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학운위 선출이라니

2006.05.25 15:21:00

우리학교에는 5월을 맞아 온통 푸릅니다. 하늘도 푸르고, 운동장 잔디도 푸르고, 나무도 푸릅니다. 그리고 학생들도 온통 푸른 마음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들도 비록 몸은 찌들고 힘듭니다만 마음만은 푸름을 지닌 채 희망을 갖고 힘차게 오월을 출발합니다.

푸른 5월과 함께 희망차게 보내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열린우리당 "교감제 폐지" 3일 공청회…"학운위 선출 교장이 부교장 임명"이라는 교육을 죽이는 검은 폭풍의 기사를 접하게 되어 기분을 망치게 하고 있습니다.

학교 운영위원회가 교장을 선출하고, 선출된 교장이 부교장(교감)을 임명하는 파격적인 교장임용 방안을 열린우리당이 사실상 당론으로 확정했다고 하니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은 교감폐지제 법안을 입안하는 과정에 과연 얼마나 교육의 경험자들의 귀를 기울였는지 묻고 싶습니다. 교육은 경륜인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교육을 쌓아온 원로 선생님들을 비롯하여 교육전문가들의 의견에 얼마나 귀를 기울었습니까?

모 의원은 ‘교장임용제 개선안’을 내놓기 전에 교장임용에 대해 무엇이 문제이며 그 문제에 대한 해법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며 고민해 본 적이 있기나 합니까? 그리고 교육현장에서 얼마나 근무를 해보셨습니까? 교육관련 서적을 얼마나 읽었으며 폭넓은 교육전문가들과 자리를 같이 하며 밤을 새면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얼마나 하셨는지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듯이 이번 ‘교장임용제 개선안’을 봐도 정치인들의 사고가 너무 편향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교육혁신을 미끼로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쿠데타적인 발상은 지금이라도 당장 철회하고 교육의 현실을 직시하는 혜안(慧眼)을 가졌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교장임용제 개선안에 학운위가 교장을 선출한다고 하는데 지금 현장에서 학운위원이 어떻게 선출되고 어떤 인물이 운영위원이 되고 운영위원들의 활동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요?

저희 학교만 해도 그렇습니다. 작년에는 교육감 선출을 앞두고 관계되는 분들이 대부분 학부모 운영위원이 되었습니다. 학교의 발전과 유익을 위해 운영위원이 되었다기보다 직장과 자식과 자신의 유익을 위해 운영위원을 하고 있는 분이 대부분입니다. 또 이분들은 1년에 운영위원회 대여섯 번 모이기 위해 학교 오는 게 전부이고 대부분은 대여섯 번 모이는 것조차 여러 가지 이유로 불참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분들이 학교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학교에 대한 사정을 모르다 보니 운영위원회 참석해도 1년 내내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운영위원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교장 선출권을 주다니요 말이나 됩니까? 교장 후보자를 어떻게 알아서 교장을 뽑는다는 겁니까? 교장을 뽑을 만한 식견과 지식과 자질과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앞서 어느 선생님이 지적했다시피 운영위원들이 선출권이 있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그들에게 머리 조아리며 교육자의 양심을 잃은 채 이성 없는 행동할 것이 눈에 선하지 않습니까? 정치를 하시는 분들이 왜 그걸 모르십니까?

교원 운영위원도 그렇습니다. 어떤 단체에 속한 선생님들이 과반수나 차지하는 상황에서 그분들의 성향을 가진 젊은 선생님들이 대부분 교원위원이 되는 현실을 눈으로 보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떤 분이 교장으로 선출되며, 앞으로 교육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겠습니까?

농사는 농부가 짓듯이, 정치는 정치인이 하듯이, 교육은 교육자가 해야 합니다. 훈수를 두면 안 됩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훈수를 둔다면 농사도 망치고 정치도 망치고 교육도 망칩니다. 교육이라는 나무를 뿌리째 뽑으면 그 나무는 죽고 맙니다. 문제가 있으면 가지를 치고 거름을 주며 영양제를 줘서 살려야지 통째로 뽑아버리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육은 백년대계입니다. 해방이후 많은 선배 선생님들과 교육전문가들의 연구와 노력 끝에 지금의 교장제도 생겼습니다. 이를 하루아침에 없애버리려는 도발적 발상은 거둬 주시면 어떨까요?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지만 이 정도만 하고 지켜보겠습니다. 5월은 푸릅니다. 학생들의 세상임과 동시에 선생님들의 세상입니다. 더 이상 교육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고 선생님들을 망치는 검은 바람이 이 땅 위에 멈추고 훈훈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기만 고대합니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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