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일자로 교감 첫 발령을 월문초등학교로 받았다. 정문을 들어서면 감탄사부터 나왔다. 넓은 운동장과 반백년 가까운 아름드리 단풍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등나무가 학교를 애워 싸고 있었다.
새내기 교감으로 첫 부임 인사를 통해 "나는 교감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을 돕기 위해 여기에 왔다. 그러기 때문에 때로는 따뜻한 사랑을 심어주는 할아버지 같은 교감 선생님, 때로는 자상하고도 엄격하신 아버지와 같은 선생님, 때로는 모르는 문제에 부딪쳤을 때 같이 연구하고 탐구하는 삼촌과 같은 선생님, 때로는 나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그렇지만 속으론 동상이몽이지 뭐. 이렇게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어느 날 6학년 김태은 어린이가 나를 불렀다. 그러자 "교감 선생님! 교감선생님은 왜? 웃지를 않으세요?"하고 묻는 것이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빙그레 웃으며 "너는 교감선생님이 웃을 때는 보지 못하고, 웃지 않을 때만 보았으니 참 안타깝구나!" 라고 대답을 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부터 나와 태은이는 웃으며 지내는 친절한 사이가 되었다.
점심시간때 운동장 주변을 순회하고 있는데 1학년 김승준 어린이가 구령대 밑 창고 앞에서 교감 선생님! 하고 불렀다. 가서 살펴보았더니 창고문 쇠창살을 잡고 있으면서 "교감선생님! 이 창살 내가 고쳤어요." 라고 말했다. 가만히 보니 고친 것이 아니고 나사가 풀린 것을 바르게 해 놓은 것이다. 그래도 "아휴! 승준이는 착하구나!"하고 칭찬을 했더니 "교감 선생님!"하고 또 불렀다.
"왜?"
"교감 선생님, 이 창고를 내 비밀기지로 해 주세요,"
"비밀기지가 뭔데?"
"비밀로 쓰는 기지 말이에요."
제법 어휘력이 뛰어난 어린이였다. 너무 기특해서 "그래, 그렇게 하려므나" 했다. 잠시 후 그 쪽을 보니까 체육 창고 속에서 창틀 사이로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차! 내가 실수였구나 싶어 학교 기사에게 창틀을 고치라고 하였지만 그 아이와 약속을 어긴 것 같아 미안하기만 하였다.
이처럼 우리는 소인수 학교(82명)이기 때문에 어린이들과 늘 부딪히면서 생활한다. 그러기 때문에 이름을 모르는 아이가 거의 없다. 언제든지 궁금한 것이 있으면 교무실에 들어와 물어보고 간다. 아마 소인수 학교이지 때문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이 학교에 부임한 이후 많은 것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가을 운동회 때의 일이다.
운동회 당일 아침 7시까지 출근하라는 교무부장의 말이 있었다. 조금 일찍 출근 하라는 뜻이겠지 생각을 하고 7시 40분 쯤 그것도 빨리 출근한다고 생각을 하고 교무실을 들어서는 순간, 나는 깜작 놀라지 않을 없었다. 나만 제외한 전 교직원이 운동회 준비 다 마치고 아침 밥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어찌나 민망하였는지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을 때 교장 선생님이 재치를 발휘하여 처음이라서 그러면서 같이 먹자고 권하셨다. 이런 단합된 모습과 아름다움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학부모님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교 행사가 있을 때나 없을 때를 가리지 않고 농사해서 수확한 감자나 고구마, 밤 등을 가지고 와서 전교생에게 나누어 주는 모습이나, 때로는 선생님 고생하신다고 별다른 준비 없이 집에서 먹는 것에 조금 정성을 더해 쌈밥이나 김밥을 싸 오시고, 학교 체험학습 실시 때에도 남은 교직원을 위해 점심용 김밥이라도 가져와 교사들을 대접하는 작은 모습들, 교사들은 더욱 신이 나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과 사랑을 심어주는데 게을리 하지 않은 모습이 정말로 아름다왔다.
요즘 우리 어린이들은 요일마다 기능별 조회를 해서 신바람 나는 학교를 만들어 가고 있다. 월요일은 애국조회, 화요일은 명상의 사간, 수요일은 나의 자랑시간, 목요일은 동요부르기 시간, 금요일은 칭찬합시다 시간, 토요일은 VTR감상 시간을 운영하고 있다. 꿈과 희망과 사랑이 가득한 이곳에서의 생활이 더없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