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분교의 가을 풍경

2005.09.07 11:48:00

"얘들아, 삶은 밤이다. 알밤에 우유 마시고 공부하자."
"야! 신난다. 참 맛있겠다."

지난 밤 큰 바람에 일찍 세상 나들이에 나선 학교 뒷산의 밤알들이 너도나도 굴러나와 풀숲에 숨어있었나 봅니다. 부지런한 우리 이주사님이 풀베기 작업을 나가셨다가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햇밤을 한 바구니 안고 오셔서,

"농약을 안 했더니 절반은 벌레 먹은 못난이 밤들입니다요. 성한 것만 골라서 우리 아이들과 선생님들 간식하면 좋겠습니다."

단단한 알밤 껍질을 뚫어놓은 벌레들이 참 신기했습니다. 벌레들은 가장 맛있는 알밤을 골라 먹는 모양입니다. 크고 좋은 것보다는 작고 야무진 알밤만을 골라 뽕뽕 구멍을 뚫어놓았습니다.
거름과 농약을 하지 않았으니 볼품이 없고 벌레먹이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같이 살아야 할 동반자임을 생각합니다.

어느 책에선가 '나무는 이파리 열 개를 내면 두 개는 짐승이나 새에게 주고, 두 개는 사람이 가져가게 두고, 두 개는 벌레들에게 주고, 두 개는 제 열매를 위해서 쓰고, 나머지 두 개는 뿌리에게 주어 다시 거름이 되게 한다.'는 글귀를 보며 농약을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깨닫기도 했습니다. 욕심많은 사람들이 자기만 먹고 벌레들은 다 죽으라고 약을 하다보니 먹이 사슬이 끊겨 생태계가 파괴되어 간다고...

2시간이 끝나면 우유 먹는 시간만 기다리는 꼬마들입니다. 아침밥을 일찍 먹고 일을 나가시는 학부모님 때문에 눈을 비비며 먹는 둥 마는 둥 아침 밥을 대충 먹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가까운 가게도 없고 특별한 간식거리가 귀한 곳이니 삶은 밤의 등장은 즐거운 소식입니다.

전교생과 유치원생, 선생님들, 바이올린 강사 선생님, 컴퓨터를 고치러 온 회사 사람까지 모두 나눠 먹으며 일찍 찾아온 알밤으로 가을 문턱을 넘습니다. 까먹는 게 시원찮아서 찻수저로 파서 입에 넣어주니 금붕어처럼 입을 벌리고 받아먹는 모습도 참 귀엽습니다. 먹는 것으로도 모자라 집에 돌아가는 아이들의 호주머니에는 알밤이 디룩디룩 불거진 하교길,

교정의 큰나무 아래에서 봄여름 내내 튼튼하게 꽃대를 올린 코스모스들도 가을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고보니 큰나무들은 자기 발 아래에서 살아보려고 애쓰는 작은 풀꽃들이 설 자리를 내주며 품고 사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코스모스도 그가 선 자리가 큰나무에 가려진 곳이지만 땅을 탓하지 않고 기어이 제 할 일을 해냈습니다. 저렇게 가는 허리에서 올린 고운 꽃대를 자랑하며
집에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조심하라고 손을 흔듭니다.

밤나무도 알밤을 내주고, 코스모스도 꽃을 피워 기쁨을 선사하는 가을. 나는 무엇을 내놓아 아이들에게, 사람들에게, 가족들에게 작은 기쁨이라도 줄까 턱을 괴고 생각합니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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