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에 교육청에 근무하였는데 아들 덕택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일찍 도착하였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이 많이 있는데도 안정이 되지 않아 책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하루는 마음을 고쳐먹고 책상머리에 있는 단편소설집을 꺼내들고 정비석의 '성황당'을 읽었다. 단편치고는 28페이지나 되는 꽤 긴 소설이었다. 전에도 읽어본 적이 있지만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순이’의 남편 ‘현보’에 초점을 맞춰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현보는 숯장수였다. 현보는 숯을 구워 파는 일을 업(業)으로 하면서 자기의 일에 대한 원망이나 불평이 없었고, 아무 걱정도 없었으며 항상 행복했다. 그에게는 ‘웃음’과 ‘사랑’이 가득했다. 일터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고, 아내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현보는 그저 행복스러웠다. 전나무․잣나무․박달나무․물푸레나무․떡갈나무․소용나무… 아름드리 나무, 나무들이 기운차게 활기를 쭉쭉 뻗고 별 곁듯 서 있는 숲 속을 거닐면서 현보는 다시 빙그레 웃었다. 무성한 나무 나무 ! 그것은 얼마나 친근한 현보의 벗이었으리요 ! 순이도 떼어버리고는 살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다. 그러나 현보에게는 이 나무들도 순이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게 사랑스러웠다.”<이하 생략>
그리고 현보에게 가장 친근한 것은 산이었다. 온갖 나무를 키워 주고 온갖 풀을 키워 주는 것이 산이고, 현보를 낳아준 것도 산이고, 먹여 살리는 것도 산이라고 생각했다. 산 없는 곳에서는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을 했다. 그만큼 현보는 자기의 일터를 사랑한 것이다. 그러기에 만족이 있었고, 웃음이 있었으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요즘은 학교에 웃음이 잘 없다. 웃을 만큼 여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분위기도 아니다. 학교에 대한 애착심과 사랑도 식어가고 있다. 하루의 반 이상을 학교에서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나의 일터인 학교가 매력적이지 못한 게 현실이다.
교직에 몸담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가장 친근감이 가는 곳이 학교이고, 나를 낳아준 것도 학교이고, 삶의 원동력도 학교며, 학교 없는 곳에서는 하루도 살 수 없을 만큼 우리들의 일터인 학교를 사랑하게 되면 학교생활은 재미가 있을 것이고, 만족과 웃음이 있을 것이며 보금자리 이상으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학교 안에는 공부 잘하는 학생 ․ 공부 못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부잣집 학생 ․ 가난한 집의 학생도 있다. 모범학생이 있는가 하면 속 썩이는 학생도 있다 고운 학생이 있는가 하면 추한 학생도 있다.
이런 다양한 학생이 있기에 선생님들은 보다 힘들어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며 고통스러워해야 한다. 그래도 학교는 이런 학생들을 모두 포용해야 하며 선생님들은 이들을 모두 안고 가야하는 책임이 있다.
공부 잘하는 학생, 형편이 넉넉한 학생, 모범학생, 고운 학생, 아름다운 학생들만 있다면 담임하기가 얼마나 쉽겠나? 그렇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더 많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학생들도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 내 동생 못지않게 사랑해야 한다. 현보가 아내 ‘순이’ 못지않게 나무를 사랑한 것과 같이. 선생님들은 자긍심을 갖고 모든 학생들이 기운차게 쭉쭉 뻗고 곧게 자란 나무처럼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빙그레 웃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