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 교육을 생각한다.

2005.09.12 13:22:00

"옛날에 한 나그네가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쉭, 쉭, 쉬이익."

이 대목은 요즈음 우리 1학년 아이들이 외우는 읽기 책에 나온 '은혜 갚은 꿩'의 시작 부분이다.
우리 반에서 가장 먼저 외우기 숙제를 해온 찬우가 자랑스럽게 읽기 책을 외우는 것이다. 보통 때는 목소리도 작고 조심스러워 하던 찬우가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표정은 귀여움을 넘어서 부러운 지 다른 아이들이 신기하게 바라본다. 3쪽 짜리 이야기를 다 외우면 별 하나를 주겠다는 칭찬 스티커를 타려고 등교하자마자 자랑하는 찬우의 외우기로 아침을 시작한 교실.

1학기에 다 익힌 한글 덕분에 날마다 책을 읽는 재미에 폭 빠진 아이들은 등교하기가 바쁘게 도서실로 직행한다. 어제 읽던 동화 책을 찾아서..
받아쓰기를 시켜보면 바르게 쓰기와 소리나는 대로 쓰기 사이에서 어려워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역력하다. 거기다가 띄어 쓰기까지 함께 요구하면 100점을 받기는 참 어렵다. 새삼 우리 국어가 어려움을 실감하게 된다.

몇 년 전 대학원 국문학과 지도교수님의 말씀이,
"12년 동안 학교 교육과정을 밟고 대학에 들어온 국문학과 학생들도 완벽하게 원고지를 써 내는 학생이 드물다.' 며 한탄하시는 모습을 보며 초등학교 때부터 더 열심히 지도해야 함을 절감하기도 했었다.

특히 요즈음처럼 우리 말 파괴 현상이 심각한 인터넷 시대를 살면서 언어 파괴 현상은 도를 넘었다고 생각한다. 비속어와 은어, 이모티콘으로 표현되는 시대, 방송 매체의 무분별한 언어 파괴 현상까지 가세하고 있으니,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이들도 표준어나 예쁜 우리 말을 익히기도 전에 저급한 언어에 물들어 가는 게 안타깝다.

뭐든지 바람직하고 좋은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고 반드시 씨를 뿌리고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치 보기 좋은 꽃들은 씨앗을 뿌리지 않고는 꽃을 볼 수 없는데 반해, 운동장이나 화단에 지천으로 싹이 트는 풀들은 생명력이 강해서 아무리 뽑아내어도 금방 다시 자란다.

사람의 성품이나 선천적인 기질도 부모가 원하는 것보다 원하지 않는 부분이 유전적으로 강함을 보면, 학교 교육에서도 바람직한 것은 단 시일에 이루어지지 않음을 본다. 우리 말 교육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미 미래 학자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언어의 종류에서 우리 한글도 예외가 아님을 예견하고 있다. 특별한 노력과 자구책을 세우지 않는 한, 세계화의 물결을 가장 많이 타는 언어도 예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우리 말 교육은 아름다운 전설로 전해져 온 우리의 동화를 담아 놓은 읽기 책 속의 동화만이라도 이야기 하듯이 줄줄 외우게 하는 것이다. 처음엔 받아쓰기로 다음엔 10번 씩 읽기 과제로, 그 다음엔 외우기를 내 주었는데, 신통하게 외우는 아이가 등장한 것이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만족시킨 아이의 등장은 내게 자신감을 갖게 했다. 거기다가 칭찬 스티커까지 잔뜩 올려주니 너도 나도 외우게 되었다.

외운 아이들에게서 기대되는 효과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친구들 앞에서 외우니 자신감이 커지고 완벽한 발음 지도, 자주 책을 보아야 하니 띄어 쓰기도 많이 늘었다. 아이들 스스로도 놀라서 수업이 시작하자마자 서로 외우겠다는 아이들 때문에 행복한 교실.

더욱 좋은 것은 문학 작품 속에 스며 있는 아름다운 감성과 주제를 금방 찾아낸다는 점이다. 뇌의 저장고에 입력되어 있는 이야기의 순서를 꿰고 있으니 책을 안 보고도 금방 발표를 하게 된 아이들의 자신감에 나도 행복해진다.

창 밖의 매미 소리와 교실에서 은은히 들리는 바이올린 명곡 감상곡을 들으며 동화구연대회를 하듯이 날마다 번갈아가며 읽기 책의 동화를 외우는 귀여운 왕자님들과 공주님의 입을 보며 연신 탄성을 지르는 행복한 내 자리에 감사한다.

집에서도 낭랑하게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아이들의 어버이들은 아침을 행복하게 시작하리라. 명심보감에 이르기를, '책을 읽음은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이라 하였으니, 교훈적인 동화를 옹알이며 하루를 열고 등굣길, 하굣길을 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예쁘다. 그들에게서 우리 한글의 밝은 미래를 본다,

우리 말 교육, 우리 국어 교육은 초등학교 1학년 담임들의 역할이 무척 크다고 생각한다. 재미를 찾으면서도 충분히 보상해 주는 일, 지속적인 노력으로 문학의 품에까지 인도하는 씨앗은 부지런히 뿌려야만 몇 개라도 건질수 있으므로...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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