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편성' 이렇게 합니다

2006.01.18 09:28:00

오랜만에 집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방학이라고 해야 어떻게 지내다 보니 집에서 쉴 시간이 도통 나질 않았었다. 정말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그때 걸려온 전화, "선생님 여기 학교인데요. 내일 예산소위원회 열기로 했는데 괜찮으세요?"

학교행정실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내일은 제가 또 일이 있어서 참석이 곤란한데 어쩌면 좋죠? 제가 없어도 다른 분들의 분석력이 뛰어나니 잘 될 것입니다. 다음에는 꼭 참석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한 후 교장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사정이 있어서 참가가 어렵다는 말씀을 드렸다.

우리 학교(강현중학교, 교장 이연우)는 이렇게 예산을 편성한다. 예전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학교는 당연히 없겠지만 우리 학교의 예산편성과정은 유별나다. 그 과정을 대략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11월경에 각 부서와 각 교과에 예산편성지침과 함께 예산요구서를 배부한다. 이때 교사 개개인에게도 예산요구서를 배부한다. 전년도의 예산편성자료도 함께 참고하도록 배부한다. 또, 올해 신규로 반드시 들어가야 할 항목을 참고로 알려주고 담당 부서도 정해준다.

교사들은 배부받은 요구서에 개인적으로 필요한 예산을 요구한다. 이 요구서를 부서 또는 교과별로 해당되는 내용을 수합해서 종합한다. 종합을 한 후 각 부서의 부장교사와 교과부장 및 원하는 교사가 모여서 예산조정을 1차로 한다. 이 과정을 거치게 될 때는 당연히 가용예산보다 요구예산이 초과하기 때문이다. 나름대로의 설명과 함께 당위성을 주장하게 된다.

이렇게 1차 조정이 끝난 예산은 학교운영위원이 중심이 된 예산 소위원회로 넘겨지게 된다. 운영위원 중에서 교원위원(4명)전원과 학부모위원(3명, 각 학년별로 1명)이 참석하게 된다. 여기서 심도있는 예산조정위원회가 열리는데, 삭감을 해야 하는 경우 해당 부서의 부장교사와 교과부장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반드시 갖게 된다.

예산 소위원회에서 조정하기까지는 방학을 이용하여 대략 1개월에서 1개월 반이 걸리게 된다. 이 과정이 상당히 어렵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조정이 끝나는 날은 소위원회 위원들은 너무나 홀가분한 날이 되는 것이다. 이 후에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최종 심의를 거치게 되는데 이때가 대략 졸업식 전, 후이다.

이렇게 예산을 편성하기 때문에 투명성 제고는 기본이고, 해당 학년도에 예산문제로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모두의 동의를 구했기 때문에 특별히 이의를 제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과정 모두는 현재의 교장선생님이 부임하면서 강한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예산문제로 조금이라도 어려움을 겪거나 소외되면 안된다는 철학이 이런 과정을 가능하게 했다. 물론 대부분의 학교에서 이런 과정을 거치겠지만 우리학교는 특히 더 투명하고 공정한 예산을 편성한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이창희 서울상도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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