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실습을 마치며

2006.05.03 16:54:00

어쩌면 의미 없이 그냥 흘려보냈을 찰나의 시간이 ‘실무실습’이라는 이름을 달고 인생의 한 귀퉁이에 진하게 농축되었다. 시간은 그냥 거기 있었을 뿐인데, 이름과 의미를 붙이니 이렇게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실습 때마다 실감나는 옛말 한 가지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다. 참관 실습 때 까지만 해도 실습을 나가보고 나서야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다 싶어 자퇴를 했다는 어느 선배의 소문(나도 그렇게 되면 어쩌지 하는 조바심과 함께)과 내 능력엔 너무 많은 것만 같은 한 반의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의 관심어린 눈망울에 잔뜩 겁을 먹었었는데, 어느덧 교대에서의 3년을 다 채우고 벌써 실습의 마지막 관문-실무실습까지 치르게 되었다.

참관 실습 때는 하루 종일 지도교사 선생님께서 수업하시는 것만 봐도 피곤했었고, 1차 수업 실습 때는 하루에 몇 손가락으로 꼽을 시간만큼만 자고도 아직 배울 것이 산더미 같다는 사실에 경악했었고, 2차 실습 땐 시간이 꽤나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느끼기에 전혀 나아지지 않는 스스로의 실력과 인내심에 낙심하는 데만 온 정신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실무실습…….

첫 번째 주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 너무도 두꺼운 실습길잡이 책자와 거기 인쇄되어있는 각각의 주제를 담은 특강, 학교생활의 핵심적인 것들만 뽑아서 요약하고 요약했을 엄선된 내용들을 훑어보면서 말로만 듣던 공문서의 압박과 해결해야 될 많은 업무들에 겁이 났다. 강의를 듣는 내내 ‘이건 내 일이 아닐 거야’라는 방임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나중에 내 일이 된다면 그 때 생각해야지’하는 태도로 회피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번 실습은 실무실습인데, 그 핵심을 놓친 것 같아 후회가 된다. 아직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그저 강 건너의 불이지만 실제 내 일이 되고, 실제 경험할 수 있게 된다면 이번에 배운 것들이 진정으로 내 것이 되리라.

다음으로 기대만발이었던 두 번째 주. 아이들을 태운 버스가 눈앞에서 멀어지는 순간에야 긴장이 풀리는 ‘1일 담임제’의 날. ‘난 절대 못해, 어떻게 앞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하지? 내가 미쳤어?’라고 뻗대던 내가 어느새 30명의 아이들 앞에서 ‘♪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를 부르고 있었다. 더구나 이상한 것은 으레 그래왔던 것처럼, 아무 스스럼없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처럼 전혀 부끄럽지 않고,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졌다는 것이다(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

다행스럽게도 2학년 때 느꼈던 공포 비슷한 감정은 내 것이 아님을, 소문의 그 선배의 후처를 밟지 않을 것임이 확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의도하지 않았던 반응이 나오는, 짐짓 당황스러운 상황이 왕왕 발생하고, 계획했던 것보다 시간이 부족해서 애써 준비했던 멘트와 자료를 씁쓸히 묻어 둬야하기도 했지만 그런 실수하나하나에도 의미가 다양하고 배울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학급협의시간과 순간순간 찾아오는 - 가만히 앉아 생각하면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에 미소 짓고 실수에 대한 멋쩍음에 쓴웃음 짓게 되는 - 돈오(!)의 순간에 느꼈다. 특히나 내 수업을 평가하는 학급협의시간, 그 순간이 가장 예민해지고,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하나의 사건을 여러 관점에서 해석하고, 의견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아무런 계산 없이 순수하게 서로 칭찬하고, 서슴없이 조언해주는 솔직한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언제 또 그러한 경험을 하겠는가.

실습의 경험을 거듭할수록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아~ 정말 되고 싶다, 이 상황이 실제였으면 좋겠다.’였다. 수업을 할 때도 그러했고, 아이들과 짬짬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그러했으며 아이들을 집에 보내고 난 후의 시간엔 더욱 간절하게 다가왔다. 아침에 만나면 어쩌면 아무 일도 아닌 평범한 일이 되었을 사건을 조곤조곤 한마디라도 더 얘기해주려던 아이들의 작은 입술과 “우리선생님, 우리 선생님”하고 1주일도 채 되지 않았는데 정겹게 불러준 아이들의 우렁찬(!) 목소리, 마지막 날, “선생님 100일만 더 있다 가면 안 돼요?”하며 눈물을 글썽이던 작은 눈망울…….

막연히 하고 싶다는 소망만으로 원하는 것을 바라기에는 스스로에게도 민망한 일이다. 교사의 자질만 있으면 됐지, 사명감만 투철하면 되지 왜 임용시험을 치르는 건지 모르겠다며 투덜대던 나에게‘그래도 할 건 해야지, 아는 만큼 보인 대잖아.’하고 은연중에 책임감과 의무감을 심어준 실습.

내 말한 마디와 행동하나가 아이에게 미세한 혹은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나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항상 신중해야겠다는 결심을 세우게 해준 실습. 그리고 대학에서의 남은 시간들…….

마음속에서 다시 시작의 선에 설 수 있게 해준, 좋은 이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만들 기회를 준 14일의 시간. 이 날들은 그저 평범한 시간이 아닌 테두리 굵은 선으로 단단하게 매여진 돈독하고 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채지혜 사라교지편집위원회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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