아닌지.

앉아서는 잘도 쫑알대는 우리 반 아이가 엉덩이만 들면 홍당무가 되어 도무지 말할 생각을 안 하던 모습을 상기하며 박수와 칭찬으로 그 아이가 자신감을 얻고 다음 학년이 되도록 해줘야겠다. 강의 원고에 빼곡히 적힌 메모들이 이제서야 미소를 짓는다. 발표 못하는 아이의 심정을 확실하게 경험했으니 대물림하지 말자고. 적어서라도 자신있게, 연습하는 시간을 많이 주고 격려하면 된다는 것을!

우리 선생님들! 우리는 날마다 신상품을 빗고 명품을 탄생시키는 위대한 예술가입니다요! 힘을 내십시다요! 아이들이 내 마음을 몰라주더라도 기다리고 참아주며 시간을 믿읍시다요! 진실의 힘만큼 강한 것은 없으니까요.

(30분 강의를 위해 몇 권의 책을 사 읽고 원고 작성에 든 시간이 몇 시간이 들었으며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생각했던 '창의'에 매몰되었던 며칠도 결코 헛되지 않음에 감사하면서, 저처럼 발표를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자신감 훈련 방법'을 찾습니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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