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 살려 취업하는 사회를 기대한다

2006.01.17 11:37:00

며칠 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던 신문기사가 있었다. '명문대 의대생 가운 벗고 조리복 입다'라는 기사였는데 내용인즉 서울의 한 명문대 의대생이 본과 졸업반으로 의사 국가시험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나, 의사 안 한다'며 미국으로 간다. 그곳에서 회계학을 공부하며 학비조달을 위해 일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어느 날 주인이 양파 썰기를 시켰나보다. 그런데 메스를 잡았을 때는 무척 어색했던 손이 식칼을 잡자 그렇게 자연스럽더란다. 그걸 기회로 미국에서 가장 큰 요리학교를 나와 지금은 신사동에 있는 와인바에서 수석조리사로 일하고 있다는 얘기다.

남들이 알아주건 말건 본인의 의사대로 세상살이를 하고 있으니 무척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모님 두 분이 모두 큰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라는데 자식이 하고자 하는 일에 선뜻 동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부모마음은 누구나 같다. 나보다 더 많이 배우고, 나보다 잘되기를 바라는 게 자식을 키우는 부모마음이다. 병원을 물려주려던 아버지가 뒤늦게 털어놓은 '그땐 정말 때려죽이고 싶었다'는 이야기는 이해가 간다.

요즘 내가 그런 처지이기에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둘째는 어릴 때부터 공부하는 것을 꽤나 싫어했다. 그렇다고 남다른 취미나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라 늘 걱정이었다. 그래도 지방의 국립대에 입학을 했고,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해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 학교에 다니면 무엇 하느냐며 이번 학기를 끝으로 그만두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장래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나 대책이 없는데다 지나가는 얘기로 한 것이 아니라 부모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부모마음을 몰라주니 무척 서운했다. 부모와 상의 없이 내린 결정이라 받아들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우기는데 어쩔 것인가? 그렇다고 한번 결정한 일을 되돌리기는 어디 쉬운가? 옛 어른들이 했던 ‘너도 내 나이되면 안다, 너도 자식새끼 나서 키워보면 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자식교육이다. 더구나 부부교사인 우리에게는 더 그러하다. 오죽하면 뿌린 대로 거두는 농사에 비유해 자식농사라고 했을까? 대개의 자식들은 부모의 뜻이나 행동을 보고 배운다니 내 자신을 뒤돌아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또 포기할 수 없는 게, 포기해서도 안되는 게 자식교육이기도 하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으니 그 기간동안 아이의 얘기를 더 들어주면서 대화하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더 들어주면서 타협하는 수밖에 없다. 훗날 자식이나 부모가 모두 그때 참 잘했다고 말할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서로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대학생인 자식을 왜 철부지라고 생각할까? 내가 자식보다 더 많이 살았거나 배운 게 많아서가 아니다. 그동안 인생살이를 더 많이 체험했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자식이 하고자 하는 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둘째가 학업을 계속하고,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 것이 바람직한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리사가 된 신문기사나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자식얘기와 결부해 한국노동연구원(http://www.kli.re.kr)의 ‘업무내용과 대학(원) 전공의 불일치’에 관한 보도자료를 생각해 본다. 자료에 의하면 대학(원)졸 취업자 10명 중 6명이 현재 취업한 일자리의 업무내용과 최종 졸업학교의 전공분야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남성(56.8%)보다 여성(60.6%)이, 연령별로는 40세 이상 중고령층(51.7%)보다 30세 미만 젊은층(61.0%)이, 고등교육기관별로는 대학원(43.5%)이나 대학교졸업자(58.0%)보다 전문대졸업자(62.9%)의 전공불일치도가 높다.

또 임금노동자만을 대상으로 살펴봤을 때 정규직(54.7%)보다 비정규직(71.1%)의 전공불일치도가 높게 나타났다. 정규직 노동자내에서도 전공과 일치하는 일자리에 취업한 경우의 연간 근로소득이 전공과 무관한 일자리에 취업한 경우보다 높게 나타났으며, 직무만족도에 있어서도 전공과 관련된 분야에 취업한 임금노동자가 전공과 관련 없는 일자리에 취업한 경우보다 높았다.

물론 사회나 경제가 안정되지 못한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평생 살아가야할 직업과 무관한 전공을 택하는 바람에 직위가 낮아, 봉급이 적어, 만족을 못해 물질적이나 정신적으로 고생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면 얼마나 비생산적인가? 더구나 이번에 발표된 자료가 2004년에 조사된 것이라니 고학력화 추세와 경기 침체로 인해 전공과 무관한 일자리에 취업하는 사례가 더욱 증가했으리라 미루어 짐작된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살이다. 그럴수록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어려움도 많이 겪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 대학에서의 전공이 평생의 삶으로 연관되는 사회는 언제쯤 이뤄질 것인가?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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