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자율학습 땡땡이 쳤어요

2005.09.23 23:32:00

아침에 출근을 하니 우리 반의 두 여학생이 교무실로 찾아왔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두 학생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한 여학생이 불쑥 말을 꺼냈다.

“선생님, 죄송해요. 그렇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

처음에는 그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어젯밤 야간 자율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체하고 물어 보았다.

“그래, 무슨 일이니?”
“저희들 어젯밤에 도망갔어요. 죄송해요.”
“왜 그랬니? 다들 힘들어하는데 말이다.”
“사실은~요.”

그 여학생은 옆에 서 있는 친구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희들 싸움을 했어요. 그래서 화가 나서 감독선생님께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갔어요. 용서해 주세요.””

그러고 보니 두 아이의 얼굴이 붉게 멍들어 있었다. 심하게 싸운 모양이었다. 그래서 지레짐작 겁을 먹고 담임인 나에게 양심 선언을 하러온 것이었다. 싸우게 된 이유를 들어보니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사소한 감정 싸움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라는 간단한 주의를 주고 난 뒤, 아이들을 교실로 돌려보냈다.

이제 60여일 정도 남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아이들은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상태이다. 평소에 그냥 묵과할 수 있는 사소한 말 한마디도 이 시기에는 싸움의 불씨가 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선생님 입장에서는 아이들에게 해주어야 할 말들이 많으리라 본다. 어떤 때는 그것마저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고 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응석을 다 받아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한번쯤은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아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교육 현실을 탓한다고 교육 개혁이 금방 이루어지지 않듯 불합리(不合理)에서 합리적인 것을 찾으려고 애쓰는 아이들의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아이들은 입시 전쟁에서 작은 평화를 원한다. 그 평화를 얻기 위해 아이들은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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