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노는 아이, 창의성이 높대요

2005.09.03 09:12:00

'나는 왜 지식에 목말라 하는가?'

아직도 매미는 운다. 밤송이들이 살쪄 가는 초가을의 교정에서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넘기는 책장의 의미를 자신에게 묻는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아니 채울 수 없는 갈증을 탓하며 나를 얽어맨 정신의 감옥에서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을 본다. 아무나 살 수 없는 곳, 오고 싶다고 아무 때나 올 수 없는 천혜의 땅에서 숨쉬는 순간을 기록할 날을 시간을 재며 나 자신과 싸운다.

이 아이들과 약속한 시간이 정확히 99일 남았다. 부모님과 함께 독도 여행을 떠난 서효가 없는 교실은 참 힘이 없다. 배 편이 맞지 않아 개학날을 놓쳤다며 미안해 하는 서효 엄마의 전화에도 그리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맞벌이라서 늘 바쁘다는 핑계를 입에 달고 사느라 자식들이 어렸을 때 여행을 시켜준 기억이 없으니 내 반 아이만이라도 여행의 기쁨을 갖게 하는데 동의한 것이니...

우리 반의 분위기 메이커인 서효가 없으니 아이들도 시무룩하다. 몇 안 되는 친구들을 보는 기쁨에 달려온 아이들이 '선생님, 안녕하세요'보다 먼저 품 속으로 달려든 개학날.

"얘들아, 서효는 참 나쁘지. 응. 우리만 놔두고 저만 여행 가서 안 오니 말이다."

아이들은 대답이 없다. 진짜로 나쁘다고 생각한 게 아니니. 산생님이 서운해서 투정하는 것이라고 잘 알기 때문이다.

20세기에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다면, 21세기에는 '나는 놈' 위에 ‘노는 놈’이 성공한다는 서문을 본적이 있다. 아이들이 놀 수 있을 때 확실하게 놀 수 있게 해주는 서효 부모님의 교육 방법을 지지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시간이 있을 때에는 부모가 바빴고, 부모에게 시간이 생기니 자식들이 바빠서 함께 여행하기기 참 어렵기 때문에.

책에서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배움터를 마음껏 구경하고 돌아올 귀여운 꼬마의 모습이 기다려진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머릿속에서만 생각하는 지식이 아니라 그 바다의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를 보며 싱싱한 생명력으로 넘치는 동해를 마음 속에 품고 올 아이.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를 쓰는 그 곳을 눈으로 보는 감동과 애국심까지도 담아올 거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이야깃감이 기대된다. 독도를 보고온 소감을 발표시켜서 함께 하지 못한 나와 아이들에게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방학 동안 일에 밀려 시간을 내지 못하고 개학 전날에야 여행 일정을 잡아 자식들의 견문을 넓혀주고 싶어하는부모의 바람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일이 개학날이니 바로 등교시키라고 할 수는 없었다. 1학년 짜리 소년이 개학하는 날 두, 세 시간 학교에서 배우는 그 무엇을 부모와 함께하는 독도 여행과 견줄 수 있을까?

가끔은 아이들의 삶에도 일탈이 필요했음에도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위하여 일상적인 궤도를 벗어날 수 있게 해주며 과감하게 다른 것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적이 없는 내 삶이 자식들에게 미안해진다.

지금은 부모와 함께하는 체험학습이나 여행을 권장하는 세상이지만, 20여 년 전에는 그런 모습이 드물었다. 5년 동안 결석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우리 반 회장이었던 한 남학생이 6학년 때 딱 한 번 결석을 하였는데, 알고보니 엄마를 따라서 외가에 제사를 지내고 왔다고 하여서 아이들과 내가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학교 공부하기 싫어서 외가에 떡 먹으러 갔다고 놀려댄 기억이 떠오른다. 물론 농담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부족한 담임이었다. 겨우 그렇게밖에 말해 주지 못했는지. 아마 그 아인 외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아이여서 외할머니의 체취를 느끼고 싶어서 외가를 간 거라고 생각해 주지 못했을까?

학교와 책 속에서 얻는 지식이 그리움으로 채운 보이지 않는 마음의 창고보다 더 귀하고 소중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음을 이제야 깨닫는 부족한 선생이어서 부끄럽다. 내가 어른이고 선생이니 뭐든지 아이들의 생각보다 옳다거나 낫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귀를 열어야 함을 배운다.

오히려 참신하고 신기하며 싱싱한 생각은 아이들에게서 나온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생생한 열정을 지닌 아이들의 노는 모습. 파블로 피카소는 어린아이처럼 그림을 그리기 위해 온 생애를 바쳤다고 하니, 멋지게 살고 싶으면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성을 잃지 말 일이다.

하교 후, 피아골로 가는 차 시간에 맞추느라 달려가던 아이들이 여섯 시가 다 되도록 도서실에서 책을 읽는다. 창문으로 들려오는 계곡물 소리와 매미 소리, 뜨거운 여름을 이기고 피어난 꽃들을 내려다 보며 예쁜 커튼과 방석이 깔린 도서실을 두고 가는 게 싫다는 아이들.학교를 지키는 내가 있으니 마음 놓고 막차를 탈 모양이다.

매미가 다시 노래하며 나를 달랜다. '내일은 귀여운 꼬마 신사 서효가 달려올 테니 많이많이 껴안아주고 사랑하며 꼬마에게 한 수 배우라고'

(잘 노는 아이들의 창의성이 매우 우수하다는 책을 보다가 이 글을 씁니다. 노는 법을 매우지 못해서 일하는 방법만 배운 부족한 선생이어서 부끄러워하며. 무엇이 더 소중한지 인생을 길게 보는 어른들이 넘쳐나기를! )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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