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 각시 같은 학부형

2005.09.15 11:18:00

"분교장님, 진호 아버님이 오셨는데요."
"예, 곧 갈게요."

1, 2학년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 가 보니 학부모님은 벌써 가고 안 계셨다. 저학년이라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표가 나서 쉬는 시간에 잠깐 뵙는다는 것이 아이들과 이야기에 몰입하다보니 깜빡 잊은 것이다.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부랴부랴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고 하니 괜찮으시다며 다시 올라 오신다고 하셨다. 한, 두달에 한 번은 꼭 분교에 들러셔서 교직원들 목을 축이라시며 음료수를 떠안기는 진호, 진이, 진아 아빠이신 정대용씨.

자식들과 함께 살지 못하는 형편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분교에 온 3년 동안 그 정성에 변함없으신 분이다. 함께 살지 못하는 아이들 이야기, 학교 이야기 등을 진솔하게 나눌 만큼 우리 분교 교직원들과 가족처럼 어울리시는 모습에 늘 감사할 뿐이다. 때로는 학교 일도 거들어 주시기도 하며 화장실 대청소도 해주신다.

우리 선생님들이 내놓는 커피 한 잔에도 고마움을 잊지 않으신다. 진호는 나와 2년 동안 한 교실에서 숨소리를 지척에서 들으며 살았으니 자식처럼 정이 든 제자다. 직장이 먼 곳이면서도 이제 중학생이 된 아들의 학교까지 담임 선생님을 만나 상담을 하고 자식의 미래를 챙겨주는 보기 드문 학부모님이다.

오실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집에서는 말을 안 들으니 야단쳐 주시고 버릇을 고치려면 매도 들어주세요"가 단골 멘트이신 진호 아빠는 학교에서는 뭐든지 잘 하고 모범생이라고 칭찬하여도 아들이나 딸 자랑을 입에 올리지 않으신다.

힘들게 사는 가정사에도 불구하고 오직 자식들의 앞날을 걱정하며 아버지로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자라는 삼남매도 흐트러짐이 없다. 부모는 자식들의 거울임을 행동으로 보여주며 주말이면 자식들을 데리고 체험학습을 다니시는 열성까지 보이신다.

그런 진호 아빠는 3년 동안 추석을 맞이할 때마다 분교의 교직원들에게 꼭꼭 선물을 안겨주셨다. 그것도 다른 학부님에게 피해가 갈까봐, 다른 아이들이 알면 상처를 받을까봐 우렁 각시처럼 숨어서 예뻐지라고 미용 비누를 주시기도 하고 커피를 좋아하시니 두고 드시라고 커피를 안기시면서도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며 얼굴까지 붉어지는 모습을 보면 마치 소년같으셔서 우리 교직원들이 미안할 정도였다.

날마다 아이들 점심을 맛있게 해주시는 홍맹례 조리사님에게도, 학교를 깔끔하게 내 집처럼 다듬으시는 이재춘 주사님의 노고에도 감사하고, 담임이 아니어도 똑같이 고생하신다며 네 분 선생님도 똑같이 챙기시는 그 정성에 우리들은 미안하면서도 '선물' 그 자체의 순수함을 담은 그 분의 따스한 인간미까지 안고 추석을 맞곤 했다.

선생님들에게 촌지를 준다고 세상이 매도하고 삿대질을 하는 세상에, 자신의 삶도 힘든 처지에서 마음을 나누며 진심을 변함없이 전하는 진호 아빠의 선물은 다른 어떤 선물보다 마음 속에 깊이 자리한다.

산골 분교이니 선생님들이 오히려 아이들의 선물을 챙기는 게 보통인 우리 분교에서는 아이들의 간식 거리나 상품을 선물하는 일에서부터, 방학이면 선생님 집으로 초대하는 일까지 흔하다. 아이들도 내 반, 네 반이 따로 없다. 마치 대안 학교처럼 공동체를 견지하고 있다.

대가를 바라거나 얼굴을 내기 위함이 아닌, '촌지(마음의 작은 선물)'가 갖는 가장 깊은 뜻을 전하는 그 분의 추석 선물로 우리 여섯 명의 교직원들이 벌써 추석 명절 기분을 낸 지난 토요일.

'절약만 하고 쓸 줄을 모르면 친척도 배반할 것이니, 덕을 심는 근본은 선심쓰기를 즐기는 데 있는 것이다. 가난한 친구나 곤궁한 친족들은 제 힘을 헤아려 두루 돌보아 주도록 하라. 제 집 광에 남아도는 물건이 있거든 남에게 주어도 좋거니와 공유 재산으로 몰래 남의 사정을 돌보아주는 것은 예가 아니다. 또한 권문세도가를 지나치게 후히 대우해서는 안 된다' 고 한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비춰보아도 우리 교직원들이 그 분에게 도움을 받을 정도로 곤궁한 것은 아니지만 주고 싶은 마음을 기어이 행동으로 옮기는 태도를 보며 감사와 보은의 의미를 되새김해 보는 추석을 생각한다.

내가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을 어느 해보다 더 늘려서 손가락으로 다 세지 못할 만큼 넉넉한 추석을 함께 하며 '마음은 서로 주고 받는 메아리'라고 한 법정 스님의 한 마디를 선물 속에 새겨넣고 싶다.

상처받은 아이들과 결손 가정의 아이들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아이들도 서로 기댈 언덕이 되어주며 한 가족처럼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를 간직할 수 있는 것은 물질이 아니어도 마음 깊은 곳에서 염려하는 학부모님이 계시고 혹시 행동으로 나타내시더라도 우렁 각시처럼 숨어서 진심을 전해 준 학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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